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11절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여러분 믿음이란 걸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굉장히 신령해서 구름을 타고 신비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가 예를 들어서 “내 친구를 믿는다.” 그 말은 “친구하고 나하고 사이에 마음에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이 하나로 통한다.” 그렇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만일 내 친구를 의심한다면 마음이 하나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그 말을 내가 생각해보고 계산해 보고 ‘저게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그렇게 해야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친구를 믿는다면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진실한 마음을 이야기 해.’ 그렇게 받아들이는 그걸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믿는 것이나 아내를 믿는 것이나 형제를 믿는 것이나 전부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지요.
그런데 사단이 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서 세상 사람 사이를 마음에서 연결하는 그 믿음을 깨뜨려버린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람들에게 한 번 속고 두 번 속다보면 ‘나 이제 죽어도 사람 안 믿어. 미쳤다고 믿어? 죽어봐라. 내가 믿나!’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마음에 담을 쌓아버리는 거예요.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 이야기를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내 생각을 따라서 결정하고 아내가 이야기하든 친구가 이야기하든 형제가 이야기하든 동료가 이야기하든 그 이야기를 그 마음을 그냥 받는 게 아니고 그 마음이 어떠하든지 간에 내 판단에 의해서 사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버렸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사단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기 위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다 깨뜨려버려 놓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의 줄이 선이 다 무너져 버리고 담이 쌓여진 거지요.
생각해 보세요. 아내가 남편을 믿는다면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에 남편을 위해서 청소를 해도 행복하고, 와이셔츠를 다려도 행복하고, 저녁에 남편이 돌아올 걸 예비해서 음식을 차려도 행복하지요. 그러나 만일에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겠어요? 요리를 해 줘도 속상할 거예요. 죄송합니다만, 나쁜 말로 ‘빌어먹을! 잘 해 먹이면 뭐하노? 다른 여자하고 나쁜 짓 할 건데!’ 얼마나 불행합니까? 남편을 위해 와이셔츠를 다리면서도 한참 다리다가 짜증이 나는 거예요. ‘잘 해 입히면 뭐하노? 바람이나 피우고 다닐 텐데...’ 여러분 믿음하고 불신하고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데 사람들은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살고 있는 거지요.
저는 정말 아무도 믿지를 않았어요. 전 누구보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구원을 받고 예수 안에 살면서 예수님을 믿다보니까 사람을 믿는 것도 마음에 많이 발달이 되어서 제 주위에 사람들을 전부 믿고 사니까 얼마나 제가 편안한지 제가 아내를 믿고, 같이 일하는 김성훈 목사님, 장로님들, 아들, 딸, 내 마음에 믿고 같이 하는 이게 너무너무 편한 거예요. 자유롭고.
그런데 그 믿음이란 건 나와 아내나 자식이나 아니면 형제나 친척만이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믿음이 아닌 불신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아 놓아서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흘러와야 할 평안이나 능력이나 기쁨이나 지혜를 막아버리는 거예요.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네가 믿느냐? 믿음대로 되리라.” 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눈 먼 병자에게 “뭘 하기를 원하느냐?” “주여 눈뜨기 원합니다.” “네가 믿느냐? 믿음대로 돼라.” 눈먼 병자에게 주의 능력이 마음을 따라서 들어가서 그 눈을 뜨게 해야 하는데 믿지 못할 때 마음이 막혀져 있기 때문에 주의 능력이 흘러들어갈 수가 없는 거지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 우리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럴 때 나는 문제가 되지만 예수님이 오시면 너무 좋은데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하고 나하고 한 마음이 되니까 내 일이 예수님의 일이 되고 예수님의 일이 내 일이 되니까 너무너무 편하게 예수님이 일을 할 수가 있는데 믿음이 없어서 예수님하고 나하고 담을 쌓아놓고 있으니까 내가 혼자 고통하고 내가 혼자 괴로워하고 내가 혼자 슬퍼하고 근심하고 있는 거예요.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원래 사라의 모습입니다. 그런 사라가 믿음을 가지니까 하나님의 힘이 그 속에 들어가서 잉태하는 힘을 일으켜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했다는 거지요. 사라에게 아들을 낳을 만한 힘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선을 행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만한 의가 없는 것은 다 동일한 건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나하고 하나님하고 하나를 만들어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마음에 가로막힌 담을 제거하고 한 마음이 될 때, 마치 자동차 배터리가 다 방전되어서 시동이 안 걸릴 때 점프 케이블을 가져와서 두 자동차에 연결시키면 배터리가 다 나간 자동차가 배터리가 있는 자동차의 전기를 끌어와서 시동을 거는 것처럼 내가 의가 없을 때 하나님의 의를 내게로 끌어 오는 그 케이블, 그게 믿음을 가리켜 말하는 겁니다.
내게 지혜가 없고, 내게 능력이 없고, 내게 기쁨이 없고, 내게 소망이 없을 때 하나님께 있는 그걸 내게로 끌어들어오는 그것을 마음의 선, 막힌 게 다 무너지고 같은 마음으로 있는 그 선이 믿음인데 그걸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오면 우리는 더러운 죄인인데 하나님의 의가 들어와서 의인이 되고, 더러운 악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선이 들어오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아기를 낳을 수 없는데 하나님의 힘이 들어와 아기를 낳게 되고 능력이 없는데 하나님의 힘으로 능력을 가지고 살 수가 있다는 거죠.
믿음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사이에 가로막힌 마음의 끊어진 줄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으로 받지 말고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때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힘이 역사해서 늙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기를 낳은 것처럼 여러분 속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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