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영상교제 말씀
요한복음 11장 21절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저는 이번에 대전도 집회를 처음에 우리가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하고 다음에 체조경기장에서 하면서 이건 우리 교회 어느 성도나 박옥수 목사가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것이 제 마음에 너무 실감나게 와 닿았고요, 제가 이번 집회를 하면서 속죄제사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말씀전하기 편안했고 기뻤습니다. 사실 저는 목사로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데 말씀을 전할 기회가 참 많은데 준비하는 시간은 늘 적어서 ‘아 나는 좋은 설교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씀을 좀 더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참 많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제가 계속되는 집회니까 말씀을 특별히 준비할 충분한 여유도 없고 집회를 마치고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날 서울에 돌아오면 일들이 산더미처럼 밀려있어서 글 쓸 일도 있고 할 일들이 많아서 제가 뭘 하나 제대로 하는 사림이 아니기 때문에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일을 하시니까 저희들 강남교회도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고 또 많은 분들이 구원을 받고 마지막으로 어제까지 마산에서 집회를 하면서 ‘이건 진짜 우리가 하는 게 아니야. 주님이 하시는 거야.’ 그걸 제 마음에 너무 강하게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마르다가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오시니까 말하기를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오늘 그 말씀을 딱 읽다가 이 말씀이 너무 좋은 거예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겠나이다.” 사실 그렇지요. 간음한 여자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계시니까 안 죽더라고요. 그리고 또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주님이 계시니까 살아나더라고요. 그러면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이제 우리가 이번에 속죄제사 이야기를 하면서 속죄제사가 없었을 때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뭐냐하면 출애굽기 32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뒤에 금송아지를 만들었잖아요. 그때는 아직까지 성막도 만들기 전이었고 속죄제사가 이루어지기 전이었어요. 그러니까 출애굽기 32장에 그 이야기가 일어나는데 출애굽기 40장 마지막에 성막이 완성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출애굽기 다음에 레위기 1장에 번제, 소제, 화목제 레위기에 4대 속죄제사가 나오기 때문에 출애굽기 32장은 실제로 속죄제사가 나오기 불과 한 달이나 두 달 전이었을 거예요. 한 두 달은 더 되었겠네요. 두 번째 산에 올라가서 40일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모세가 십계명 두 돌 판을 받아가지고 왔을 때 금송아지로 죄를 지었는데 속죄제사가 없잖아요.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모세는 두려웠지요. 죄를 지었으니까 하나님이 그들 속에 떠나시면 그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만나가 어디 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어디 있어요. 그럼 죽어야 되니까 모세가 막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죄를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이스라엘 백성 3천명을 칼로 죽이게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그때 속죄제사가 있었으면 레위기 4장에서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수송아지를 가지고 와서 온 회중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면 제사장이 그를 위해 속죄한즉 회중들이 죄를 사함받는 거예요. 속죄제사가 있었더라면 3천명이 안 죽어도 되고 속죄제사가 있었더라면 그 뒤에 모세가 3천명이 죽은 뒤에도 죄사함 받으려고 하나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그래도 하나님이 보응하시겠다고 그러는데 정말 속죄제사가 있었더라면 멸망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고 참 너무 좋았을 텐데 수송아지 하나면 되는데 속죄제사가 없어서 3천명이나 죽고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그 수송아지, 암염소 이런 제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하는데 우리에게는 속죄제사가 있는 거예요. 제가 하나님 앞에 좀 실수도 하고 잘못할 때도 있고 범죄하고 부끄러울 때가 참 많지만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속죄제사가 있는 거예요. 그 속죄제사가 있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멸망을 당해야할 우리가 멸망을 당치 않도록 하는 그게 너무 아름다운 것이고 그 다음에 이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포도주가 모자라도 포도주가 해결되었어요. 주께서 거기 계셨더라면 풍랑이 쳤는데 풍랑이 잔잔해졌어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배가 고파 죽겠는데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어요. 이제 이런 일들이 너무 놀랍게 하나님으로 인해 일어나는 걸 생각할 때 감사한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신앙생활하면서 주께서 함께 계시는데도 주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에 그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려고 애쓰고 자기가 노력하려고 애쓰다가 안 되니까 좌절하고 쓰러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속함을 받은 형제자매들은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어야 돼요. “주님이 내 속에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 그리고 주님이 계시면 무슨 문제든지 간에 다 해결이 되어진다.” 그런 믿음을 갖는 그 자체가 진실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속함을 받은 형제자매들이 예수 안에 살면서 그 주와 더불어 계신다면 여러분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신 걸 믿는다면 문제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어떤 문제든지 포도주가 모자라도, 풍랑이 쳐도, 떡이 없어도, 간음한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위치에 있어도 주님께서 계시면 나사로가 죽어도 모든 게 다 너무너무 아름답게 해결되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라는 건 우리가 뭘 어떻게 열심히 하고 우리가 충성하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한테 계시는데 그러면 주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신다.” 저는 그런 마음을 참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제가 형제자매들을 볼 때 막 암담하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주께서 여기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주께서 우리 선교회 안에 일하고 계시는데, 주님 우리 속에 역사하고 계시는데, 그걸 생각하면 제 마음이 너무너무 기쁘고 평안한 마음이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성경 말씀에 마르다가 말하기를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겠나이다.” 거기에만 붙이지 말고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땅 문제 해결되었겠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풍랑이 잔잔했겠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 가정의 풍랑도 잔잔하다. 내 마음의 풍랑도 주님으로 잔잔해진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까 이 문제도 해결되어진다.” 이제 그걸 믿는 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먼 나라에서 선교를 하자면 생각지 않은 일들도 많이 닥치고 마음에 눌리는 일도 많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제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조금 들어서 역사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뜨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함께 계시면 모든 게 주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되어진다는 걸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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