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12절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이 너무 귀한 건 성경은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한다는 거죠. 저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하고 인간이 다른 게 뭐가 있느냐 하면 인간은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잘 하잖아요. 말이라고 하는 건 마음이 눈에 안 보이니까 마음속에 있는 걸 밖으로 표현하는 도구인데 인간들은 기술이 너무 좋아가지고 마음에 없는 걸 밖으로 만들어내는 거죠. 마치 컴퓨터에 없는 걸 모니터에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지요. 하나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으로 나타낸 것이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신앙생활하면서 제가 가장 어려운 건 어떤 일을 당할 때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을 때 제가 가장 답답하고 어려웠고 반대로 어떤 어려움을 당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을 때 전 너무 기쁘고 감사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 마음만 알면, 하나님 마음과 내 마음이 같이 흐를 때 그때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고 그런 거죠.
제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저는 종종 제 아들에게 쉽게 전화할 수 있지만 “이놈아 편지 좀 써라.” 제 아들이 편지를 잘 안 쓰는 편인데 내가 그러니까 몇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와요. 그러면 처음에는 편지를 딱 읽으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뭐 급한 게 있는지 보고 나중에 조용할 때 편지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내 아들의 마음을 더듬어 보는 거예요. ‘이놈이 곤고하구나. 이놈이 마음이 떠 있구나.’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특히 누가복음 15장 이 탕자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이잖아요. 이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내가 읽고 예수님 마음을 알고 나면 너무 자유로운 거예요. 저는 제가 목사로 살고 복음 안에서 40년이 지났지만 지금 내가 목사로서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복음을 위해 일한다고 해서 내가 나를 보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고 육신적이고 세상적이고 그런 게 나한테 참 많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게 참 많은 건 사실인데 하나님 마음을 제가 정확히 아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 행위 안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참 자유로울 수가 있는 거예요.
누가복음 탕자에 관한 글을 이번에 남미에서 좀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 읽고 할 때마다 내 마음에 강하게 느껴지는 게 뭐냐하면 둘째 아들이 자기를 믿는 마음이 일어나면서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갔고 둘째 아들이 방종해서 허랑방탕하게 모든 재물을 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여기 둘째 아들의 마음이 너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거예요. 자기를 믿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그렇게 안 돼요. 누구든지 간에. 그리고 그 다음에 자기가 자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기를 자기가 다스리지 못하는 그 모양을 보는 거예요.
생각해 봐요. 돈이 이만큼 있다가 점점점 줄어들 때 똑같이 사람들 중에 ‘아이구 돈이 조금 밖에 없는데 이제 술집에 그만 가야 겠다. 이제 그만 마셔야 겠다. 아 이제 돈 그만 써야 겠다.’ 그 마음이 있는데도 계속해서 몇 백만불 가져가서 이제 만 불 남았고 팔천 불 남았고 칠천 불 남았고 그러면 ‘아이구 이것 밖에 안 남았다. 이것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제 그만 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가서 쓰고 나중에 바닥이 되는 그 모양이 인간이 자기를 다스리고 자기 생각을 믿는 게 너무 어리석은 걸 성경이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둘째 아들처럼 사업하면 잘 될 줄 알고 자기를 다스리면 잘 다스려질 줄 알고 대부분 사람들은 살아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 내가 정말 부끄러웠던 것은 누구보다 내가 악하고 더럽고 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비해 볼 때 내가 얼마나 추한지 하나님에 비해 볼 때 내가 얼마나 악한지 그걸 느끼지 내 스스로 그걸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하고 가까이 있지 않는 사람은 악해도 악한 줄 모르고 추해도 추한 줄 모르고 더러워도 더러운 줄 모르며 거짓되어도 거짓된 줄 모르는 거예요. 그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본 사람이 하나님과 자기를 비추어봤을 때 그때 ‘이야 진짜 나는 저주를 받아야 할 인간이구나. 나는 멸망을 받아야 할 인간이구나. 내 자신을 기대해서는 안 되겠구나. 나를 믿어선 안 되겠구나.’ 그 마음이 그 속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누가복음 탕자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고 예수님이 만든 이야기인데 왜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이야기 했느냐 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여기다 담았어요. 우리가 잘나서 나를 믿을 때 아버지를 떠나가고 내가 망하고 아무 것도 없을 때 주님을 향해 돌아오고 아버지를 떠나 나를 믿는 마음하고 내가 하는 모든 게 실패고 나를 불신하는 마음하고 너무 분명하게 우리가 구분이 되는 거예요.
나를 믿는 마음은 얼마까지는 부유하고 잘 될 것 같지만 결국 돼지우리 안에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고 반대로 나를 불신하며 아버지를 믿는 마음이 있으면 형편이 어떻든지 간에 복되고 아름답게 이끌어지는 그 결과를 예수님은 주님의 마음 안에 있으면서 그 마음을 우리에게 전하길 원하셔서 주님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바로 네가 둘째 아들처럼 너를 신뢰할 수 없고 너를 믿을 수 없는 상태에 왔을 때 내가 너를 깨끗케 해줄게. 내가 너를 영광스럽게 해 줄게. 내가 너를 배부르게 해줄게.” 하는 약속이예요.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저는 그래서 누가복음 15장을 읽을 때마다 그걸 제가 믿는 거예요. 확실하게 나를 부인하고 정말 내가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인 걸 깨달으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그가 누구든지 간에 우리 모든 문제를 맡으셔서 깨끗하게 해주시고 영광스럽게 해주시고 배부르게 해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맡으셔서 복되고 아름답게 이끌어주시는 걸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문제를 가지고 제게 찾아와 상담을 할 때 이 누가복음 15장이 있어 너무 힘이 나요. “당신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 이건 하나님의 법칙이다.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래 네가 아버지 집을 떠나는 아들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온 거고 지금 돌이켜서 돌아온 아들의 마음처럼 낮아져서 마음이 무너지고 주를 의지했을 때 이젠 내가 잘해서 배 부르려고 하지 않고 내가 잘해서 깨끗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잘해서 영광스러우려고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가질 때 그 때 아버지가 일을 하신다.”
여러분들도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를 떠날 때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고 돌아올 때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서 거기가 이 성경엔 짧은 거리인데 너무 멀어서 어떤 사람은 한평생 있다가 다 늙어죽을 때 돌아온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인생이 너무 짧아서 돌아오기 전에 죽는 사람이 있고 그런데 여러분 정말 이 시기를 좁혀서 아버지 집에서 오래 살지, 돼지우리에서 오래 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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