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제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에 너무너무 놀라운 것은 이 성경은 빛이 있으라 할 때 빛이 있었고 그 다음에 또 땅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니 과목이 있었던 것과 똑같이 우리 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서 우리 마음에 전에 없던 빛을 우리 마음에서 만들고 소망을 만들고 믿음을 만들고 우리 마음 안에 생명을 만드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창세기 7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심판할 만큼 인간들의 죄가 많아졌고 타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 “너는 방주로 들어가라.” 여러분 그 말씀을 따라 방주에 들어갔을 때에 너무 놀라운 건 멸망이, 홍수가 찾아왔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홍수가 와도 그게 전혀 홍수가 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어떤 환란이나 시련이 와도 그게 전혀 환란이 되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에 7년 동안 흉년이 왔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에도 흉년이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는 흉년이 오면 흉년인데 애굽은 요셉과 함께 있으니까 흉년이 오지만 흉년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고 그랬는데 애굽은 요셉과 함께 있어서 전혀 굶주리지 않고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요셉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죠.
출애굽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날 밤 애굽에 있는 모든 집집마다 천사가 다니면서 칼로 맏아들을 죽이는 그런 무서운 저주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사람들은 죽음의 사자가 왔지만 그들을 죽이질 못했습니다. 왜? 피가 그걸 다 막아냈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방주나 요셉이나 그 피, 그건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야기지요. 여러분 예수와 함께 있으면 홍수가 와도 홍수가 안 되고, 예수와 함께 있으면 기근이 와도 기근이 안 되고, 멸망이 와도 멸망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이제 4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마는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내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재앙이 오면 그냥 재앙으로 내게 임했고, 고통이 오면 고통이 되었고, 슬픔이 오면 슬픔이고, 절망이 오면 절망이 되었는데 내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난 뒤부터 고통이 와도 고통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망이 와도 절망이 안 되고, 슬픔이 와도 슬픔이 안 되고, 죽음이 와도 죽음이 안 된다는 그게 너무 신비스러운 겁니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내게도 굉장히 많은 문제가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고 그런 일들이 참 많았지만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심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없을 때는 그게 고통이고 슬픔이고 괴로움이고 기근이었는데 예수님이 오신 뒤에 그게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누가복음 8장 이야기를 조금 전에 장년들하고 그 이야기를 하다가 왔는데 누가복음 8장에서도 풍랑이 와도 예수님은 풍랑을 이기셨잖아요. 귀신들린 자가 와도 예수님은 귀신을 이기셨잖아요. 혈루증 걸린 여자도 예수님이 혈루증을 이기셨잖아요. 야이로의 딸이 와도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와도 예수와 함께 있는 동안에 그것들이 우리를 덮치지 못하는 거예요. 왜? 내가 예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마치 여러분 유리그릇은 아주 잘 깨어지는데 그걸 들고 옮기고 이동하는데 굉장히 힘이 들지만 스티로폼을 넣고 잘 포장을 하면 유리그릇을 집어던져도 깨어지지 않잖아요. 우리는 연약한 유리그릇이라면 예수님은 스티로폼으로 된 우리의 커버가 되기 때문에 부딪혀도 우리가 직접 안 부딪히니까 깨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죽음이 와도, 슬픔이 와도, 고통이 와도, 풍랑이 와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방주로 들어가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예수 안에 들어가 거해라. 예수 안에 머물러라.” 그러면 시련이 와도 죽음이 와도 모든 게 와도 예수님이 다 막아주시니까 홍수가 와도 우리는 홍수가 아닙니다. 슬픔이 와도 슬픔이 되는 게 아니고 고통이 와도 고통이 되는 게 아니고 절망이 와도 절망이 되는 게 아닙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가 있는 나라에 우리하고 기후도 맞지 않고 풍속도 맞지 않고 음식도 안 맞고 더구나 생각이 달라서 일하다보면 종종 절망이 찾아오지요? 비자를 얻는 것이나 행정적인 일로 공무원들을 만날 때 진짜 답답할 때가 있지요?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나 구원을 받았다 해도 곧 마음이 변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실망이 되고 절망스럽습니까?
그렇습니다. 나 혼자 같으면 하루에 열 번도 더 절망합니다. 나 혼자 같으면 하루에 몇 번씩 절망하고 그러지만 이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당하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내가 직접 당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당하기 때문에 이상 더 그게 문제가 안 되어진다는 겁니다.
왜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가야 합니까? 방주 밖에서 홍수를 만나면 홍수가 다 멸망이고 저주고 죽음인데 방주 안에 들어와서 만나니까 그 홍수는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요셉이 없는데서 기근을 만나면 그건 진짜 죽음인데 요셉과 더불어 있으면 그건 더 이상 기근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양의 피가 있는 사람은 죽음의 사자가 와도 그들을 죽이지 못한다는 거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그 예수님이 계십니다. 나는 이런 시련을 이런 어려움을 이길 수 없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걸 이기실 수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이야 내가 그때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이겼을까? 그때 내가 어떻게 이 문제를 넘어지지 않고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속에 사랑하는 주님이 계십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그 예수님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사한 걸 마음에 믿는다면 여러분 마음에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여러분이 당하는 어떤 일이든지 그건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의 문제가 되고 예수님의 문제가 되면 예수님이 막으셔서 절대로 그것이 내게 미치지 않게 하신다는 거죠.
간음한 여자가 예수와 함께 있는 동안에 돌이 다 날아오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듯이 그런 저주와 그런 멸망과 그런 슬픔과 그런 어려움이 우리 가까이까지 왔다가 사랑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버리는 그런 귀한 일을 사랑하는 주님은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그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내가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를 믿는 믿음을 가질 때 이제는 홍수 자체가 문제가 안 되고 정말 저주나 죽음 자체가 문제가 안 되고 어떤 두려움이 와도 문제가 안 되고 우리가 기쁨으로 주님을 믿으며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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