4월 3일 영상교제 말씀
마태복음 22장 3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최근에 저는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마하나임 사이버신학교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이번에 첫 기에 2500명이 지원해서 그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만 생각해도 감사하고 기쁩니다. 저는 요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강의 녹화하는 시간으로 보내는데 저는 특강이라는 말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게 되는데요, 주제를 선정할 때 선정을 잘 못해서 상당히 고민을 하다가 예수라는 이름으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하려고 하니까 너무 광범위하고 그래서 제 1장으로 뭘 했느냐 하면 “예수님의 비유, 예화” 그걸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왜 그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었느냐 하면 예수님의 비유는 원래 있었던 사건이 아닌 예수님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서 한 이야기인데 예수님이 그 이야기를 만드실 때 우리에게 막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 마음을 표현하려고 이야기를 만드셨기 때문에 이 비유 이야기에는 어떤 이야기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이 깊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지금까지 제가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한 게 아니고 설교를 많이 했지만 이번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노트를 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게 내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예수님의 깊은 마음이 거기에 담겨져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22장도 임금님의 아들의 혼인잔치 비유에서 나오는 한절을 읽었는데,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그러니까 임금님의 잔치에 오라고 했는데 오기를 싫어하는 사림이 어디 있습니까? 이야기를 읽어보면 오기를 싫어하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원래 이들은 다른 마음의 세계가 흐르고 있었다. 임금님하고 다른 마음의 세계가 흘렀다. 임금님은 그들을 잔치에 초대를 해서 그들을 청한 이유는 임금님에게 있는 마음의 세계를 전해주고 싶다. 임금님의 그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데 그들 마음에 임금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임금님하고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란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의 예화 가운데서 탕자 이야기, 그 다음에 강도만난 자 이야기,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포도원 농부의 이야기,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이야기, 그런 예화들이 죽 있는데 그 예화들의 공통된 점이 뭐냐하면 주인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 그 예화마다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 뭐냐하면 우리 주님이 가장 안타까워하시는 것은 우리가 뭐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그것도 좀 가슴 아픈 일이고 나쁜 일이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도 나쁜 일이겠지만 그 보다도 더 예수님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하고 우리가 다른 마음을 가진 그 부분이 예수님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하고 다른 마음을 가진 그 부분으로 오는 결과 또 우리가 마음을 바꾸어서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했을 때 오는 그 마음의 결과 그걸 깊이 생각하시면서, 예수님이 비유를 만드실 때 예수님의 마음을 더듬어 보면 ‘야 이 사람들이 왜 저런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살까? 저런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까? 저런 사단이 주는 마음을 가지고 살까? 이 마음으로 살면 너무 평화로울 건데, 이 마음으로 살면 너무 복될 건데, 이 마음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들이 예수님 속에 가득 차 있어서 막 그걸 표현하려고 그 예화를 하실 때마다 그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요. 탕자 이야기에도 탕자가 아버지하고 너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를 믿고 교만한 마음으로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나중에 탕자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는 게 탕자가 아버지 마음으로 다가오는데 큰 아들도 아버지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 부분들의 이야기나 그 다음에 또 포도원 농부에 관한 이야기도 주인은 그 포도원을 줘서 농사를 지어가지고 감사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해 줬는데 밤낮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굶주린 그 농부들에게 주인이 포도원을 주어 너무 잘 살게 했는데 그들이 마음이 다름으로 말미암아 주인의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마지막에 그 아들까지 죽이면서 진멸당하는 그 비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한 가지가 서로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적인 그런 이야기들을 예수님은 여기서 상세하게 기록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내가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보면 우리가 가진 이 마음 때문에 예수님이 인도하는 그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자꾸 우리가 예수님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지요. 임금님이 자기 아들 혼인잔치니까 얼마나 기쁜 날이겠습니까?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 저도 제 아들 결혼식 때 제가 너무 기뻤거든요. 그리고 막 며느리, 남이 애써 키워준 딸을 우리집 며느리로 맞아들이는데 대해서 저는 너무 기쁘고 감사했고 진짜 하루종일 그냥 가만히 앉아있어도 기뻤거든요. 임금님이 ‘그 기쁨을 같이 좀 나누자. 너희들이 기쁜 세계에 한번 들어와 봐. 이거 얼마나 기쁜지 몰라.’ “그들이 그 마음을 거절하고 오기를 싫어하거늘”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뭐가 아니라 예수님의 예화 속에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예수님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되는데 이 마음을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걸 표현하느라고 예화의 대부분을 예수님이 할애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우리 마음을 무너뜨리고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가는 일입니다. 그것만 되면 모든 게 은혜를 입고 복된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로운 세계 속에 못들어와서 일어나는 문제 외에 다른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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