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장 22절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서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와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역사는 잘 보이지 아니하고 사단이 역사하는 역사는 잘 보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 사단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지요.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이런 문제가 늘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늘 읽은 출애굽기 1장 22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가서 종노릇을 하고 있는데 바로 왕이 참 고민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역을 시키고 힘든 일을 시키면 출산율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역을 하고 힘든 일을 하기 때문에 몸이 건강해져서 출산율이 굉장히 높으니까 바로가 산파를 시켜서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했는데 산파가 죽이지를 못하니까 이번에는 바로가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자 여기에서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사단의 세력과 우리를 도우실 하나님의 세력이 맞부딪히는 모양을 볼 수가 있는데 우리가 그냥 예를 들어 말하자면 바로 왕이 모든 남자를 죽이라 했다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모든 남자는 한명도 살지 말고 다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나일강에 다 던져서 죽이라고 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습니까? 죽지 않았습니다. 왜? 이들을 지키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제 2장에 들어가 보면 “레위 족속 중 한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해서 모세를 낳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석달 동안 숨겨져 있다가 이제 석달 후에 모세의 부모가 도저히 더 숨길수가 없어서 갈상자에 넣어서 나일강에 갖다버리지요. 그래 갈대 숲속에서 바로 왕의 공주가 와서 보고 모세를 발견해서 그를 양아들로 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에 의해서 건짐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할 때에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었는데 그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 남자 여자 다 통틀어 그런 것이 아니라 남자만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바로 왕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가 있었습니까? 성경 출애굽기 2장에서 모세가 나일강에 던져져서 죽어야 할 사람인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난 이야기는 있지만 나머지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 어떻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린 것처럼 그들을 살렸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남자들만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 나올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때는 죽이라는 바로 왕의 능력만 보이고 구원하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까 ‘야 우린 다 죽었어. 우린 끝장이야. 난리 났어. 이제 다 죽었어.’ 그러면서 절망 속에 빠지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 다 살아서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와서 가나안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는 모양을 볼 수가 있지요.
그럼 우리가 처음에 바로 왕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라 해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야 이제 우리는 끝장이다. 다 죽는다. 이젠 다 죽었다.’ 그렇게 여겨지지만 절대로 바로 왕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보이지 아니하고 그 나라의 일들만 보이면 ‘아 내가 앞으로 여기 선교를 할 수 있겠나? 일할 수 있겠나?’ 그럴 때가 참 많고 어떨 때는 비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당할 때가 있고 ‘이러다 쫓겨나가는 게 아닌가?’ 그런 염려 속에 빠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히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바로 왕의 권세가 크지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기 때문에 실제로 몇 명이나 나일강에 빠져죽었는지 모르지만 왕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라 했기에 다 죽어야 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은 죽지 아니하고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여러 번 내 앞에 닥치는 형편이나 환경, 이런 걸 보면 ‘아 나 이제 끝장이다. 나는 죽었다. 이제 이건 안돼. 어려워.’ 그럴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떨 때 보면 분명히 내가 안 되고 죽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게 다 해결이 되어있는 거예요. 그건 왜냐하면 나를 멸하려고 하는 사단의 권세와 나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는데 결론적으로 누가 크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시냐, 사단이 크냐?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 크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역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월드캠프를 하는 것이나 말레이시아 캠프하는 것도 그랬고 이번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할 때도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늘 이루어주셨고 그라시아스나 저희들 선교사들이 하는 모든 일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두려워가지고 ‘아 이제 바로 왕이 다 죽이면 우린 죽었다. 끝장이다’ 그렇게 포기한 사람들은 하나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형편을 보지만 ‘이건 사단이 하는 거야.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셔. 하나님은 사단보다 커.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 그런 믿음을 가지고 보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 하수에 던지라고 했지만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을 지키셔서 나일강에 빠뜨리지 아니하고 그들을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본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하는 하나님 일에 우리를 대적하는 일도 있고 우리를 돕는 일도 있는데 우리가 대적하는 사단의 역사를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사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믿음으로 달려가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걸 이길 수가 있고 하나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단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해 두려워 스스로 포기해서 하나님 일을 못하는데 사단이 가장 바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동안에 어렵고 힘들고 절망적인 일이 있지만 그 절망을 만들어내는 사단하고 소망을 만드시는 하나님, 누가 크냐? 하나님의 소망이 절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모든 일에 아름답게 이끄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간다면 여러분 삶에 정말 복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