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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전혀 아니고, 우리의 노력이나 범죄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범죄를 하는 것은(마음의 고통이 될 만한 범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하여 죄의 종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다만, 범죄라도 좀 해서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이 얼마나 악한지를 정확히 기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면 다들, '내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을 원하시겠구나'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 은혜를 입기를 원하시겠구나' 혹은 '마음에서 항상 말씀을 생각하고 기억하길 원하시겠구나'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만, 실제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마음은 전혀 다른 모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마음의 상태는 항상 '어렵고 힘들고 상한' 마음입니다. 즉, 내가 가진 어떤 물질과 수단과 방법으로도, 내 지혜로도 내 기술로도 내 잔머리도 전혀 통하지 않는 어떤 일이 우리 마음에 항상 있길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이유로서든지, 범죄로든 아내 때문이던지, 자식이던지, 혹은 교회 문제, 혹은 죄의 문제, 혹은 병이나 외로움이나, 그 어떤 방법으로라도 내 마음이 항상 어렵고 힘들고 고통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왜 그렇게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을 즐거워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위치가 우리가 정말 머물러야 할 곳으로 이동하길 원하십니다. 성경의 법칙을 아시면,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이 '나는 안돼, 나는 할 수 없어. 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내가 해 봐야 할 수 없어. 나는 누군가 내 옆에서 날 보살펴 주지 않으면 나는 안돼' 이런 마음에 머물러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 음성, 부르심으로 인해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우리의 마음이 항상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사실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항상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어떤 상태인지를 기억하는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것 보다는 성경에 나온 표현대로, 상한 심령이라는 표현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일해주시는 많은 역사로 인해 '난 정말 이런 놈이구나' '난 정말 악하구나' '난 절대 하나님을 섬길 수 없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 노력이나 방법이나 지혜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내가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할 수 있게 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우리에게 일하실 때 다른 것을 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마음으로 깨닫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대부분 마음이 높고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삶에 어려운 일을 허락하고 범죄를 허락함으로서 죄나 인생의 어려운 문제로 인해서 마음이 어려워 진 경우가 대부분 한 번 정도 있으셨을 줄로 압니다. 그 때 어떤 마음이였습니까? '난 역시 괜찮아' 이런 마음이였습니까? 아니면 '정말 난 왜 이럴까?' '내게 왜 이런 어려운 문제가 생길까?' '너무 괴롭다. 누가 날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하면서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불신하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아니였냐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혹시 누군가 다가와서 복음을 전해주거나 혹은 길을 가는데 전단지를 받거나 누군가에게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회개와 믿음 같은 책을 받지 않았습니까?
구원을 받은 분이라면, 내가 구원을 받을 때 어떤 마음의 상태였는지를 조금 기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떳떳하고 의롭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으실 때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죄 때문에 괴롭고 힘들고 어떤 문제 때문에 어렵고 좌절하고 낙망하고 마음이 상처가 있던 상태였는지..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 상태였습니까?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각자 다 다르게 하나님이 일하셨을 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신 뒤에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이였습니까? '역시 내가 잘나서 내가 정말 괜찮아서' 하나님이 날 구원해 주셨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이렇게 못나고 어리석은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까? 혹은 나에게 마음을 어렵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 이해 된 경우가 없습니까?
또, 구원을 받은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내 마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의 문제가 해결 된 후 내 마음에 더 이상 어려움이 없고 평안함과 기쁨과 감사가 있었습니까? 그래서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혹은 구원을 받은 후에 '난 이제 구원 받았다! 내 친구도 구원 받으면 좋겠다.'하면서 전도를 하다가, 복음을 듣지 않는 친구를 보면 어떤 마음을 가졌습니까?
