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9절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저는 한번 죽음 앞에 서본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죽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내가 지금 죽고 있다고 생각하고 죽음 앞에 딱 섰었는데 그때 이런저런 생각이 아주 단순해지면서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마지막에 내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그런데 그때 ‘아 내가 죄사함을 받았지. 내가 참 거듭났지.’ 그 생각이 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는 영원히 살지 못하고 이 육체를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고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차피 죽음이란 경로를 통해서 이 육체를 벗어나야 이제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지요.
사람들은 죽음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그러하지만 때때로 ‘내가 죽음을 맞이해서 육체를 벗는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육체는 쉬지 않고 내 속에 욕망을 일으키고 정욕을 일으키고 그리고 나를 육으로 흘러가도록, 잠자기 좋아하고 먹기 좋아하고 막 그런 쪽으로 끌어가는데 우리가 신령한 주님의 은혜를 입고 주님을 섬기려고 하다가도 육체의 욕구 때문에 방해를 받아 주를 섬기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옛날에 저희들이 자주 부르던 찬송 가운데서 “우리의 일생 다가고 죽음이 와 편히 쉴 때 내 영혼이 자유를 얻겠네.” 그 찬송이 있는데 진짜 내가 죽음을 맞아 육체에서 벗어난다면 막 육체에 매여가지고 고통하는 그 삶에서 벗어나 참 자유롭게 주를 섬길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생각이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번에 저희들은 LA하고 애틀란타하고 뉴욕에서 집회를 하며 베드로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그 천한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어떻게 능력있는 종이 되어서 하루에 삼천 명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정말 믿음을 심어주고 어떻게 그런 귀한 종으로 되었는가? 그걸 성경을 찾아보면 자세하게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보면 베드로도 하나님 능력을 입는 종이 되기 전에 어떠했느냐 하면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를 따르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베드로가 살았습니다. 그는 배와 그물을 버리고 모든 걸 버린 것 같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그걸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했을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라도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고 “시몬아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했을 때 그 말도 인정하지 아니하고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을 그대로 피력했지요.
그러다가 이제 베드로가 그런 상태, 즉 자기 자신을 믿는 상태, 자기 방법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의 능력있는 일군이 될 수 없었는데 그날 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난 뒤에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아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느냐? 내가 얼마나 바보스러웠느냐?’ 그 자신을 베드로가 발견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믿는 마음에서 벗어나면서 그때부터 자기 생각에 이끌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믿는 믿음에 이끌리면서 주의 말씀을 믿을 때 그때 능력이 나타나는 거지요.
그 과정을 로마서 4장에서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을 의존하고 지식을 믿고 자기 경험을 믿고 자기 방법을 따라 살았는데 아브라함은 자기가 백세나 되어 애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사라도 경수가 끊어져 태의 죽은 것을 알지요. 그걸 알면서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이제 사라가 경수가 끊어져 애기를 더 못 낳아. 나도 늙어서 애기를 못 낳아.’ 분명히 아브라함의 지식은 그거였다는 거지요. 몰라서가 아니라 알지만 아브라함이 어떠했느냐 하면 알고 있는 지식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래 난 늙었어. 내 아내도 늙어서 애기를 못 낳아. 그게 사실이야.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면 왜 안 돼. 나도 처음엔 못 믿었었어. 나도 내 생각을 따라갈 때 하나님을 못 믿었는데 이제 나는 내 생각 안 믿어. 하나님이 하시면 돼. 나는 믿어.’ 아브라함이 그런 믿음을 아브라함이 갖게 된 거지요.
“그가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이제 아브라함은 이상 더 자기 지식을, 자기가 알고 있는 경험을, 자기가 알고 있는 방법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자기 방법은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다면 난 아들을 낳을 거야. 내 병이 낫지 못하지만 하나님 낫게 하실 걸 내가 믿어.’ 이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내 방법이나 내 지식 위에 올려놓는 거지요.
우리가 육체 안에 매였다가 육체를 벗어 영원한 나라에 갈 때 얼마나 자유롭겠습니까? 만일에 우리가 육체를 떠나 죽으면 정말 내 육체의 욕망이나 정욕 이런데서 벗어나 참 자유롭게 주를 섬길 수 있는 것처럼 이제 우리가 살아있는 육체 안에 거하면서 육체에 매이지 아니하고 육체를 따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그 믿음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아브라함은 그러므로 말미암아 백세가 되어 아들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베드로도 자기의 생각이 무너지면서 하나님 믿는 믿음이 그 마음속에 일어나면서 하나님이 그 속에 역사하는 놀라운 사실들을 저희들이 발견할 수가 있는 거지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 안에 매여 고통하는 우리들을 거기서 건져주시기 위하여 죽음이라는 걸 통해 육체에서 벗어나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 안에 머물러 이 땅에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그러나 믿음으로 내가 죽은 거지요. 내 영혼이 죽어서 이제 내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난 죽은 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질 때에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힘있게 역사해서 당신의 뜻을 이룰 수가 있는 거지요.
참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 나라에 가서 지금 쉬며 육체의 자유를 얻고 있습니다만 정말 믿음의 사람은 육체 안에 있으면서도 육체를 벗어나서 하나님 능력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비밀이었습니다. 다윗이나 모세나 아브라함이나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나 이런 사람들이 또 우리 기독교 역사의 귀한 복음의 전도자, 디엘 무디나 마르틴 루터나 그런 사람 전부다가 자기를 신뢰하는데서 벗어나서 자기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 말씀을 믿는 믿음 속에 들어갈 때 그때 능력있는 종이 되었고 하나님 섬기는 귀한 일을 한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육체에서 벗어나 죽어서 영원한 나라에 가면 자유를 얻을 겁니다. 그러나 육체 안에 거하면 정말 내가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 경험, 그걸 알지만 그걸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믿을 때 육체 안에 거하는 동안에도 하나님 능력있는 일을 행할 수 있는 귀한 은혜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