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1장 9절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여러분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속에 참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한 일을 행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게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예수님이 일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제가 이번에 러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탕자의 이야기나 또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의 이야기나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전부다가 자기를 믿고 나갔던 사람들이 자기가 다 무너지고 깨어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걸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은 근본 처음부터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 하면서 우린 사단과 연결되어서 사단이 우리 마음에 넣어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믿는 믿음 속에 살고 있는데 우리가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탕자처럼 나오미처럼 뭘 느끼느냐 하면 아 내가 살고 있던 내 삶 자체가 잘못되고 내 생각 자체, 내 주관 자체가 잘못된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이제 나를 부인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란 믿음이 없는 게 아니고 자기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말하는 거지요.
우리는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다고 하면서 4절에 이야기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왜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는가 하는 문제를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서 광야를 거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일곱 족속을 내쫓고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워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되고 그렇게 하나님이 뜻을 두시고 마음에 계획을 두신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삼으려고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나안 땅에 보내시겠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기 위하여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겠구나.’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가지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생각을 깊이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냥 애굽의 바로 왕 밑에서 종살이하고 벽돌 굽고 흙 이기기 이런 일을 하는 게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지라는 바로 왕의 혹정 아래서 시달리다가 건져주는 그게 좋았지 하나님의 마음까지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거지요. 그들은 애굽에서 이끌어 내준다는 그게 좋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되었고 자기에게 좋아서 그걸 기뻐했기 때문에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뒤에 광야 길을 가면서 계속 좋은 일 있을 때는 기뻐하고 나쁜 일이 있을 때는 원망하고 그런 삶이 계속 되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았을 때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에게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 와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마라의 물이 쓸 때 원망했고 만나를 주었는데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했고 늘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하나님하고 다른 마음의 세계에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지를 않고 여전히 자기 마음의 세계 안에 머물러있다는 거지요.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금까지 이끌어왔고 이 광야 길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걸 확실히 믿는 믿음이 있다면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할게 뭐가 있습니까? 길로 인해 어려워도 ‘아 이래도 조금 있으면 우리는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런데 그들은 그런 믿음이 없고 자기 자신의 생각의 세계 속에서 사니까 자기가 좋을 때는 그냥 기뻐하고 나쁠 때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게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정말 이들을 불뱀으로 물게 하시니까 이들이 원망하던 그 마음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야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구나. 여호와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구나. 두렵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불뱀이 떠나길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불뱀을 떠나게 하지 않으시고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쳐다보면 산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참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신데 왜 그러셨냐 하면 불뱀을 떠나보내면 믿음이 있는 사람도 살고 없는 사람도 살겠지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는 이야기는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놋뱀을 쳐다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놋뱀이 집 앞에 있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6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얼마나 도시가 넓겠습니까? 그 한가운데 놋뱀을 장대 위에 높이 달아놓았으니까 아마 놋뱀을 쳐다보기 위해 어떤 사람은 한 시간을 걸어와야 할는지 모르고 어떤 사람은 30분을 걸어와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지금 뱀에 물려 죽어가는데 걸어가는 것 자체도 쉽지 않고 단순치 않는데 그들이 어떻게 놋뱀을 쳐다볼 수가 있겠습니까? 확실하게 하나님 내게 역사해서 내가 지금 어렵지만 놋뱀에게까지 가서 쳐다보면 산다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살수가 있었지만 ‘아이구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방에 누워있기도 힘드는데 놋뱀 쳐다보러 가다가 죽겠다.’ 그런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놋뱀을 쳐다보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도 그냥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 주시니까 감사하다는 그 감사 속에서도 그냥 애굽에서 건져내 주시니까 감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하나님과 같은 마음의 세계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해서 하나님께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좋을 때 기뻐하고 좋지 않을 때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한다면 그건 왜 그러냐 하면 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뱀에 물린 사람들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았습니다.
하나님 놋뱀을 장대 위에 달게 했습니다. 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쳐다볼 수 없도록 했다는 거지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만 놋뱀을 쳐다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간에 믿음의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항상 그렇습니다. 불뱀이 있고 놋뱀이 있고, 저주가 있고 구원이 있고, 어려운 시련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여러분 우리가 어떤 어려운 문제가 와도 그 문제를 능해 해결할만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불뱀을 내쫓기를 원치 않으시고 불뱀을 그대로 두고 놋뱀을 쳐다본 자만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삶속에도 불뱀처럼 여러 가지 어렵고 환란이 되고 문제가 많은 그런 일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놋뱀을 쳐다보면 살듯이 우리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내가 믿음으로 받고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복되고 은혜롭게 이룰 줄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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