"저 녀석은 복음을 전해줘도 듣지도 않네. 그럼 지옥 가는데 참 왜 이런걸 모르나 몰라"
혹시 이런 마음을 가지신 분이 있습니까? 혹은 '난 이제 구원 받았어. 이제 맘 놓고 살아도 돼. 하나님이 날 도우시겠지. 의인을 도와야지 누굴 도우시겠어?' 이런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혹은 '이제 성경을 읽어야지, 이제 기도를 좀 해야지. 이제 교회도 잘 나가서 교제도 하고 그렇게 즐겁게 지내야지.' 이런 마음을 가졌습니까? 도데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고 계셨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기 전에 그 마음의 상태와 지금 내가 가진 마음의 상태를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구원을 받기 전에 어려운 일을 겪기 전에 내 마음이 어땠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어떨 때에 내가 어려웠습니까?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떨 때에 내 마음에 감사가 왔습니까? 그 차이점이 무었이였습니까? 언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까? 그리고 언제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까? 한 번 자세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자꾸 죽어라 질문만 드리냐면, 성경은 바로 우리가 가진 마음의 상태를 비추어 내는 거울처럼, 내가 가진 마음에 따라 성경 안에 있는 글이 법으로 오기도 하고, 즐거움으로 오기도 하고, 마음으로 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히 일하시고 복주시려고 하고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법칙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분명히 일하시고 복 주시는 일이 나에게는 어려움으로 큰 문제로 생각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에게 힘든 일을 허락하시는 목적은, 우리가 범죄하게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어떤 마음 하나를 형성해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진주 조개의 입을 벌려서 그 입에 작은 모래 하나를 넣었을 때 그 모래가 진주 조개에게 큰 고통이 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어떤 어려움 하나를 넣어 주시고 그 어려움으로 인해 우리 안에 무엇인가 어떤 하나의 마음을 형성시키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우리를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이 있고 그 어려움이 도저히 소화가 안 된다면, 우리 안에 들어온 그 어려움이 사실은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믿고, 어려움으로 인해 내 마음이 그 어려움에 굴복 되어 지길 하나님은 참으로 원하십니다.
즉, 우리가 어려움이 왔을 때 그 어려움을 해결 할 수 없어서 실족하고 낙망하고 어려워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어렵고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 넣기에 정말 좋은 마음의 밭이 형성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마음이라는 것은, 나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해결하고 살면서 어려움 없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저히 해낼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문제나 어려움이 나에게 찾아와서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상황 앞에서 내가 더 이상 해봐야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마음을 말합니다.
진실로 죄 앞에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의 죄를 깨끗히 할 수 없다는 그 고통스런 마음의 상태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냐면, 그냥 그 마음의 상태로만 머물러 있었을 뿐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 없다, 의롭다'고 말씀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좋은 마음의 밭이 되었습니다. 그렇죠? 그냥 나는 고통하고 어려워하고 있었을 뿐인데, 이 마음은, 이 하나님이 주신 고통하고 상한 마음은, 내가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까 이제 '내'가 아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듣기 시작하는 마음의 상태가 되어 집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근본 마음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면, 사람마다 자신이 '좋다' '싫다' '이건 하면 안 된다' '이건 정말 해도 괜찮다' 하는 마음의 '선과 악의 사상'을 가지고 있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일을 하면, '음 괜찮다'고 내가 판단을 하고, '나'나 '남'이 보기에 그다지 문제가 없는 행동을 한다면, 가끔 실수를 하긴 해도 그다지 마음에 큰 문제를 삼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준이나 사회의 기준이나 직장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재어보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에 따라 만든 법이나 도덕이나 예절을 어기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잘못되어 진 일이 없다고 여기고 살아갑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실제로 하나님이 주신 법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내가 범죄했을 때 '성경을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가 두려워 했을 때 '성경을 보면 두려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하고 성경을 보고,
내가 내 자신을 지키려고 돈을 가지고 있을 때에 '성경에서는 어떤 문제가 일어 났는가?' 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내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이건 너무 심했다' '이건 참 어리석네' '왜 이렇게 했지?'하면서 판단하고 신기해 하기만 하는데, 실제로 성경 안에 있는 인물들이 가진 마음을 자세히 보고, 내 마음을 비춰보면, 성경에 있는 모든 악한 일들이 다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살인이나 간음, 거짓말과 우상 숭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 마음을 다해 지키지 않는 많은 것들을 실제 내 생활과 연결을 해 보게 된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이 많은 일들을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너무 높고 교만해 져 있는 상태라서 아무리 성경을 볼려고 해도 안 봐 지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이 마음이나 내 악한 마음이 비춰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어리석고 바보같은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로 절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고난과 어려움과 힘든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그런 형편에서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받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불신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내가 모르고 있던 마음이 스물스물 기어 나와서 나를 지배해 갑니다.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연보를 했는데!' '내가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 '내가 잘못한 거라곤 평생 교회 나와서 봉사한 것 밖에 없는데!'하면서 마음에서 온갖 상상도 못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너무 괴롭고 아프게 되면 이제 교회를 원망하고 형제 자매들을 원망하고 목사님을 욕하기까지 합니다. 대듭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악한 마음을 드디어 입으로 내어 놓기 시작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하나님이 그 악한 마음에서 잠시 나와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생기냐면,
'내가 도데체 왜 이렇게 원망했지? 내가 왜 이렇게 악하게 목사님께 대들었지? 내가 왜 교회를 안 가고 오래 동안 집에 있었지? 아, 난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였구나. 난 정말 교회를 대적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난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그럼 여태까지 내가 한 기도는 뭐지? 연보는 뭐지? 도데체 난 뭘 한거지?'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내가 한 일을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겁니다. 도데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하긴 했는데, 왜 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죠. 왜요? 원망이 나오고 범죄가 나오고 악한 것이 나오고 난 마음에는 무엇이 생기냐면, 내 자신을 한 번 볼 수 있는 마음이 형성됩니다.
