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장 4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 이야기는 느헤미야가 포로로 바벨론에 가서 수산 궁에 있으면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니와 몇몇 형제들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야기를 듣고 예루살렘 형편을 물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물으니까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는 그 도에서 능욕을 당하고 성벽은 함락되었고 성문은 불탔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느헤미야가 전해들은 것입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 그렇게 성경에 되어있는데, 우리가 여기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읽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 다음에 성이 무너지고 그러면서 그들이 포로가 되어서 바벨론에 왔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바벨론에 포로로 왔긴 왔지만 그는 유대인인데도 어떻게 왕의 술 맡은 자의 직분을 맡아가지고 매일 왕 앞에 술을 들고 나가는 그런 위치에 있었습니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 되니까 위치도 굉장히 높고 또 수입도 괜찮고 살기도 살만하고 먹기도 먹을 만하고 권세도 있고 모든 게 부족함이 없이 만족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느헤미야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예루살렘에 살았는데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그 안타까움이 있어서 그가 비록 잘 먹고 잘 살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 없는 느헤미야의 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가 왕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 있으면서 늘 궁금한 게 예루살렘이 궁금한 거지요.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예루살렘이 요즘 어때? 거기 성이 굳게 섰어? 국민들이 연합이 돼? 하나님을 찾아? 우리가 돌아가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까?” 늘 그런 마음속에 느헤미야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한 형제 중에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왔습니다. 느헤미야는 막 뛰어가서,
“당신들 예루살렘에서 왔지?”
“아 예. 예루살렘에서 왔어요.”
“그래? 지금 예루살렘에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 좀 해 봐. 너무 궁금해.”
느헤미야가 물은 거예요. 그들이 말하기를,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들이 각 도에서 능욕을 만나고 그 성문은 다 훼파되었고 성은 함락되고 성문은 불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느헤미야가 사모하는 것은 어서 예루살렘 성이 견고하게 서고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거기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 섬기는 그 일을 기다려오던 느헤미야가 너무 절망적인 소식을 들으면서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하는 이 이야기를 느헤미야가 지금 하고 있는 거지요.
여러분 다른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갔다가 ‘아 난 안 죽고 살았으니 다행이다. 우리 가족들은 전부 살아서 정말 다행이야. 나는 술 맡은 관원장이 되었으니 정말 행운이야. 나는 왕과 가까이 있어. 나는 이제 부유하게 살아.’ 그걸로 만족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간에. 여러분들이 세상에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차를 타고 화려하게 음식을 먹고 살고 그러면 만족할 것 같지요?
여러분 우리가 잠자리가 만족하는 것하고 물벌레가 만족하는 게 전혀 다르고 배추벌레가 만족하는 것하고 나비가 만족하는 게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 소는 암만 배고파도 절대로 고기 안 먹습니다. 풀 뜯어먹고. 사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 안 뜯어먹습니다. 고기 먹지. 서로 다른 겁니다. 마치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었듯이 우리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비는 이상 더 배추잎 안 뜯어먹습니다. 나비는 이상 더 배추잎에 붙어살지 않습니다. 꽃에서 살고 날아다니고 꿀을 먹고 살지 배추잎을 뜯어먹고 살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 거듭난 우리가 육신적으로 별 변화 없기 때문에 옛날의 즐거움, 옛날의 기쁨, 그걸로 만족할 것 같지만 여러분 누구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람은 절대로 그걸 가지고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에 사단의 유혹을 받아 잠시 동안 내가 세상에 빠지고 세상을 즐기고 쾌락이 즐거움을 줄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그게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다시 주님 앞으로 나가는 그 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도 유대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고 정말 세상의 쾌락으로 흘러가다가 이제 유대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 무너지고 성문이 깨지고 이제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다 훼파하고 포로로 다 잡아갔습니다. 느헤미야도 포로로 바벨론에 온 뒤에 생각을 해보는 거지요. ‘이야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구나.’ 그때부터 느헤미야 소망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게 소망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니까 때때로 술도 한잔 마실 수 있고 때때로 육신의 쾌락을 삼을 수 있고 즐기러 나갈 수 있지만 그건 이제 이상더 느헤미야에게 소망이나 기쁨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늘 예루살렘에서 오는 소식만 기다렸습니다. ‘빨리 예루살렘 나라가 서야지. 견고해 져야지. 그리고 빨리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고 거기 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야지. 내가 왕을 섬겨서 되나, 하나님을 섬겨야지.’ 그런 마음 때문에 늘 마음에 쉼이 없었는데 어느 날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슬피 우는 느헤미야의 모양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지요. 그러다 이제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가진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에 보내서 성을 쌓도록 길을 열어주는 이야기가 느헤미야서에 계속되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느헤미야 1장에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세워서 허물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고 허물어진 복음을 다시 세워나가는 그 일을 하신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러분, 우리는 이상더 배추벌레가 아니고 물벌레가 아니고 우리는 새로운 나비가 된 것처럼 우린 이상더 우리가 세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이상더 세상의 쾌락이 내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나의 참 소망이요, 기쁨이란 사실을 말씀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