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잘 아는 이야긴데 오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좀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제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신 이후에 제 삶이 정말 마음 중심부터 달라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신약에도 예수님이 계시니까 나사로가 죽어도 문제가 안 되고, 포도주가 모자라도 문제가 안 되고, 풍랑이 쳐도 문제가 안 되고, 어떤 병자를 만나도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건 왜? 예수님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니까요.
분명히 공허가 왔는데, 분명히 혼돈이 왔는데, 분명이 이 땅에 흑암이 왔는데, 하나님이 없는 세계 속에서 흑암이 오면 흑암이고, 공허가 오면 공허고, 하나님이 없는 세계 속에서 혼돈이 오면 혼돈이지만 하나님과 함께 있는 세계 속에서는 혼돈은 혼돈이 아닙니다. 혼돈은 다만 하나님의 질서를 위한 전주곡일 따름이고 흑암은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있는 예비 단계라는 거지요.
쉽게 말하면 여러분 배추벌레가 배추벌레가 아니지요. 모르는 사람은 배추벌레를 보고 배추벌레라고 말하지만 그건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배추벌레가 아닙니다. 지금은 징그러운 배추벌레지만 조금 지나면 그건 나비로 변하기 때문에 배추벌레는 배추벌레가 아니라 나비가 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성경 말씀을 표준해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해 보면 땅이 공허했다, 혼돈했다, 흑암이 깊음 가운데 있다. 세상 사람은 땅이 공허하다고 말해요. 혼돈하다고 말하고 흑암 속에 있다고 말해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땅이 혼돈했다고 말하지 않고 공허했다고 말하지 않고 흑암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할 준비가 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저는 1962년도에 구원을 받기 전에 제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혼돈했었습니다. 공허했고 또 내 마음이 참 어두웠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 속에 들어오신 이후에 내가 이상 더 어둠 속에, 공허 속에, 흑암 속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걸 다 물리치는 걸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신기했던 것이 ‘야 배가 고프다. 내가 이러다가 굶어죽을는지 모르겠다.’ 그런 두려움이 한번 내 마음에 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루는 내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오늘은 하나님이 음식을 많이 주시겠다.’는 그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방에 있는 형제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 누가 불렀어요. “전도사님, 우리 동네 어떤 청년이 군대에 가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와서 장례를 좀 인도해 달라고. 그래서 우리가 그날 다섯 번의 예배를 드리고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그렇게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아 하나님이 이렇게 음식을 먹이시는구나. 그러면 그분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먹일 수 있구나.’
한번은 너무 겨울이 추운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내 마음에 왔었어요. 한 이틀 그랬어요. 냇가에서 세수를 하다가 얼음장 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았습니다. ‘저 물고기를 만드신 분이 나를 만드셨는데 저 물고기도 얼음장 밑에서 안 얼어죽게 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얼어 죽게 하겠느냐?’ 그 다음부터 얼어 죽겠다는 그 두려움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내 마음에 미움도 있고, 교만도 있고, 거짓도 있고, 악도 있고 구원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내게 육신적인 게 참 많았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그것들을 다 내어 쫓아주시는 걸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주님 앞에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슬픔이 오면 슬픔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고통이 오면 고통이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괴로움이 오면 괴로움이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절망이 오면 절망이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기 위한 전주곡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재료인 것입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만듭니까? 철판을 가져와서 철판을 잘라서 자동차의 바디를 만들지요. 엔진을 만들고 그런 것들은 전부다 자동차가 되기 위한 하나의 재료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오는 괴로움은,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오는 가난은,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오는 절망은 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뜻을 나타내기 위한 재료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내려가서 종살이 한 것이나 감옥에 들어간 이것이 뭡니까? 총리가 되기 위한 단계고 과정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결국은 요셉은 종이 아니었고 요셉은 감옥에 있는 죄수가 아니라 총리였습니다. 총리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종 생활도 했고 죄수로 감옥에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배추벌레는 배추벌레가 아니라 나비가 되는 과정으로 배추벌레의 과정을 지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많은 어려움, 우리가 당하는 많은 고통, 우리가 당하는 많은 괴로움, 슬픔 이런 것들은 절대로 여러분 슬픔이 아니고 고통이 아니고 괴로움이 아니고 좌절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나는 슬퍼.” “나는 운이 나빠.” “나는 죄가 많아.” 그 현실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바꾸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여러분 혼돈은 혼돈이 아니고, 공허는 공허가 아니고, 여러분 어둠은 어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저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예수 안에 살면서 정말 이걸 잘 몰랐을 때 슬픔이 오고 괴로움이 오고 절망이 오고 그런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 안에 들어온 이후에 예수님이 그걸 다 기쁨으로 축복으로 은혜로 바꾸셨습니다. 이제 나는 그런 것들을 보고 슬픔이라고 괴로움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걸 축복으로 바꿀 재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중에 있고 그건 여러분 아무리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깊은 흑암 속에 있어도 하나님 한분 계시면 그것 바꾸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해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에 살아 있느냐, 없느냐?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에 살아있지 아니하면 그걸 바꿀 힘이 없지만 만일에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에 살아계신다면 어떠한 문제도 은혜로 바꾸어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 이건 하나님이 공허는 하나님의 충만을 채울 수 있는 전주곡이고, 혼돈은 하나님의 질서를 맞아들이기 위한 안내자고, 흑암은 하나님의 빛을 위한 배경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닥치는 그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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