사람을 죽이고 난 사람은, 사람을 죽일 때의 마음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또 음란을 범하는 사람은 음란할 때의 마음을 음욕이 다 해소된 후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부끄러워합니다. 창피히합니다. 왜냐면, 범죄나 원망이나 악한 것이 나온 후에 우리의 마음의 상태는 죄에 이끌려 갔던 그 마음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범죄할 때의 마음과 범죄한 후의 마음은 정말 다르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반드시 기억하고 또 조각칼로 반드시 새겨야 하고 우리가 교회 앞에 나와서 간증해야 하는 마음은, 지금 우리가 아무 문제 없이 악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이 마음' 말고, 즉 악한 것이 나와서 착하게 보이는 이 마음 말고, 범죄를 저지를 때의 우리의 마음, 원망할 때의 우리의 마음, 교회를 떠나고 싶을 때의 그 마음이 바로 실제 우리의 근본 모습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의 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을 때에는 이런 마음이 절대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다만 '기억'을 할 뿐이죠. 그래서 범죄한 후에 가지고 있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내 범죄한 것을 후회하고 한탄하고 이제 이 '회개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어야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모습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범죄하기 직전에는 발정난 수낙타가 암컷을 찾아 헤메는 것처럼 막 발광하다가, 자기 성욕이나 어떤 종류의 범죄 욕구가 '행함'으로 나타난 후에는 얌전한 수양으로 변신해서 착한 척 하고 풀을 뜯어 먹고 산다는 것이죠. 이게 우리의 마음의 실제 모습입니다. 만일 항상 발정나서 돌아다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자신을 믿고 살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마음은 정말 기가 막히게 우리를 속이는 것이, 어떤 사람은 98%의 시간을 선한 삶(?)을 살아가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2%의 삶만 악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죠. 그렇게 죄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잘 관리하는 사람은 내 안에 있는 악이 한 번 튀어 나와도 그다지 마음에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가 실수한 건데, 그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가끔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지 사람이! 그러면서 자신이 이제부터 99.9%의 성공률을 자랑하도록 마음을 다스려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어려움과 힘듬과 범죄하기 쉬운 환경에 있게 된다면, 우리 안에 있는 악이 더욱 더 발광을 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준 이 육신의 마음은 최대한 빛을 피해 숨어 다니다가 잠시 잠깐 어두움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양심에 있는 악을 깨닫기 참 어렵고, 그렇게 우리 양심에 속고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을 하나님은 구원하시길 원하셔서 우리 마음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계속 하나님은 어려움과 고통과 아픔을 주시고 범죄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들을 주십니까? 우리가 그렇게 고통과 고난을 당해서 우리 안에 있는 악이 마구 튀어나와서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깨지고 무너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깨지고 무너지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에 더욱 더 고통(?)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차라리 세상에 속한 자녀라면 하나님이 고난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사단이 사랑하기에, 그 속한 자들에게는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고 돈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일해주셔도 자기가 가진 것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나 많습니다. 재물을 가진 사람은 병이나 사고나 다 재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재물도 안 되면 또 다른 능력을 가지고 해결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해주셔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대부분 어떻습니까? 못나고 바보 같고 띨하고 멍청하고 돈 없고 능력 없고 사고 뭉치에 범죄에는 1등, 뒤에서 욕 잘하고 남을 미워하고 살인도 하고 간음도 하고 온갖 세상에 더럽고 못나고 천하고 바보같은 사람들이 우리 선교회 안에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이 택하신 자들이 잘하고 착하고 똑똑하고 선하게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아니죠.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신 이후에는 우리 마음을 완전히 갈아 엎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주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그 어려움을 통해 내 자신의 악을 보는 기회를 가지시고 또 그 어려움을 해결 할 수 없는 나의 연약함과 멍청함과 무능력함을 정확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어려움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는 우리가 그 어려움을 통해 마음이 깨어지고 무너지고 아파하고 상할 때입니다. 그런 상한 심령, 아픔 심령, 가난한 심령, 죄만 지어서 간절하게 하나님의 의를 바라는 심령들은 참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반드시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