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 곧 닭이 울기전에를 읽고
맞습니다.
김민정 자매님? 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믿음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사단의 거짓말을 믿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죄가 들어와 선악을 알게 되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책감으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고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때 나아가지 못하고 나무속으로 숨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을 떠나면 빛과 생명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흑암으로 숨게 되지요.
말씀이라는 전선을 통해 흐르든 하나님의 생명이 끊어지니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의 영은 빛을 잃고 정녕 죽게 된 것입니다.
그때 부터 아담은 육신과 혼으로만 살게 되었지요. 하나님의 생명과 말씀을 떠나 내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수고하며 땀흘리며 사는 저주스런 삶이 되었어요. 이러므로 창세기 3장3절에서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은 인간이 영이 죽은 육신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려는 어떤 눈물어린 인간적으로 가상한 헌신도 하나님을 모독하고 곤비케 할뿐이다. 인간적인 욥의 의로움도(결국 재가운데 엎드려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다면) 무남독녀를 번제로 드린 입다의 눈물겨운 결단도 결국은 오직 한분 선하신 하나님의 의로움을 대적하고 오직 한분 의로우신 하나님 자신을 번제로 드린 그리스도의 보혈을 자기의 의로 도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고전13:3 에 "내가 내게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어찌 내게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데 사랑이 없단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인간적인 열심과 사랑을 말한다. 그런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적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보혈로 거듭난 적이 없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7:22-23)하셨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적이 없이 주님의 일을 한다고 열심을 내고 있는가? 아담을 속인 거짓의 아비 사단은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를 속여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가?

그래서 바울사도는 롬10:2-3에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고 기록하였다.또 사도바울은 "내속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18-24)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탄식하는 이러한 마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이고 마음이 청결한 자이고 애통하는 자이다. 주께서는 이러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셨다. 오늘도 이런자가 믿어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다해 찾고 찾는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하신다. 진리를 향한 목마름이 세상(육신)을 향한 목마름을 이긴자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셧다.(계시록22:6-7) 탄식하든 바울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환호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주신 계명(롬7:12)의 거울앞에 서있어야 한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그 속에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다.그 위에 피를 뿌리는 속죄소, 은혜를 베푸는 시은좌가 있다. 우리 안에 선한 양심이 없다면 계명이 들어있는 법궤가 없는 곳에 피를 뿌린다면 보혈만 헛되히 더럽힐 뿐이다. 우리의 양심 지성소의 법궤위에 속죄의 피와 번제의 피를 뿌려야 빛난 구름 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여 우리와 말씀하시고 교제 하시며 인도하신다.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롬8:14) 말씀 하십니다.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것이라."(벧전3:21)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 하였느니라."

이 땅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8)는 사명을 받은 이 땅의 왕된 온인류의 머리된 아담의 반역으로 이 땅의 통치권은 사단에게 넘어가 사단이 이 세상 임금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은 인류를 백성과 노예로 삼아 학대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 천국에서 쫓겨난 분풀이로 복수의 화신이 된것 이지요.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좋아 하시든 하나님은 안식을 잃고 슬퍼하며 탄식하게 되었어요. 이를 보다 못해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육신을 입고 마지막 아담으로 인류의 머리로 다시 오셔서 첫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은 저주를 한몸에 짊어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저주받은 아담으로 피흘리고 죽어 장사하심으로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나오지 못하리라"는 율법의 명령을 속죄제로 완성하셔서 호리라도 남김없이 갚으시고 흰눈같이 용서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세상죄(십자가)를 지고 심판받아 지옥의 저주속으로 버림받으실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빌라도의 보고서에서 빌라도는 이렇게 기록 하고있다. "그때 골고다 언덕에서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부르짖음은 인간의 귀로는 일찌기 들어본 적이 없는 비참한 소리를 발하고 있었다"고 주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진정 버림받으셨습니다.

이일 후에 주께서 "다 이루었다"하셨으니 이는 히브리어로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그 당시 지불되었다. 빚을 갚았다는 시장에서 흔히 쓰이든 상업적인 용어 였다고한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그렇게 선언 하셨다면 ,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주께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값은 영원히 갚아지고 속죄 되어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을 번복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을 형통하리라."(이사야55:11)
"천지는 없어 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24:35)
"증거 하는이가 셋이니(성부 성자 성령)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1 4:8)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 피로 맹세하여 선언 하신 말씀은 영원히 도리키지도 아니하고 후회하지도 않으십니다."

죄인의 대표로서 머리로서 심판받고 형벌받을 동안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다.
"다 이루었다."(요한19:30)고 선언하신 후에는 그는 이미 죄인이 아니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큰 소리로 아버지라고 불러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23:46)라고 자신의 영혼을 의로운 번제로 드릴 수 있었다.
또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로운 계명의 요구를 그 한몸에 이루시어 그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온전한 번제"를 드리신후 고개를 숙이시고 죽으셨는데 그때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로 심장을 찔러(요한19:33-38) 그 의로운 번제(온전한 헌신)를, 홀로 의로우시고 선하신 율법을 100% 순종하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보혈을 부어 주심으로 함께 부활승천 하셔서 하늘에 앉히 셨습니다.(에베소2:5-6)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골로새1:13)

주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속죄제뿐 아니라 번제도 드리심으로 마태5:21-37 까지의 죄의 요구와 마태5:38-48 까지의 의로움의 요구를 다 이루어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여 속죄제의 보혈과 번제의 보혈을 값없이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아담으로 피흘리고 단번에 죽어 장사 되었고 의로우신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부어 그리스도로 부활 승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그리스도와 아담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전서 15:22에서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6:18)고 기록하고있다.
저주받은 아담안에 있든 옛사람은 이미 2000년전에 십자가에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안에서 함께 죽어 장사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 승천 되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품으로 탕자처럼 값없이 돌아 갈수 있고 아무 공로없이 가진것 없이 빈손으로 돌아갈때 영접 되어진다.오직 독생자를 보내신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녀가 된것이다.우리는 다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다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이 모든 축복을 나의 것으로 받는다.

