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잠3:7-
때가 되니 주의 말씀이 내 정체를 드러내셨다.
글을 올린지 한 달이 조금 넘는 듯 하다. 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그리고 은근히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겼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한 생각들이 글로 나타날 때 흐못해하며 주께 감사했다. 그러면서 한 구석에서 나를 괜챦은 "필객"으로 여기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러면 안되는데---' 했지만 올라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원수였다. 내 마음에는 이미 악한 씨가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글을 올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교회에서 종종 감사함으로 어렵지 않게 간증을 했다. 그러나 너무도 형편과 맞지않는 간증을 해야 했을때 나는 순종하지 않았다. 아니 순종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내가 보나 누가 보아도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 주를 고심하다가 결국 간증하고 망하자는 마음을 받고 교회 앞에 간증을 했다. 그 직후에 시편 45편 1절 말씀이 내 마음을 드러내 주어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한 통 편지쓰며 살고 싶었기에 잘 됐다 싶었다. 너무 생각나고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감히 편지로 써서 전해 드렸다. 그러다 홈페이지에 들어와 게시판을 보면서 여기에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글로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올렸다. 지난 번에 내 생각에 매여 불순종하다가 여러가지로 불편했던 기억이 나서 앞 뒤 재지않고 거의 즉각 순종했다고 보면 맞다.
글을 쓰면서 참 좋았다.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썼다. 그런데 자꾸 글을 올리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우선 감사한 마음이었다. 구원받기 전에 내가 운영하던 교회 카페에 늘 "소경의 글"을 쓰곤 했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개안의 글"을 쓴다 싶으니 너무 감사했다. 심봉사 넋두리도 그렇게 열심히 했었는데 -----. 더 열심히 마음을 다하고 싶었다. 주께서 내게 크나큰 은혜를 베푸셨음이 분명했다. 하루 한편 "왕에게 바치는 아리따운 노래"를 언제까지든지 마음껏 부르고 싶었다. 누가 뭐라하든 -----!
그런 마음이 있었다. 마음껏 간증하고 싶은! 잠간의 몇 분 간증으로는 내 마음을 다 드러낼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주님! 마음껏 간증하게 해 주십시오' 나는 강단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했고 또 그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하게 되었으니 -----. 주의 은혜였다. 내 마음을 아신 주님이 참 감사했다.
칭찬하면 좋았다. 그러나 걸고 나오면 일단은 불편했다. 무성의가 싫었고 막무가내가 우스웠다. 훈수는 믿음의 말이 아니었다. 울었으니 울었다고 하는것인데 감정을 빼라니----. 나는 성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못마땅하면 지들이 하지! 하지도 않는 것들이 ----' 그러면서 나는 나를 돌아 봤다. 물론 대부분 합당한 지적이었고 마음으로 들을 말이었다.
쓰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표현들이 종종 튀어 나왔다. 나 스스로 보기에 기가 막힌 표현이었다. 분명 주가 하시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괜챦은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도 한 자락 같이 흘렀다. '야 ---. 역시! 난 글재주가 좀 있어. 흐흐흐!!!' 그 위로 흑심이 스쳐 지나갔고 야심도 얼핏 나타났으며 고약한 앙심도 터져 나왔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몰랐지?' 원수의 마음이었다. 주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마귀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마귀도 같이 역사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요놈의 마귀?를 그냥 --!!!!
주께서 정확하게 내 그런 마음을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가르쳐 주신다. 감사하다. 한자락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히는, 나를 괜챦케 여기는 나도 알 수 없는 마음의 정체를 "스지여마"라고 정확하게 드러내 주시니 어려운 문제의 정답이 되어 내 마음에 쉼이 온다. 누구의 무슨 말인들 이에 비하랴! 주의 말씀이 임했으니 그 말씀이 나를 인도하시고 붙드시리라! 나는 다만 내 악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주께 내어 드릴 뿐이다. 아니 그냥 주를 바라볼 뿐이다.
종은 머리로 살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산다 하셨다. 처음 들었을 때 놀랐지만 여전히 놀랍다. 알 수 없다. 조금은 알것도 같고 ------.
건축봉사하면서 계산하며 요령을 피우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 뻔했다. 나중에 후회하기 싫어 그 거룩한 봉사에 나는 마음을 다하려 애썼다. 후회하는 삶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 남은 생을 살면서 나는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다. 기도할 뿐이다.
"스지여말!" 내 남은 생에 주시는 주의 경구다! "여경악떠"는 자동이다.
비가 옵니다.
누런 송아가루 띠가 흐르는 빗물을 타고 흘러갑니다.
주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에 크신 은혜를 더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