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말씀이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는 것이고 하나는 자주자주 눈물이 고인다는 것이다. 이 두 일이 나로서는 너무 신기하다. 그렇게 말씀과 눈물에 젖고나면 나의 마음은 너무 잔잔해지고 평안해진다. 내게 주신 주의 선물이기에 감사하다.
교회에 들어와 종들의 말씀을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종들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종들의 입술을 통하여 내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믿음이 분명히 있었다. 시선을 돌리지 않았고 귀를 닫을 수 없었다. 누구여도 상관없었고 어떤 내용이어도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였기에 '주여! 내게 말씀하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예배에 참석했고 말씀을 들었다. 말씀은 늘 달았다.
종들의 말씀은 나를 질리게(?) 했다. 그래도 내가 목사인데---. 그러나 목사였던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고 따라갈 수 없는 설교였다. 오로지 복음이었다. 아니 지독할 정도였다. 오직 마음으로 받는 복음의 세계를 아무 기교없이 담담하게 전하는 모습에 나의 기가 막혔다. 한 시대 한 하늘 아래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저 분이 저런 수준이면 그 윗분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나는 대꾸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냥 무장해제하고 들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어느 분의 설교도 들을 수 있었고 또 좋았다. 분명 내 스타일이 아닌데도 굳이 참을 것도 없이 그 길고 긴 말씀이 내 귀에 들렸다.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이제는 성경말씀을 마음으로 읽는다. 읽을때마다 내 마음과 삶을 그대로 적어놓은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침에 포켓성경 "시편잠언"을 늘 읽는다. 어디든 펴서 읽으면 거기에 나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나중에 잊지않고 보기위해 늘 메모한다. 아침에 읽는 말씀이 내 마음을 새롭게 하고 내 생각을 돌이킨다.
나는 자주자주 깔깔대며 웃는다. 삐친 어린아이가 기분이 좋아지면 그렇게 웃을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가 소리나는 귀여운 장난감을 흔들어줄 때!
나는 말씀이 너무 좋아 성경을 품에 안고 잤다는 종의 간증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다!
달라진게 많지만 지금 이 순간, 확연히 달라진게 하나 보인다. 내가 일기를 아침에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늘 자기 전에 쓰던 일기였는데----. 그리고 일기의 내용의 대부분이 빨간 펜으로 적은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놀라운 일이다.
구원 전에 나는 원망과 넋두리로 내 일기장을 가득 채우곤 했었다. 나의 원함만이 넘실대던 그 일기장! 어디 한군데 말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원함만 가득했다. 그 원함이 채워지지 않으니 나를 탓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 한 때는 눈뜨면 간 밤의 꿈을 적곤 했었다. 허무맹랑한 꿈을 적다니 ----.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었다.
자주자주 눈물이 맺히는 것은 정말 달라진 모습이다.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금 울었을 뿐이다. 눈물은 사내의 수치 아니던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던 내가 이제 눈물을 흘린다. 자주자주! 왜 그런지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공사현장에서 너무너무 외롭고 고단하고 피곤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 눈물의 현장이라는 것! 그리고 너무너무 간절히 주를 찾아해맸던 구원 전의 일들이 또 나를 서럽게 한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북받쳐 찬송을 다 부를 수 없다는 것!
종이 구원받고 나서 참 많이 우셨다는 표현을 딱 한번 하신 걸로 기억이 난다. 구원은 참 쉬운 것이었다는 말씀과 함께!
주께서는 내게 정직을 말하라 하신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잠언23:15,16-
나는 어리석다. 늘 망설이고 주저한다. 그리고 자꾸 가리고 뺀다. 보태고 부풀리기까지 한다. 어쩔 수 없다. 주께서 정직하게 하셔야 조금 정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