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란.... 이런게 아닐까요?
1993년 겨울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치아를 치료했어야 했는데, 난 치과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방치하다가 그냥 그대로 입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입대한 그날 부터 치통이 시작되었다. 추운 겨울, 낯선 환경, 새벽같은 기상, 배고픔 이 모든 것이 치통과 얽혀 난 너무도 고통스럽게 군대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특히 잘 때 이 치통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고통에 울다가 지쳐 힘겹게 잠이 들었다. 의무대라고 있었지만 쉽게 갈 수도 없었다. 조금 아파도 사회에서 치료하고 왔어야 했는데, 그 댓가를 난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어렵게 어렵게 의무대에 갔는데 군의관이 내게 한 말은 "남자가 이 정도 가지고 .. 참아!!" "도저히 못참겠습니다. 어떻게든 제발 치료좀 해주십시요." "이 자식이!" 그러면서 내 배를 한 방 쳤다. 너무 너무 서러웠다. 그리고는 돌아왔는데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집합시간을 놓쳐 버려서 한 명 없어졌다고 난리가 난 모양이였다. 난 병신같은 놈으로 고문관으로 찍혀 버렸다. "너 하나땜에 ....." 취침시간 잠이 오질 않았다. 서러움과 고통의 눈물이 흘렀다.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런 내게 의지할 수 있었던 건 입대할 때 받은 파란색의 작은 신약성경이였다. 말씀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였다. 무턱대고 성경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충성교회.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소심한 내가 단상으로 올라가 목사님께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렸다. 나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셨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요." 치통은 계속되었다. 너무 아파 나중에는 쁘라이로 내가 뽑으려고 할 정도였다. 며칠 후 다시 의무대에 가게 되었다. 그 때 그 의무관이 아닌 다른 분이 계셨는데, 나의 상태와 모습을 보시고는 , "지금 이 치아는 여기서 치료할 수가 없다." 난 더 이상 어떻게 해야될지를 몰랐다. 정말 막막했다. 그 때 그 군의관이 갑자기 같이 나가자고 하더니 부대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더니 어떤 치과에 가서 나를 치료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였다. 훈련소에서 그 당시 이런 배려는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우 드문 일이였다. '은혜' 란 이런 것이였다. 내가 돈을 낼 수도 내가 치과를 갈 수도 없었고, 오직 일방적으로 난 죽은 상태에서 내게 생명과 희망을 주시는 것. 1993년 12월. 나의 군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쉬운 군생활을 겪은 사람은 없겠지만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게 군생활은 힘들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난 소위 군에서 말하는 고문관이였고, 나약한 놈이였다. 자신의 인생에서 기적이라고 이건 대단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건들. 난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건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그 분의 은혜라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있는 것이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