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영상교제 말씀
시편 78편 4절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저는 시편 78편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강하게 받아들였는데 제가 대전도집회를 여러 차례 하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대전도집회 참석해가지고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그래요. 그런데 아쉬운 게 뭐냐하면 대전도집회는 제가 많이 할 때는 열세시간 설교할 때도 있고 짧게는 일곱 시간 아홉 시간 그렇게 하는데 구원의 기준이 어느 선에 있으면 사람들이 막 여기 가까이 올라왔다가 아슬아슬한데 집회가 끝나니까 참 아쉬운 거예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분석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 말씀이 마음 안에 살아있기도 하지만 그 말씀을 죽이는 인간들의 생각이나 믿음으로 이끌지 못하는 그런 힘들이 마음 안에 있어서 똑같이 한 주간 집회를 참석하는데 마음 안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이제 마치 여러분 병원에서 환자들이 어떤 병에 걸렸을 때 결핵이나 말라리아나 장티푸스에 걸렸을 때에 막 병균이 확 일어나가지고 몸을 공격할 때 다시 약을 넣어가지고 그 싸움이 일어나다가 어느 날 병균이 딱 꺾이면서 항체가 형성되거나 병이 이기거나 그런 일이 있고 반대로 병이 확 일어나면 사람이 죽는다든지 그런 경우가 있는 거예요. 병의 증세가 똑같아도 좋아지면서 이 상태에 머무는 사람하고 나빠지면서 이 상태에 머무는 사람하고는 전혀 다른 거예요. 똑같은 위치에 있어도 좋아지면서 머무는 사람들은 소망이 있고 나빠지면 절망스러운 거지요. 마음의 세계도 똑같은 그런 싸움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가 상상을 하지요. 돈 만원 짜리를 딱 꺼내놓고 ‘야 이게 일억 짜리 수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때가 있는 거예요. 만원 짜리 하나 꺼내놓고 ‘이게 일억 짜리 수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건 상상이기 때문에 상상을 해보는 거지 이게 일억 짜리라고 믿는 바보는 아무도 없어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게 일억 짜리가 되면 좋겠다.’ 라고 상상은 하지만 이게 일억 짜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는데 마음의 세계는 그렇지를 않아요. 여러분 노아 홍수 당시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당시 백성들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었느냐 하면 ‘비가 안 와. 오긴 뭘 와. 좀 오다 말겠지.’ 그런 생각이 일어났어요. 그건 상상이예요. 사실이 아니고. 그 상상이나 만원 짜리를 들고 ‘이거 일억이었으면 좋겠다.’ 똑같은 생각인데 물질적인 세계는 만원 짜리가 일억이라고 상상하면서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지 그걸 일억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의 세계는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안에서 사단이 주는 절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싸우면서 그게 어느 선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때 집회는 끝났는데 ‘참 은혜롭다. 집회는 좋았다. 참 은혜롭다.’ 그러는데 구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 집회를 주관하는 나로서는 안타깝고 안타까운 거예요. 다르게 말하면 이게 능력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고 정말 내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이제 우리 마음 안에서 애굽에서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칠년 풍년을 만날 때 곡식을 쌓아두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칠년 흉년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세계도 저는 하나님이 역사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왜 하는지 아세요? 형제자매들은 “아 목사님 배 아파 나은 간증 열 번만 더 들으면 백번 째예요. 군대 장갑 간증 저는 다 외워요.” 그런데 제가 그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그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들이 참 귀해서 내 마음 안에 쌓아놓는 거예요. 코카콜라를 파는 코카콜라 회사에서 코카콜라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코카콜라를 알리기 위하여 코카콜라를 선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 콜라를 마실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 코카콜라가 뭔지 알아요. 그런데 그들이 말하기를 한 달만 광고를 안 하면 콜라 판매량이 뚝 떨어진다는 거예요. 왜? 마음 안에 생각 안에 굉장히 많은 음료수가 있어요. 콜라도 있고, 환타도 있고, 미린다도 있고, 사이다도 있고, 펩시도 있고, 그런데 사람의 생각 속에 그걸 제일 위에 올려놔야 “코카콜라주세요” 그 이야기가 나오도록 제일 위로 끌어올려놓는다는 거지요. 우리의 생각 속에서 많은 걱정이 있고 근심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문제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근심이 있고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있어도 하나님 내게 주신 축복이 크다 할 때 그게 문제를 딱 눌러줘요. 그러나 이런 근심만 있고 하나님 내게 역사를 하셨지만 하나님 역사한 그 기억이 전혀 없을 때 근심이 내 마음에 왕노릇을 하는 거예요. 시험에 빠지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게 아닌데... 시편 78편이 이야기하는 게 바로 그 말씀이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양의 피를 문에 발라 살았습니다. 놀랍지요?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만나가 내려왔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놀라우냐? 그런데 그 놀라운 것을 기억에서 잊어버리고 불평스러운 것만 일어나면 그 사람은 불평하는 사람이예요. 하나님의 굉장히 많은 은혜를 입고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은혜가 기억에 안 남아있는 사람들은 절망하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서 하는 말이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후대에 전하겠다.”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 영국이 은숙이 어릴 때 “옛날에 아버지가 어려웠었어.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줬어.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복을 주었어.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어.” 그걸 생각해보면 그 은혜가 너무너무 많아서 저희 선교회 안이나 우리 개인 속에 일하는 하나님은 너무 큰데 그것 다 지우고 고난을 생각하고 절망을 생각하며 그 사람은 절망에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걸 여러분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옛날에 이럴 때 하나님이 이렇게 도와줬어.” 실감나도록 ‘아 하나님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는구나.’ “아버지가 어려울 때, 영국이 너를 낳을 때 하나님 어떻게 너를 도왔는지 알아? 너 학교를 보낼 때 하나님이 어떻게 너를 도운 줄 알아?” 그런 이야기들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거지요. 요즘 저희들 교회 아이들이 중학생이 교회 나오면 한 시간 예배 드리는데 막 못 견뎌 하는 거예요. 왜? 애들 중심으로 키워서 그래요. “정말 아버지가 거지가 되었을는지도 모르고 노숙자가 되었을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 거야. 너무 감사해.” 우리 손자하고 주일 아침마다 예배를 드려요. 그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옛날에 할아버지가 이랬었어. 할아버지가 옛날에 정말 나쁜 짓을 했었어. 하나님이 나를 거기서 건져 이렇게 했어.” 그 이야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이 아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우리 마음에서 깨닫고 우리 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시험이 와도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매를 맞아도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을 때 전혀 마음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 어려운 문제만 당하면 그건 문제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적을 자주자주 이야기하고 은혜를 감사하고 후손들에게 알리고 자녀들이 은혜에 마음을 두고 정말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귀중한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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