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7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성경을 읽다가 보면 예수님의 생각하고 내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지혜가 예수님에게 도저히 도달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간음한 여자를 잡아놓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그 질문을 하면서 그들의 공통된 마음은 ‘이제 예수님은 우리에게 걸려들었어. 돌로 치라고 하신다면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가 죄인을 치라하면 말이 안 되지. 치지 말라고 하신다면 율법에는 치라고 되어있는데 율법을 어기는 자가 돼. 이래도 저래도 예수님은 고소를 당케 돼. 걸리게 됐어.’
그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거기까지 왔을 때에 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잠시 후에 예수님의 입으로 나온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죠. 거기에 지혜가 도달이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혜로 본다면 인간들하고 주님하고 비교를 할 수 없는데 인간들이 어리석게 자기 올무에 예수님이 걸리기를 바랬고 자기 함정에 예수님이 빠지기를 바랐다는 거지요.
저는 성경을 읽어보면서 어느 날 요셉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는 거예요. 일곱 살진 소, 일곱 마른 소, 일곱 살진 이삭, 일곱 마른 이삭, 그걸 가지고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러분 애굽의 모든 박사들, 술객들 전혀 몰랐는데 요셉은 정확하게 일곱 해 풍년이 온 다음에 흉년이 온다고. 그 지혜는 요셉에게서 난 지혜가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라는 거지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일이나.
이제 제가 오늘 저녁에 우리 장년들하고 이런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물을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물을 뜨러 가니까 엘리야가 말하기를 넌 물만 가져오지 말고 작은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고. 그 여자가 말하기를 “계집종의 집에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는데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떡을 만들어서 내 아들과 같이 먹고 죽으리라.”
그 이야기에 사람의 생각이 현재 사르밧 과부는 기근 중에 있으면서 자기 집에 가루 한 웅큼하고 기름 조금이 있는데 현재에서 생각이 앞서가는 거예요. 나뭇가지를 주워서 가루로 떡을 만들어먹고 그건 현재 되어진 게 아니고 생각으로 간 거지요. 그런데 만일에 여자가 생각이 나무 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떡을 만들어먹는 거기까지 생각이 머물면 떡 먹는 게 기쁘고 즐겁고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여자가 생각이 거기서 멈춘 게 아니라 좀 더 발전해서 떡을 먹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올 것인가 이 여자가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가진 가루는 다 됐잖아요. 떡을 먹을 또 다른 가루가 없잖아요. 그 다음엔 굶어죽어야 한다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거예요. 그럼 여러분 지혜가 부족해서 여자가 떡을 먹는 그 시점까지만 생각이 미친다면 엘리야가 빵을 달라고 할 때 죽어도 안 줄 거예요. ‘이 빵 먹는 게 즐거움인데 이걸 내가 왜 줘?’ 그러나 지혜가 빵을 먹는 그 위치에서 더 나아가서 그 다음에 굶어죽는다는 위치까지 생각이 도달하니까 ‘어차피 죽을 건데 빵을 드리고 은혜를 입자.’ 그렇게 마음이 바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 삶 속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 안에서 살면서 지혜가 모자라니까 망원경을 가지고 껴도 성능이 나쁜 망원경은 멀리 안 보이지요. 그러나 성능이 좋은 망원경은 멀리까지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멀리를 생각 못하니까 임시 먹고 마시고 즐기고 거기에 머물러 버려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성경 읽을 때 잠이 와도 입시 시험 문제 읽을 때 잠 안 오잖아요. 그렇지요? 여러분 예배드리고 하는데 피곤해도 돈 버는데 안 피곤하잖아요. 사람들이 돈을 벌면 그 다음에 내가 그 돈으로 빵을 살 수가 있고 한 달 월급을 받으면 옷을 살수가 있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고... 그걸 생각하니까 피곤해도 직장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가기 싫어도 가지요.
여러분 짐승들 가운데서 씨를 뿌려서 농사를 짓는 짐승은 아직까지 없어요. 사람들은 농사를 짓잖아요. 땅에다 씨를 뿌리잖아요. 짐승들은 곡식이 있으면 임시 먹어치우지 이걸 씨를 뿌렸다가 가을에 백 배 이백 배 더 거둘 그 지혜가 도달하지 못하지만 사람은 지금은 이걸 버리는 것 같지만 씨를 뿌리면 그 다음에 백 배 이백 배 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지혜가 농사를 짓게 하는 거예요.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처음에는 버리는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는 거기서 백 배 이백 배를 얻으니까 농사를 짓는 거예요.
신앙의 삶도 똑같아요. 짐승들은 절대로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지혜가 도달하지 아니한 사람들,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뒤에 오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임시 눈앞에 내가 얻는 수입 거기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그들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이제 예수님은 우리한테 꼬리 잡혔다. 덜미잡혔다’ 생각했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라.” 그 말할 줄은 서기관들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예수님의 지혜가 훨씬 뛰어난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혜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지혜가 너무 없어서 내가 지혜가 없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냥 살아요. 내가 모르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냥 살지 모르는 걸 내가 깨닫게 되면 그렇게 살지 않아요. 지혜를 얻게 된다는 거지요.
성경을 읽어도 예수님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건 다 알아요. 그러나 지혜가 모자란 사람은 예수님 내 죄를 위해 죽었지만 내가 죄를 지으니까 죄인이라고 생각을 해요. 거기서 지혜가 조금 더 달려가면 ‘내가 죄를 짓지만 예수님의 속죄는 영원한 속죄기 때문에 이 죄가 해결이 되었다.’ 거기까지 지혜가 미치질 못하니까 예수를 믿어도 죄인으로 남는 거예요.
성경 야고보서는 이야기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가 없어 내가 지혜가 부족한 걸 느낄 줄 아는 사람이고 지혜가 없어도 지혜가 없는 줄을 못 느끼는 사람은 그냥 자기가 잘난 줄 알고 그냥 살아요. 그러나 그 지혜를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구하게 돼요.
하나님의 지혜를 여러분이 얻게 되면 여러분 삶이 달라집니다. 임시 눈앞의 삶을 살지 아니하고 내 일생의 모든 걸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살며 복되고 열매 맺는 삶이 된다는 거지요. 여러분 지혜의 근본 되신 예수님에게 붙어서 예수님에게로부터 지혜를 얻어서 은혜롭고 복되게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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