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생활은 아무 불편이 없었다. 전에 목사님께서 쓰시던 공간이었기에 거실도 넓었고 방도 깨끗했다. 우리 세 사람은 방 한칸씩을 차지하고 지냈다.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웬지 자꾸 내 방의 장롱을 구석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잘려고 해도 잠이 오질 않고 장롱을 구석으로 밀어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장롱을 옮기면 먼지도 닦아내야 하고 -----.
결국 그 날 늦은 심야에 나는 장롱을 한 쪽 구석으로 옮겼다. 빈 것이어서 무겁지는 않았다. 왜 늦은 밤에 꼭 그렇게 해야 했는지 알 수 없었고 이상하기만 했다.
다음 날 방에 들어가 보니 한 형제님이 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 낮에 터파기를 하던 포크레인 기사형제였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같이 누워 이야기꽃을 피웠다. 낮에 현장에서 볼 때는 말도 없는 형제였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너무도 달변에다가 얼마나 우습기도 한지----. 마치 열 댓살 먹은 소년같았다.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또 놀라운 것은 성경을 줄줄 꿰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력도 없는 분이었고 일반교회에 오랜 다닌 경력도 없는데도 성경을 줄줄이 꿰고 있으니-----. 전직이 목사였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수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편105편17-19)
교제중에 이 말씀을 내게 주었다. 처음 듣는 말씀이었다. 온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를 먼저 앞 서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종으로 팔려 온 것이었다. 이미 착고에 채인 몸이었고 사슬에 매인 몸이었다. 나의 아픔과 고난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이 말씀은 내게 너무도 큰 은혜와 믿음을 주었다. 그 형제님과의 교제는 날마다 나에게 기쁨과 소망을 맛보게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우리는 누워 끝없이 간증하며 말씀을 나누었다. 나는 늘 놀랐다. 이 형제님의 정체는 도무지 파악이 안되는 것이었다. 한가지는 아이같다는 것이었다. 형제님이 누워서 성경을 뒤적이다가 말을 하면 나는 늘 들었다. 그 신령한 입술에 나는 놀라고 놀랄 뿐 이었다.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며 거룩한 교제를 늘 절제해야 했다.
그 형제님이 들어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늦은 밤에 그 장롱을 치우게 하셨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따라 되었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신기할 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하고 기쁘다. 그 형제님은 지금도 어느 공사현장에서 봉사하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