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15절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이 너무너무 신비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냥 평범한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 우리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는 그 그림을 정확하게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그렸다는 거지요.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처음에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내게 물을 좀 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말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처음부터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를 예수님이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러니까 여자가 그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해가 안가는 거예요.
‘생수를 주신다?’
이 여자가 말했지요.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나이까?”
예수님 또 말씀하시죠.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실제로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사마리아 여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이해가 잘 안 가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아이 그런 물이 어디 있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어디 있어요? 배 속에 수도꼭지를 박았나요?’ 아마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해야하는데 놀랍게도 이 여자는 그 이야기를 그렇게 듣지 아니하고 하나하나 받아들이면서 그 여자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여자의 이런 이야기는 너무 놀라운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지? 이 여자는 속도 없는 여자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어떻게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이 이야기 전에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니고데모하고 사마리아 여자하고를 딱 비교해보면 니고데모는 성실하게 살고 소위 말해서 셀프 컨트롤이 되고 자기를 다스리고 그래서 자기의 지위도 얻었고 세상 사람들에게 명성도 얻고 반듯하게 사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사마리아 여자는 얻은 게 아무 것도 없고 삶도 별로 좋지를 않고 방탕하고 그렇게 산 여자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는데 니고데모는 자기를 믿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자기 기준이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지만 자기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를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 가지요. 니고데모가 뭐라고 했습니까?
“선생님, 선생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거듭나는 게 잘 이해가 안갑니다. 거듭나는 게 뭐며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물어야 했다는 거지요. 그런데 니고데모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나이까?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나이까?”
말도 아니라는 식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받아넘겨버리는 거지요.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대화가 안 되는 게 니고데모는 자기 기준이 옳으니까 자기 기준을 믿고 자기 판단을 믿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사마리아 여자는 달랐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게 잘 된 게 아무 것도 없고 자기 해온 모든 게 다 틀렸으니까 예수님의 이야기가 자기에게 안 맞습니다. 안 맞는데 자기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내가 틀렸으니까 안 맞는 저게 옳은 거야. 이해가 안 가지만 내 방법이 틀렸고 저 방법이 옳아. 안 맞아야 돼.’ 자기에게 전혀 안 맞는 이야기를 이 여자는 마음에 받아들인다는 거지요. 왜? 자기가 틀린 걸 아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이야기가 마음에 맞아서 받아들이는 건 하나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건 믿음도 아니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러나 예수님의 이야기가 자기 마음에 전혀 맞지 않는데 이해가 안 가는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정확히 틀린 걸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방법이 틀린 걸 아는 사람이고 자기가 잘못된 걸 깨닫는 사람이니까 ‘예수님의 이야기가 맞지 않지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이 틀렸으니까, 내 생각으로 안 되니까 안 맞는 저 이야기가 옳을 거야. 그러니까 저 이야기를 내가 받아들여야 돼.’ 이 여자는 그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물이 깊은데 물을 길을 그릇이 없는데도 생수를 이야기할 때 그 여자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고 “이 물을 먹는 자마나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려니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해가 안 가지만 이 여자는 그 말을 받아들인 거지요. 여자가 말했습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봅니다.
여러분 그래서 결국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여자가 사는 겁니다. 자기가 틀렸으니까 마치 여러분 자동차 타이어가 빵구가 나면 그걸 떼버리고 온전한 새 타이어로 바꿔 끼우듯이 말입니다. 자기 마음이 빵구 난 자동차 타이어처럼 고장났고 틀린 걸 아니까 마음을 자기 것과 같은 걸로 아니고 자기보다 더 좋은 다른 걸로 바꾸었다는 거지요.
이제 이 여자는 자기 마음으로 사는 여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니까 예수님 마음이 여자 속에 들어와서 두려움을, 슬픔을, 음란을 모두 내쫓아 주시고 예수님의 마음이 이 여자 속에 오니까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보니까 ‘아 저사람 참 불쌍하다. 옛날에 나도 저렇게 살았는데 저분에게 예수님을 이야기 해야겠다.’ 예수님 마음이 들어가니까 이 여자가 예수님을 소개해서 많은 사람을 주님 앞에 이끄는 걸 보았습니다.
여자는 자기 노력으로 자기를 바꾼 게 아니고 자기 마음을 버리고 자기가 틀린 걸 알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예수님 마음이 그 속에 들어가 일을 하기 때문에 이제 몸은 이 여자의 몸이지만 작은 예수님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처럼 내가 틀리고 잘못된 걸 깨닫고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여 예수님으로 사는 삶, 이것이 참된 삶인 줄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