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목회철학!
되는대로 살면서도 나는 내가 쥘 한가지 목회철학을 꼭 잡으려했다. 선교회에서 품었던 "이방의 빛 열방의 선지자"의 비전 위에 드디어 한가지 목회철학을 잡아 올렸다. 그 당시 한국교계나 신학교에서는 서울 사랑의 교회 ㅇ목사의 제자양성 목회방법론이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두 그 방법이 새롭고 옳은 목회방법이라며 배우고 따르기에 열중이었다. 그 분의 저서 "평신도를 깨운다"는 당시 신학교 최고의 목회학교재였다. 나도 그 책을 읽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비판적이었던 내게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비판의 날을 세웠다. "평신도를 깨운다고? 웃기고 있네. 평신도를 왜 깨우냐? 목회자들이 깨어야지! 평신도들이 무슨 죄가 있어? 평신도들은 교회 열심히 다니고 헌금한 죄 밖에 없어. 자긴 누가 자? 잠자기는 커녕 신음하며 고통하는 이 땅의 평신도들이 안 보여? 먹고 사느라 새벽잠, 밤잠 설치지----. 이런저런 문제와 환란으로 언제 다리뻗고 잠인들 한 숨 편하게 자겠어? 이 민족은 허리가 잘린 민족이야. 역사의 고통을 온 몸으로 부딛히며 신음하는 이 땅의 평신도들을 편안히 잠들게 해 줘야지 깨우긴 누굴 깨워? 배 부르고 할 일없는 강남의 마나님들이나 가 깨우시지---. 그거 그 얘기잖아! 목회자들이 깨어 지키고 양들은 편안히 자야 성경적이야! 안 그래?" 나는 나를 따르는 후배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지독하게 역사와 현실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또 당시에 교계에 유행하던 현실비판적인 신학사상의 영향 때문이었다. 난 담대하게(?) 대립각을 세웠다. "평신도를 재워라! 목회자를 깨워라!" 그 분의 저서의 주장은 한국 교회안에 잠들어 있는 능력있는 평신도들을 제자양성하여 목회자에 버금가는 일꾼으로 일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올바른 한국교회상를 갈망하는 아주 옳은 진단과 적절한 방향제시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한계가 크게 보였다. 그 분의 제자양성방식은 어느정도 식견이 필요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대도시 중산층 이상의 수준에서나 가능한 방식이지 중소도시나 대부분의 농어촌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 분도 그런 한계를 책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농어촌에서 영웅적인 성공을 기대한다는 말로-----. 난 다짐했다. "목회자를 깨우고 평신도를 재워라!" 나는 이 목회철학으로 보란듯이 목회를 성공하여 상중하로 세 권의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세 권이면 한국교회를 뒤집어 엎고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로 야심찬 객기였으며 겁없는 도발이었다. 나는 지방의 이름없는 신학생이었지만 젊음과 가능성 하나로 그 대단하고 유명하신 분의 산을 넘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하면 되지 안될 게 뭐가 있어. 난 물론 못하지. 기도하고 능력받아서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면 되는거야. 예수님처럼 깨어있는 목자가 되는거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시대에 누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랴? 하나님께서 내게만 주시는 영감이자 비전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도 맞고 기가막힌 사상이었다. 난 그날이 오리라 굳게 믿었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33에 조금 늦은 결혼을 했다. 전도사생활을 거쳐 35살에 목회를 시작했다. 지하 개척교회에서 이사야 49장과 예레미야 1장을 붙잡고 늘 부르짖어 기도했다. 또 이어서 평신도를 재울 수 있는 깨어있는 목회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세운 거창하고 고상한 목회의 비전과 소망을 이루어야 겠기에 나의 기도는 간절하고도 확신에 찬 것이었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주여! 주여!" 나는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를 불렀다. 그리고 기도의 마지막 마무리는 다음과 같았다. "주여! 제가 오늘도 경건을 연습했나이다. 그 연습이 형편없지만 긍휼히 여기사 주의 때에 경건의 능력이 되어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늘 거룩한 척 경건한 척 했지만 사춘기 이후 내 안의 정욕과 음란으로 늘 고통스러웠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전혀 없는 내 모습에 나는 늘 절망했다. 난 정말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싶었다. 선하고 착하고 능력있고----.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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