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이 성경은 그냥 단순한 이야기 같고 그냥 책 같지만 우리의 삶에 굉장히 깊은 여러 가지 교훈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는 이 창세기 40장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제 마음에 굉장히 많은 은혜를 얻었거든요.
성경을 읽어보면 술 맡은 관원장이 어느 날 죄를 범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도 죄를 범하고. 또 술 맡은 관원장의 죄가 드러났고 떡 굽는 관원장도 죄가 드러났고 술 맡은 관원장도 감옥에 갔고 떡 굽는 관원장도 감옥에 갔습니다. 거기까지는 두 사람이 똑같습니다. 마지막에 보니까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을 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어달려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가 성경에 단순하게 그렇게 이야길 하고 있는데 한번 내가 조용히 앉아서 술 맡은 관원장의 집을 한번 그려봤어요. 감옥에서 나와서 바로의 생신 잔치가 있었지요.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을 해가지고 막 바쁘게 그 밑에 사람들에게 “술 다 준비되었냐? 이 술은 무슨 술이냐? 바로에게 드릴 술은 뭐냐?” 준비를 다 해가지고 술 맡은 관원장이 일을 다 마치고 생일잔치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거예요. 집에 아내와 아이들 아버지 장모 또 장인 가족들 친구들 다 모여가지고 끌어안고 “아빠! 엄마!” 이야기하면서 너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양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떡 굽는 관원장의 집에는 그날 저녁 조금 있으니까 아버지가 시체가 되어가지고 관이 운구가 되었습니다. 초불을 켜놓고 온 가족들이 “아빠! 여보!” 하면서 통곡 소리가 나고 진짜 세상에 가장 불행한 집하고 가장 행복한 집으로 두 집이 딱 나누어지는 거예요.
똑같이 죄를 지었고 똑같이 감옥에 갔고 똑같이 있는데 뭐가 술 맡은 관원장의 삶속에는 그렇게 행복이 왔고 떡 맡은 관원장에게는 그런 저주와 멸망이 왔는가? 성경은 그걸 우리에게 자세히 설명을 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다 같았는데 마지막 다른 게 꿈이 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꿈을 꾸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여러분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잖아요.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으니까 포도나무가 나를 다 가려가지고 아무 것도 안 보이고 포도나무만 보이는 거예요.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갔으니까 ‘왕이 화가 많이 나셨는가? 나를 죽이면 어떡하지? 또 집에 가족들은 어떻게 살까? 아이들은 뭘 먹고 지낼까? 난 장차 어떻게 될까?’ 그런 만 가지 걱정이 있었을 텐데 술 맡은 관원장은 앞에 포도나무가 그걸 다 가려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생각을 안 하고 “포도나무를 보니까 포도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서 그 즙을 짜서 바로에게 갖다 드렸다.” 그러니까 이제 다른 건 예수님 날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의 보혈, 그걸 힘입고 나가는 그 마음. 그 마음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운명의 비극을 다 몰아내준 거예요.
여러분 저는 1962년도에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제 삶속에 굉장히 많은 고통과 근심과 염려가 왔고 비극이 많이 찾아왔는데도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 안에서 두려움을 남겨두지를 않았고, 죄를 남겨두지를 않았고, 고통을 남겨두지를 않았고 항상 그걸 바꿨어요.
여러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차이는 뭐냐하면 술 맡은 관원장의 마음에는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를 잡았고 떡 굽는 관원장의 마음에는 자기 방법,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제일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해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공중의 새들이 그것을 먹더라.” 흰 떡 세 광주리는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그냥 가면 되는데 그 위에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얹어서 자기 생각을 따라간 그것 차이인 거예요. 떡 굽는 관원장은 자기 생각을 따라갔고 술 맡은 관원장은 예수님을 마음 안에 두었고 그러니까 떡 굽는 관원장의 마음속에는 자기 생각 밖에 없고 술 맡은 관원장의 마음속에는 예수님 밖에 없는 거예요.
너무너무 신기한 것은 제가 복음 안에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일하는 동역자나 형제자매들을 봐요. 똑같은 형편이 있는데 어떤 형제는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있어요. 늘 기뻐하고 즐거워해요. 삶속에도 예수님이 역사해요. 어떤 형제자매들은 예수님이 역사하지 않는 게 아니고 함께 하지 않는 게 아닌데 마음 속에 자기 생각이 꽉 차서 절망하고 고통하고 두려워하는 그 사람들은 항상 앞에 문제가 생기고 비극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의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똑같은 두 사람인데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마음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삶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거예요. 술 맡은 관원장이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포도나무가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아야 할 그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잖아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하고, 내가 받아야 할 멸망을 대신하고,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을 대신하고, 내가 받아야 할 모든 괴로움을 다 대신해 주시는 거예요. 그게 있으니까 그 예수님의 마음 안에 천 가지 만 가지 문제를 다 해결해 주지요.
저는 구원을 받고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제 삶속에 참 많은 크고 적은 어려움이 있고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제가 거기에 넘어지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이 내 마음 안에서 그걸 다 이겨주신 것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자기 마음속에 자기가 들어있었지 예수님이 거하실 자리가 없는 거예요. 떡 굽는 관원장은 자기 마음속에 자기가 있어서 그 자기가 어떻게 두려움을 내쫓습니까? 자기가 자기에게 앞에 오는 비극을 어떻게 내쫓습니까? 자기가 자기 앞에 오는 고통을 어떻게 내쫓습니까? 못 쫓으니까 저주를 당하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다른 아무 것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사하셨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상 우리 마음 어디에도 불안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예수님이 있는 동안에 슬픔이 없고 저주가 없습니다. 저는 이게 너무너무 감사한 겁니다.
“술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내가 포도나무 뒤에 있는데” 그 말이지요?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으니까. 포도나무가 내 앞에 있어서 내게 오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고 내게 닥치는 모든 걸 앞에서 다 막아주시고 난 포도나무 뒤에 쉬므로 참 평안과 은혜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 앞에 있습니까, 뒤에 있습니까? 예수님만 볼 수 있는 그 삶이 되면 너무 복될 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이 여러분 앞에 재앙을, 두려움을, 슬픔을 제하시고 기쁨으로 채워줄줄 믿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예수님님이 있는 사람은 술 맡은 관원장의 집처럼 기쁨이 넘치고 행복이 넘치고 자기 생각으로 차있는 사람은 떡 굽는 관원장의 집처럼 멸망, 두려움, 슬픔으로 가득 찬다는 걸 성경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