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장 4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게 참 많이 있는데 그전에는 하나님보다 인간적으로 되어지는 그런 일들에 기대를 뒀는데 제가 지난 과거를 죽 돌아보면 인간적인 면으로 가능하게 보이고 될 만한 일들 가운데 잘된 것은 거의 없고 반대로 인간적으로 전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그 일들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점점 내가 인간적인 것에 기대하고 있었던 마음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자라서 하나님이 내속에 역사할 역량이 커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을 찾아가고 장로들을 찾아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한다는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가 이 앞에 마태복음을 보면 유월절 전에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잡아 죽일 방책을 의논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하다가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 하면 “혹시 우리가 예수를 잡아 죽이다가 백성들 가운데 소요가 일어날는지 모르니까 명절에는 죽이지 말자.” 다시 말해서 이번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말자고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결정을 해버립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만약에 우리가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시도했다가 그 많은 백성들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여서 돌멩이를 들고 우리를 때리면 돌에 맞아 죽을 텐데 진짜 위험한 일이니까 유월절에는 말고 명절이 지나가면 그때 예수를 죽여도 늦지 않다고 결론을 내려버렸습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하고 이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이건 너무 놀라운 거예요.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이 생각해봐도 우리는 예수님을 명절에 안 죽이려고 하는데 딴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유다가 찾아와서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정말 자기들은 죽이려고 생각도 안했는데 유다가, 그것도 딴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와서 그랬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이 넘겨져서 죽임을 당케 되는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 않았을지라도, 죽이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어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명절에 못 박기로 작정이 되었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한다는 겁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게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다는 거죠.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내가 복음 안에 있으면서 때로 환란을 당하거나 시련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는데 이 어려움이 과연 주님으로 말미암았느냐? 내가 돌이켜서 다시 생각해보면 주님이 허락지 않는데 내가 이런 어려움을 당할 수 있겠느냐? 물론 어려움이 생길 때 우리는 그렇게 말하죠. “아 이건 내가 실수해서 생겼어. 진짜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실수했어.” 아니면 “저 사람이 나를 모함해 와. 그게 문제야.” 등등 여러분 우리는 이런 이유를 달겠지만 만일에 하나님이 허락지 않는데 누가 나를 손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누가 나를 해롭게 할 자가 있으며 정말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머리카락 하나 손댈 수 없다는 거죠.
그러면 내가 당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전부 하나님이 허락해서 되어졌단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손끝만한 어려움도 내가 겪을 수 없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까 내가 어려움을 겪는 거고 만일 하나님이 내게 어려움을 겪게 하신다면 그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라 복으로 바꿔주실 줄 믿는 믿음이 우리 마음에 항상 있는 거거든요.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당할 일이 없는데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어려움을 당케 하겠습니까? 반드시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이 찬미를 받으시고 우리의 복음에 진보를 가져오는 그런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려움을 허락하시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어려움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거죠. 생각을 해 보세요. 하나님이 곧게 하신 걸 누가 굽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굽게 하신 걸 누가 곧게 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누가 닫을 사람이 있으며 하나님이 문을 닫으면 누가 열 사람이 있습니까? 전혀 불가능한 거죠.
우리는 가룟 유다로 인해서 예수님이 팔리는 걸로 생각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정말 팔려고 작정했다고 생각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이 민요가 일어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분명히 이번 명절에 예수님을 죽이지 말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그들이 죽이지 않으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유다가 찾아가서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하고 이 대제사장이 깜짝 놀란 거예요. “누구냐? 너 예수님 제자 아니냐? 예수님의 제자가 왜 예수님을 팔려고 하지?” 이해가 안 가지만 다른 누가 예수님을 팔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가 팔려고 하니까 너무 믿어버린 거예요. 은 삼십을 달아주고 결국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실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죠. 주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이게 인간으로 말미암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어느 누구 하나 내게 머리카락하나 손댈 수 없고 나를 해할 수 없고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내가 굶고 싶어도 굶을 수 없고 내가 망하고 싶어도 절대 망할 수 없고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면 우리가 아무리 지켜도 하나님이 우리 재산을 빼앗으면 빼앗길 수밖에 없고 우리가 몸을 다치면 다칠 수밖에 없고 잘못 되면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주님 앞에 너무 놀랍고 감사하다는 거죠. 유다에게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넘길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그렇게 됐습니다. 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너희 속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했어요. 하나님이 내게 허락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손끝만한 해를 끼칠 수 없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나를 해하려고 해도 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모든 게 하나님으로 되어지기 때문에 인간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이 내게 그런다는, 사람에 대한 그런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모두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 그분이 길을 열면 절대로 우리 앞에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면 절대 우리를 가난하게 할 자 없고 하나님 그분이 어려움을 주시면 절대 우리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사단에게 속아서 내가 인간적으로 잘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왕위를 다윗에게 줬는데 사울이 잘하면 왕위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죠. 그런 어리석은 생각 속에 우리가 빠져서 늘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걸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아무리 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안 되고 인간적으로 아무리 불리해도 하나님이 하락하시면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관원들이 명절에는 말자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니까 유다가 찾아가 그 일을 이루듯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런 믿음으로 설 때 주님이 힘 있게 역사할 줄 믿는 것입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