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구원해 주셔야!
저는 우리 가족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님과 누님 두 분, 그리고 동생이 구원을 받았을 때 그 과정이 정확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구에게 전도를 해야지"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일하신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입니다.
명절 때에 형제자매들이 고향에 가면 모처럼 가족을 만나니까 틈만 나면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다가 믿지 않는 가족들과 싸우고 부딪히기 일쑤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 가족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틀림없다면 주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보지 않고 내 계획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다가 안 되니까 '에이, 우리 남편은 안 돼'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마음보다 '내가 복음을 전해야지'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서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 보면 내가 아닌 예수님께서 우리 가족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마음에 느껴집니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마음에 쉼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면 주님이 너무 쉽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로서 수백 명, 수천 명을 만나서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없이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르게 말 한다면 우리의 눈이 어둡고 귀가 둔해서 그렇지, 우리 한 사람 한사람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놀랍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감사합니다.
요한복음 9장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9:1~3)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 로라.(9요9"4~5) 하시면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에 바르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9"7)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다니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았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시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걸 보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미련한 제자들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첫 부분에 유대 왕의 족보가 나옵니다. (마1:1) 왕은 말로 일을 합니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작업을 하지 않고 말로 지시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산상보훈 등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어느 성경보다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으로 표현되어 있기 땜문에 예수님이 일하시는 내용이 많이 나오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로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성경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을 만나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기 때문에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사람과 개인적으로 만나서 그 사람의 마음에 일하시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를,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5장에서는 38년 된 병자를 만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6장에서는 배가 고파 해매는 사람들에게 떡을 먹이시는 내용, 7장에서는 예수님의 동생들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8장에는 간음한 여자, 9장에서는 소경과 대화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다 10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야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이 전진하는 단계를 차례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많은 대화를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은 거듭나는 것을 말씀 하시는데 니고데모는 자꾸 인간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헤어지는 것으로 3장이 끝납니다. 4장 5장 6장으로 한단계식 올라가는 변화가 있습니다. 8장에서는 간음한 여자가 죄 사함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죄 사함을 받은 다음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간음한 여자처럼 죄 사함을 받고 기쁘고 감사해 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위해 일하셔서 그가 눈을 떴습니다. 그는 거지였는데 그 후 예수님을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지기들이 죄인이면서) 하자 그는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데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도저히 당하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우리를 믿음의 세계 안으로 이끄시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 지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믿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직 믿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부분을 읽든지 성경을 정확히 알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길이 보입니다.
제124호 / 박옥수 목사님 말씀
[이 게시물은 이종한님에 의해 2007-08-15 22:36:50 국내선교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