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만큼 이렇게 아름답게 글이 표현된 부분은 없다고 느껴지고 특히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 어디를 보나 요한복음 11장 39절 같은 말씀이 많이 있는 걸 발견하는데 그건 뭐냐 하면 요한복음 11장 39절 말씀 속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과 사탄의 한 말이 함께 섞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을 옮겨놓아라.” 그건 굉장한 소망적인 말씀이지요. 예수님 나사로를 살리러 왔기 때문에 이제 나사로를 살리시겠다는 거지요. “돌을 옮겨놓아라.”는 건 살릴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 말씀을 예수님 마음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마리아, 마르다는 너무 행복했을 것 같아요. “예, 예수님 돌을 옮겨놓을게요. 우리 오빠가 살게 되겠지요. 너무 고맙습니다. 자 빨리 돌을 옮겨놓자. 우리 오빠 살아날 거다. 음식 좀 준비해라. 옷 준비해라.” 이제 그들에게 이상더 슬픔이 없고 고통이 없고 괴로움이 없는 기쁨 속에서 맞을 오빠의 부활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음성만 있는 게 아니라 사탄의 음성이 있는데 사탄의 음성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 이제 돌 옮겨놓아도 우리 오빠 못 살아요. 나흘이 되어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그러니까 똑같은 위치에서 두 가지 음성이 들리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였을 때 너무 기쁘고 소망이 되고 이제 오빠가 죽었다고 울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근심해야 할 필요도 없이 정말 즐겁고 감사하게 지내고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는데 반대로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사탄의 음성을 들으면 ‘아니 이제 와서 죽었는데 돌문을 열라고? 돌문 연다고 별 수 있겠어? 썩어 냄새만 나지.’ 전혀 다른 절망적이고 슬픔 속에 있을 그 말이 그 속에 살아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간에 그 일에 대한 주님의 역사도 있고 사단의 역사도 똑같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그 주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이 주님의 역사로 가득히 차는 것이고 사단의 역사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속에 사단의 역사가 가득 차는 거예요.
내가 자주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은 믿음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기 위하여 우리 속에 많은 일을 하고 계시고 반대로 사단은 불신 가운데 일하기 때문에 우리 속에 불신을 가득 넣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작업들을 끊임없이 해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사단도 정확하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하잖아요.
우리가 열왕기하 7장에서 엘리사가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그 이야기 들으면 벌써 마음이 기근에서 벗어나고 해방을 받는데 똑같이 그 말씀이 떨어지지 마자 왕의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의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을 있을 수 있으리요?” 이제 그 장관이 절망적인 마음을 심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굉장히 기뻐하고 감사하며 소망을 가졌다가 왕의 장관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러면 그렇지. 맞아. 어떻게 그게 가능해? 이제 우리는 내일 굶을 수밖에 없어.” 그런 절망 속에 들어가고 있는 거거든요.
이런 이야기가 왜 성경에 기록되었느냐 하면 우리의 신앙도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우리가 전능하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았습니다. 그럼 그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어 달려 나갈 텐데 또 사탄이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우린 다시 그 속에 빠져 우리 소망이 다 무너져버리고 실망하고 절망해서 신앙생활 못하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은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못하는 이유가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잘 하려면 아주 단순한 이야긴데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들어보세요. 믿어보세요. 틀림없이 하나님 말씀 뒤에 사탄이 하는 이야기가 들릴 거예요. 그건 하나님 말씀하고 다른 거기 때문에 ‘이건 믿어선 안 돼. 이건 버려야 돼. 이 말씀 받아들이면 안 돼.’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걸 마음에서 저버리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내 마음에 믿었을 때 그 약속한 일이 일어난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돌을 옮겨놓으라 했을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면 마르다는 굉장히 기뻤을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돌을 옮겨놓으라 그랬다. 돌을 옮겨놓아라. 주님이 우리 오빠를 살리실 거다. 이제 오빠가 무덤에 있지 아니하고 일어나 우리와 같이 지낼 거다.” 생각만 해도 너무 벅차고 감격스러운 사실이 아니냐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 주의 음성을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사탄의 음성을 들으면 “주여 죽은 지 벌써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나이다.” “냄새나는데 돌문을 열면 무슨 소용이 있어? 냄새만 더 나지. 야 닫자. 쓸데없다. 오빤 이미 죽은 거야. 끝난 거야. 이제 어쩌겠어? 예수님 와도...” 그러면서 자기들이 그냥 슬픔 속에 젖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단기 선교사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 없이 사탄의 역사 없고 사탄의 역사 없이 하나님의 역사 없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 일하면 사탄은 그걸 막기 위해 반대로 이젠 안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을 사탄은 계속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달려가지를 못하는 거예요.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정탐꾼이 가나안에 갔다온 뒤에 “거기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이건 그 땅의 과실입니다.” 커다란 포도, 무화과, 그걸 볼 때 너무너무 좋았는데 똑바로 사단이 이어서 ‘그 땅 거민은 크며 아낙 자손 네피림 후손을 보았다.’고 여러분 그 이야기 너무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고 그러면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는데 그들이 믿음이 없으니까 사탄의 음성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내 마음이 두려움 속에 젖어버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아닌 것처럼 되어버리는 거죠.
저도 참 오랫동안 간교한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단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오래오래 속다보니까 제 마음에 ‘아 이건 사탄의 음성이다. 이걸 따라가면 망한다. 이건 나를 망케 하려고 하는 음성이야. 이건 진짜 따라가선 안 돼.’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사단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모든 말들은 아무리 조직적이고 합리적이고 이론이 명확해도 절대로 그걸 따르면 안 됩니다. 그건 사단이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단기 선교사 여러분, 오늘 여러분도 지금 두 가지 음성을 듣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음성과 사탄의 음성. 여러분은 사탄의 음성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소망과 기쁨이 있지만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이면 절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만 받으시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