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4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뭐냐하면 사도행전 8장 4절인데,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이거 뭐 전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실제 사도행전 8장이 되어진 그 배경은 그렇게 복음을 전하기에 단순치 않았습니다. 7장 마지막에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는 일이 있고 8장에서 3절에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을 옥에다 넘기니까 형제자매들 삼촌이나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 속속히 잡혀가서 옥에 가면 그들이 대부분 살아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 속된말로 그런 사람 재정신이 있느냐? 무슨 그런 사람들이 있느냐? 아마 그렇게 생각하기 쉬울 거라는 거죠.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해서 온 사마리아가 복음으로 떠들썩했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럼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자기 앞에는 위협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는 건 사실인데 그들은 마음속에서 그 위협이나 고통이나 어려움을 이길 만한 힘을 다른데서 받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이냐? 우리가 구속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사함 받고 거듭나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힘으로 살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 안 그렇지만 실제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이길만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사도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매를 맞고 있을 때 그가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 왜냐하면 감옥에서 매를 맞고 고통스러운 그게 두렵고 어렵다면 그는 절망하고 실망해야 하는데 정말 그들은 그걸 이기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우리가 절망스러워 보이고 어려워 보이고 고통스러워 보이고 망할 것처럼 보였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이 전부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저희들이 옥에 갇히는 것과 죽임을 당하는 것 형벌 받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당했습니다. 왜? 그들 속에 그 어려움이 마음에 다가왔을 때 그것보다 더 큰 힘이 있어서 마음 안에 그 두려움을 이겨주고 어두움을 이겨주고 고난을 이겨줬기 때문인 것입니다.
실제 여러분 문제는 뭐냐하면 우리가 은행에 돈이 10억이 있는데 1억 빚졌다고 두려워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거예요. 내가 돈이 한 푼도 없는데 1억이 빚졌으면 그건 굉장히 큰일이지만 10억이 있는데, 100억이 있는데 1억 빚진 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내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을 때 우리가 이런저런 문제를 당하면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든 것이지, 능력되시는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이 그걸 대신하기 때문에 실제로 괴로움이 오고 고통이 오고 슬픔이 와도 고통이 아니고 괴로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힘이 되고 능력이 되어진다는 것이지요.
많은 우리 앞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사람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이들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똑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기로는 환란만 보이고 두려움만 보이고 근심만 보이지 우리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문제가 되는데 우리가 보이지 않을 뿐이지 똑같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살아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복음을 전하면서 페루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걸 봤습니다. 뉴욕에 오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교회 일들이 있었는데 그런 일들 만나면서 내 마음에 그 형편만 보면 막 두려울 것인데 그게 아니라 그 속에 역사하는 주님을 보면 너무 소망스럽다는 거지요.
아기를 낳는 엄마가 애기를 가지고 10달 동안 있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거지요. 입덧을 하고 괴롭고 불편하고 피곤하고 그 다음에 해산하는 그 자체도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아는 대로 애기를 낳아서 애기가 자라고 커가면 너무 사랑스럽고 귀하기 때문에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할 때 애기를 갖는 그 상태, 임신한 그 상태만 생각하면 아무도 애기를 갖고 싶지 않을 겁니다. 해산하는 그 상태까지만 생각한다면 아무도 애기를 갖고 싶지 않을 건데 그 뒤를 죽 생각해 나가면 너무너무 소망스럽고 기쁜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가 그런 것입니다. 현재 눈앞에만 본다면 신앙생활 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어려워 보이고 고통스럽고 힘들어 보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신앙의 결과가 어떤 거냐 하면 너무너무 복된 것이기 때문에 원시하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앞에 닥치는 그 고난을 이길 만한 힘을 주님께로 얻어서 당당히 이겨나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지만 우리가 넉넉히 그걸 이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여러분 복음을 전하다가 쫒겨나오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고 그렇게 우리가 복음 전하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속에 주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어서 그걸 능히 이길만한 힘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거지요. 이미 주어주셨다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여러분 안에 이 모든 고통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을 이길만한 힘이 있습니다. 그냥 우리가 보면 부담스럽고 두렵고 그런데 좀 더 생각해나가서 보면 우리는 일을 내가 당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당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이 우리 속에 살아서 능히 이긴다는 거지요.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이 있었는데 너무 은혜롭게 되어갔고 다음에 6장에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분쟁이 일어나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너무 아름답게 처리되어가고 7장에서 스데반이 죽임을 당해도 결과가 너무 좋고 8장에 환란이 오고 핍박을 당해도 그 핍박 자체가 이들을 두렵게 해서 이들이 복음 전하는 걸 막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려움이나 핍박보다 더 큰 힘이 그들 속에 능히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어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걸 이길 힘이 주어졌습니다. 눈에 안 보일 따름입니다. 그 주를 믿는 힘, 그 힘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 여러분을 통해 주님이 힘있게 역사하시고 은혜를 입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