죄사함을 받은 순간이 있음 같이 선하시고 의로우신 주님의 생명으로 그 심장의 보혈로 부음받아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남을 확신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때 진정 나를 낳은 생명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주님의 심장이 나의 심장 만큼이나 가까운 사랑을 느끼며 그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좇나니"(요14:18) 온전한 아버지의 사랑과 자유를 누리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순간이 있었다면 또한 광야의 방황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안식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순간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시련과 연단을 통과 해야 함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명8:16)
순례자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십자가 앞에서 죄의 짐을 벗은 순간이 있다면 또한 천국 대기소인 안식의 땅 쀼ㄹ라에 들어가는 순간이 또한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양을 잡아 문인방과 설주에 그 피를 바르고 심판의 사자를 그냥 넘어 가게하여 죽음을 피하는 유월절을 지내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으나 그들이 가야할 목적지는 안식의 땅 가나안 땅인데 그 접경에 이르러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않고 두려워 함으로 15일이면 들어 갈수 있는 약속의 땅을 얻지못하고 40년을 헤매이다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
기독교의 법전이라고 정평이 나있는 죤번연의 천로역정에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 십자가 앞에서 등에 짊어 졌든 죄의 짐을 벗어 버리고 그 때부터 천성을 향한 순례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가는 좁은 길을 통과하여 결국은 천국 대기소인 쀼ㄹ라의 땅 안식의 땅에 이른다.

마가8:22-26에 주님은 "날때부터 소경인 자를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보이나이다. 다시 안수하시매 주목하여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우리가 처음 죄사함 받으면 빛이 들어와 보이기 시작하나 나무가 걸어 가는지 사람이 걸어 가는지 정확히 분별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도 처음에는 율법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보혈에 대하여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고 혼돈하고 다시 얽매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리스도 도(말씀)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히브리6:1-3)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탄식하며 다시 구할때 눈을 밝혀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게 해주신다.

구약의 율법에도 하나님께 드릴 수있고 먹을 수있는 정한 짐승는 되새김하고 발굽이 갈라져야 한다. 말씀을 한번 받아 먹었다고 나의 생명이 되는 것이아니다. 묵상함으로 되새김 하여야한다. 일용할 양식으로 늘 묵상하고 되새김하여 생명으로 섭취하면 언젠가 모든 말씀을 분별하고 구별하여 정결케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러한 자를 장성한자 또는 신령한 자라한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것을 못먹는 육신에 속한 연약한 자도 있다.
장성한 자는 육신에 속한 것과 영에 속한 것을 분별하고 육신의 것에 혼합되어 말씀을 더럽히지 않는다. 이런 자들이 흙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과 같이 정결한 말씀을 가진자 들이다.

모든 사람이 첫사람 아담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선악을 아는 저주를 받았으니 선악을 심판하는 율법의 저주앞에 탄식하는 우리의 양심이 주님의 보혈로 만족 될때 까지는 쉼을 얻지 못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고통하는 것이다.이 고통이 지금 해결되지 않으면 그 고통은 영원한 지옥으로 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신 율법의 요구를 완성 하셔서 값없이 보혈로 온 인류에게 입혀 주셨지요.

우리는 왕이 예비하신 예복을 값없이 입고 왕이 초대한 결혼식장에 들어 갈 수 있는것 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61장에서 말한 "구원의 옷(속죄제의 보혈)을 입히시며 구원의 옷(번제의 보혈)을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의 보물로 단장함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감옥에 갇혀 있든 요셉을 건져 내어 왕의 말 한마디로 총리의 자리에 앉힘과 같은 것이지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다 이루어 주신 값없이 주시는 이 은혜를 믿든지 믿지 않고 버리든지는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믿을 것인지 사단의 말을 믿을 것인지는 선택의 자유 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 입니다. 그 선택은 영원한 운명에로 이어지는 것 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영혼은 구원 받았으나 몸(육신)의 구원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롬8:23)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 옆구리에서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어 그 신부 하와를 탄생시킴 같이 주께서 옆구리를 찔려 그 심장의 보혈로 탄생시킨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창세기1:21-23) 부른 신부를 데리러 오실때 이땅에 남아있든 우리도 다 홀연히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해 주님이 예비하신 결혼식에 들어 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그러나 지옥의 심판에서 속죄되어 구원받고, 주님 자신을 불태운 의로운 번제를 보혈로 부어 이를 믿는 자는 값없이 은혜로 천국을 상속하게 되지만 이 땅에 살동안 얼마나 자아와 자기 육신을 쳐서 복종 시키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느냐에 따라 부활때, 휴거때 그 영광이 다르되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른"(고전15:41-42)것 처럼 그 상급은 공평히 주어 질 것입니다.
급하게 두서 없이 감동되는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김민정 자매님! 이번 집회에서 많은 은혜 받기를 기원하며 간단히 마칩니다.

2000. 3. 15

시 청 자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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