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번을 읽고 ...
너무나 가식적인 말밖에 없어서 제가 한마디 하려고 씁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매우 간단합니다.
동전 뒤집기보다 더 쉬운게 구원이라는 것이죠.
나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주님은 이끄십니다.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아실겁니다.
제가 어떤 친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희반 친구인데요.
그친구가 하는 말이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고 하더군요.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고 말하는데 왜 죽였느냐고 하니까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아벨은 안바쳤는데 하나님이 아벨한테만 복을 주니까 가인이
화가나서 아벨을 도끼로 찍어 죽였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그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왜! 가인보다 아벨에게 복을 주었느냐고요. 그건 생각 안해봤냐구요. 그랬더니 머뭇머뭇 거리다가 말을 한마디도 못하더라구요.
이게 요즘 대부분 교회들이 말하는 설교입니다. 대부분 율법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죠.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니까 가인처럼 살인하지 말아야해!" 이런 식으로요. 그런다고 해서 살인을 안합니까? 살인을 한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인은 하나님앞에 자기의 것으로 자기의 열심으로 자기가 가꾼 채소를 하나님앞에 드렸다는 것이죠. 그러나 아벨은 오로지 하나님앞에 보잘것 없고 나약했을 뿐더러 하나님앞에 드릴 재물이 없었어요. 오히려 하나님앞에 긍휼을 입고싶은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 아실겁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율법적으로는 돌에 맞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잖아요. 이 여자가 예수님앞에 좋은 모습으로, 깨끗한 모습으로 나갔습니까? 아니잖아요. 보잘것없고 얼마나 비참한 모습으로 있었는데 이미 그 여자의 마음은 사망이었는데 예수께서 그때 여자에게 다가갔잖아요. 그것과 똑같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비참하고 사망에 이르는 마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나도 너를 더이상 정죄치 아니 하노니"그랬는데 이미 예수님은 그 여자의 죄를 담당하고 계셨잖아요.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사망가운데 있을때에 찾아오십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운것으로 채워지려면 옛것은 버려야 하잖아요.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내어주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는 지식으로 예수님을 믿는것은 헛것을 믿는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헛것을 믿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이런 글을 남길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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