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기독교 대학생입니다.
얼마 전에 기쁜소식 선교회 성도인 한 분과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그 분과 신약성경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복음을 전하시면서 바울 서한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시더군요...
하지만 바울 서한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그 분이 잘 모르시던군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제가 기쁜소식 선교회 모든 성도분들께 질문을 드립니다..
대답이 가능하신 분은 밑의 브렌든의 "위대한 신앙해석자 바울의 명예회복"에서 간추린
글을 읽어보시고 질문에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울은 종종 자신을 따르는 개종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몇몇 적대자들에 대해 심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때로 그들을 향해 매우 격렬한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이상스럽게도 우회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바울의 서한들은 어찌하여 그토록 격렬한 논쟁으로 가득차 있는가?"
"즉 자신의 가르침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특히 예루살렘 최초의 사도들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넌지시 자신의 가르침이 예루살렘의 최초의 사도들로부터 이어져온 전승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 가르침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가르침이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측면을 옹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반대자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바울 서한에서 언급된 사실들에 비추어볼 때, 그리고 바울이 예루살렘 사도들로부터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려 했던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예수를 가르친 바울 반대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거나 그들이 파송한 대리인이었으리라는 점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최근의 예루살렘 방문을 묘사하면서, 이 지도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좀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3인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바울은 그들을 기둥(stuloi)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이름은 야고보, 게바, 요한(갈 2:9)이었다."
"베드로가 누구인가? 그는 예수의 생존시 사도들의 지도자였던 인물이다. 이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야고보의 우월한 지위를 설명해 주는 근거는 야고보가 예수의 동생(갈 1:19)이었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예수와의 혈연 관계는 분명 야고보에게 커다란 신망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강인한 성격과 능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는 점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유대인 그리스도교도들이 이방인 그리스도교도들과 더불어 식사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안디옥에서의 논쟁에 관해 언급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원래 바울과 의견을 같이 했던 베드로는, 나중에 야고보가 파송한 대리인들이 도착하자 이내 입장을 바꿨는데, 그것은 분명 야고보에 대한 순종을 뜻하는 행동이다.(갈 2:12) 그러므로 바울과 의견을 달리했던, 그리고 바울이 "다른 예수"를 가르치는 다른 복음이라고 빈정거리면서 암묵적으로 지목했던 것은 야고보에 의해 주도된 예루살렘 교회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이 예루살렘 복음은 어떻게 해서 바울의 복음과 그토록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을까?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자. 예루살렘 그리스도 교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계속 예배를 봤고, 유대교의 의식을 거행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정통 유대교와 불일치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고, 민족 종교와의 분리를 요규ㅜ하는 것도 아니라고 간주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예쑤는 이스라엘의 약속된 메시아였다. 단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 문젯거리였다. 메시아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아는 이방 정복자들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줄 강력한 투사로 기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죽은은 이스라엘을 위해 로마인에게 희생당한 순교자의 죽음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를 죽음에서 일으켜세울 것이며, 그는 조만간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돌아와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예루살렘 그리스도교도들의 복음이었다."
"바울이 가르친 새로운 신앙이란 무엇이었을까? 바울은 개종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신앙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다.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아를 가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불가사의한 그의 회심과정의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바울은 십자가에 못학힌 예수가 살아있으며 신격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게 디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치욕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바울이 예루살렘 그리스도교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갖게 되고, 그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주장하게 된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바울이 볼 때, 예수의 죽음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위한 순교자의 죽음에 머물 수 없었다. 그것은 더욱 시뭔하고 보편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했다. 바울은 이러한 의미를 해석해내고자 시도하면서 비록 무의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분명히 헬레니즘적 배경에 의전하게 되었다. 헬레니즘 세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 제의들과 비의 철학들이 풍부했다. 바울은 의식적으로는 그것들을 거짓 신에 대한 숭배, 또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단호하게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그것들은 동시대 그리스 로마 사회의 열망과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로 당시 유포되었던 종교적 어휘들이 대부분 거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세계의 의식과 철학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전파했던 핵심적 개념은 구원자로서의 신과 타락한 인간 상태라는 두가지 개념이었다. 구원자로서의 신 개념의 고전적 패턴은 고대 이집트 오시리스에게서 유래한 것이었다. 추종자들은 오시리스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제의를 통해 오시리스와 동화됨으로써 그들 역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영지주의로 분류할 수 있는 다양한 비의 철학들은 모든 인간 존재가 육체의 감옥에 갇힌 불멸의 영혼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불행이 밎어진 것은, 빛과 행복의 낙원에 있던 영혼이 죄로 인해 타락하고 물질의 속박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육체를 입음으로써 영혼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마적 힘에 종속되었다. 이러한 파멸 상태에서 영혼은 그 본성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구원ㅇ르 얻을 수 있다. 물질의 속박에서 해방됨으로써 영혼은 그 본향인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정통 유대교에 있어서 이질적인 것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의미를 탐색하던 중, 인간이 악마적 힘에 의해 노예가 되었으며 신적인 구원자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는 전제위에서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실질적으로 그것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의 예수 대신, 인류의 신적인 구원자로서의 예수를 제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든 인류가 동일한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전제한 것이었다. 그와 같은 복음은 예루살렘 그리스도 교도들의 가르침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예루살렘 그리스도교도들은 바울의 복음을 싫어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동일시함으로써 유대인의 정신적 우월감을 박탈했을 분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이방인의 구원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0장 29절에 나오는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의심할 나위 없이 바울의 그리스도교 해석은 절멸되어 버리고, 예쑤로 말미암아 등장한 신앙은 유대교 내부에서 소수의 메시아적 분파신앙으로 남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서기 66년에 유대 민족주의자들은 로마의 유대 지배에 반기를 들었다. 4년 동안의 격렬한 전쟁이 있은 후 유대국가는 멸망했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으며, 성전은 파괴되었다. 그와 같은 격변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교회는 사라져버렸다. 결국 예루살렘 모교회의 지배권은 깨졌고, 이방교회들만이 남아 앞날을 개척하게 되었다. 유대적 그리스도교의 멸망이라고 하는 상징적 사건은 위대한 신앙해석자로서의 바울의 위신을 복원시켜주었다."
질문 1 : 베드로와 야고보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의 구원에 대한 신앙적 길을 싫어했다. (행 21장 참조) 그렇다면 그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인가?
질문 2 : 바울은 당시 유행했던 헬레니즘적 사상을 메시아적 사상에 결합시켜 영원한 속죄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이사야 서에 나오는 메시아의 고난과 연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이는 전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구절하나라도 있으면 제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방인들과 상관이 없지 않는가?(실제로 야고보와 다른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질문 3 : 왜 신양성경에 바울의 해석과 다른 제자의 복음들이 많이 실리지 못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