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2절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 앞에 닥치는 형편은 보이지만 그 형편 뒤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전혀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결과가 온 뒤에나 알지 그전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저는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지난 번에 가나에서 문혜진 자매가 허리를 다쳐가지고 왔을 때 저희들이 정말 굉장히 근심스러웠고 염려스러웠는데 내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 한마디가 살아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 말씀을 생각할 때 이건 형편이지만 한 번도 내 마음 속에서 의사들의 말을 믿어본 적이 없어요. 의사는 “이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건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한 평생 누워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볼 때 제 마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만 ‘저거 아니야. 혜진이는 일어나. 걷게 돼.’ 여러분 너무 놀라운 것은 혜진이가 우리 중국에 있는 박선생님이 침을 놔 주시는데 이번에 중국 갔는데 배꼽 아래로 신경이 다 마비되었는데 서서히 신경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이젠 설수가 있었고 어제는 발걸음을 한번 옮겼다는 거지요.
그건 누가 봐도 기적적인 일인데 이제 우리가 사는 삶은 분명히 성경에 말씀했어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당하는 모든 문제를 내가 당한다고 생각하면 문제인데 예수님께서 그걸 당하시고 예수님이 그걸 맡으신다면 그게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거지요.
우리가 사도행전 9장을 읽으면서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하여 공문을 청해가지고 올라간다고 했을 때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이 뭐만 보였겠습니까? 자기를 잡으러 오는 사울, 그 사울에 대한 소식을 듣고 사울이 오면 어떡할까? 그들이 간을 졸이고 가슴을 조으고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도망을 가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울을 보는 눈은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한 준비를 볼 수 있는 눈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기위하여 다메섹으로 올라오고 있을 때 그때 그 일속에 사단이 한 그 속에 예수님의 계획이 들어있었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밝은 빛이 확 비치면서 사울이 쓰러졌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깜짝 놀라면서
“주여 뉘시니이까?”
하고 물었지요.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그때 사울은 굉장히 깜짝 놀라면서 ‘지금까지 저 예수쟁이들이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났다는 것을 순 거짓말이라고 사람을 미혹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잡아 죽이고 핍박하고 했는데 그럼 예수님이 살아있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러면 그들이 맞았다. 내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 사울이 그때 돌이키면서 바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가 변해서 예수를 증거하는 자로 바뀌어진 거예요.
그런 일이 사울이 다메섹 올라가기 직전까지 모든 사람의 눈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거지요. 여러분 그런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모르던 상태에서 사울이 올라온다는 사실만 들으면 얼마나 두려웠겠느냐는 거지요. 우리 삶이 그런 거예요.
저는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강하게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없는 사단의 역사 없고 사단의 역사 없는 하나님의 역사도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역사할 때 항상 사단도 같이 역사하고 사단이 역사할 때 하나님도 같이 역사하시지, 사단이 역사하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구경하는 하나님은 절대 아닌 것을 저는 정확하게 알거든요.
그러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 위하여, 잡기 위하여 사울이 올라올 때 사단 계획으로 되었다면 거기에 대등한 하나님의 계획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염려하지요. 그런데 거기에 대한 대등한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어서 사울이 그리스도인을 잡기 위하여 다메섹에 올라오는 도중에 그 계획도 동일하게 이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해보다 더 강한 빛이 사울과 그 동료들을 둘러비췄습니다. 사울이 길에 쓰러졌습니다.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여 뉘십니까?”
“난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하나님 이렇게 일을 하는 거예요.
저는 제가 주님 앞에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를 성경에서 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배를 타고 가시다가 풍랑이 일어났는데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는 거예요. ‘아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분, 그럼 내 마음의 풍랑도 잔잔케 하시겠구나. 내 교회의 풍랑도 잔잔케 하시겠구나. 오리사의 풍랑도 잔잔케 하시겠구나.’
어느 날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를 만났는데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려고 왔던 그 모든 돌을 하나도 날라오지 못하고 그 여자 머리에 맞아야 하고 어깨에 맞아야 하고 얼굴에 맞아야 하고 가슴에 맞아야 하고 등에 맞아야 할 그 돌들이 하나도 날라오지 아니하고 땅으로 다 떨어뜨리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그래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데 내게 날라올 재앙도 다 밑으로 떨어뜨리시겠구나. 내게 날라올 모든 걸 다.’ 실재로 제가 그걸 믿고 그런 일들이 이루어져 가는 걸 제 삶속에서 분명히 보고 있거든요.
분명히 이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왔는네 중간에 주님이 딱 막아서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사울이 그리스도인을 잡질 못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온 사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도우러 온 사울로 변해버리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이런 일을 하십니다. 옛날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셔서 정말 유대땅에 계시면서 33년 사시며 하신 일과 똑같은 일을 우리 마음 안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우리 선교회 안에서 똑같이 행하고 계시고 여러분의 삶속에도 그 주님이 살아 일하고 계신 게 너무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요.
여러분 사단도 쉬지 않고 일합니다. 그러나 사단보다 주님이 더 크십니다. 더 지혜로우시고 더 능력이 있으시고 사단이 일할 때마다 주님도 일을 하시기 때문에 사단의 역사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단이 일하면 ‘아 주님도 일하시겠구나.’ 그 믿음으로 담대하게 사는 삶을 사시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