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장 3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서 우리 인간에서 소망이 없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 연못가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물을 동할 때 내가 먼저 내려가면 낫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38년 된 병자에게는 소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물이 동하는 걸 봐도 내려갈 만한 힘이 없고 내려갈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내려가려고 발버둥치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내려가니까 전혀 소망이 없었다는 거죠.
두 번째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서기관들이 말했지요.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때 간음한 여자는 간음하다 잡혀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다른 아무 길이 없고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냥 절망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형편에 있었던 것이 간음한 여자였고 또 오늘 읽은 이 청지기도 역시 소망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주인의 청지기로 일을 해 왔다가 주인이 직분을 빼앗으니까 어떻게 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거예요. 힘이 있다면 땅이라도 파겠지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러니까 땅을 파는 노동도 할 수 없고 빌어먹을 수도 없는 정말 아무 길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성경을 읽어보면 실제로 우리 인간들은 전부다 길이 없습니다. 길이 있는 것 같지만 그 길은 온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그 길은 결국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저주와 멸망 외에 길이 없는데 사단은 우리에게 길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인다는 거지요. ‘너는 괜찮아. 잘 해. 너는 선해.’ 그러니까 사단에게 속은 사람들은 소망이 없는 사람이 소망이 없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막연하게 있다가 멸망을 당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내가 소망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내 방법이 없고 길이 없음을. 그럼 우리가 그냥은 예수님을 의지하는데 굉장히 힘이 들지만 내가 길이 없고 방법이 없으니까 예수님을 의지하는 게 너무 쉽다는 거지요.
저는 종종 우리 전도자들이 복음 일을 하면서 믿음 없이 거하는 전도자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그 믿음 없는 전도자들이 왜 믿음이 없느냐 하면 ‘그래도 나는 이 정도 하면 된다.’는 그런 마음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일에 자기가 현재 믿음이 없어서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소망이 없다는 걸 정확히 알고 길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현 상태에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믿음을 찾았을 거고 구하고 믿음을 발견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청지기가 이제 나중에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아 이러면 되겠다. 내가 지금 주인의 빚진 자를 탕감해주면 내가 직분을 빼앗긴 뒤에 그 사람이 나를 영접해 주겠구나.’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 길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믿음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 외에 다른 많은 병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을 받고 그럴 수가 없다는 거지요. 그러나 38년 된 병자는 다른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님 앞에 와 은혜를 입고 긍휼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너는 선해. 너는 잘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교회가 잘 될 거야. 너는 은혜를 입었어.’ 이런 속임으로 우리가 자신을 믿고 자신을 신뢰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쪽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사단은 계속 우리를 속였다는 거예요.
이 청지기는 자기의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주인의 것을 전부 자기 것인냥 알고 빚진 자들에게 큰소리 치고 막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에게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 청지기 직무를 셈해라. 너는 다시 청지기를 할 수 없다.” 그 이야기가 들려올 때 이 청지기는 굉장히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 신앙 생활하면서 주인이 “네 직무를 셈해라. 네가 다시 이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여러분 다 두려워하고 주님을 바라바고 주를 의지하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를 않다는 거지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 정도 하면 돼. 내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 열심히 전도하면 돼. 또 기도하면 되고 이렇게 심방하면 되지, 뭐 신앙이 별 거 있어?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여러분 그런 마음을 대부분 사람들이 갖게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믿음을 구하지도 아니하고 그러니까 결국은 주의 은혜를 입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청지기는 자기에게 길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믿음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단은 내 속에 길이 있는데까지 계속 이러면 될 것 같고, 이러면 될 것 같고, 계속해서 불가능한 일들을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을 일으켜서 주를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게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아 이러면 내가 안 되겠구나. 망하겠구나.’ 하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는 거지요.
그럼 내가 길이 없으니까 이젠 길을 찾는데 이 청지기도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길이 없으니까 이 청지기가 다른 길을 찾다가 보니까 ‘아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낱낱이 불러서 빚을 탕감해주자. 그러면 주인이 나를 쫓아내도 그 사람들이 나를 영접할 거야.’ 그래서 기름 백말, 밀 백말 빚진 자를 불러서 “너 얼마냐?” “백말입니다.” “어 팔십 말로 고쳐라.” 이십 말을 감해주는 거지요. “너 얼마냐?” “예, 기름 백말입니다.” “빨리 너 여기 고쳐라.” 그래서 그들이 탕감해줘서 같이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이 청지기는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 한번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내가 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길이 있지요? 길이 있으니까 내 방법으로 살지 주를 의지하고 주를 믿는다는 건 하나의 이론 밖에 되질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길이 없고 방법이 없으면 내 마음을 다 내어놓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그 쪽으로 마음이 흘러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했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귀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여기 이제 청지기가 말하기를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기름 50말을 탕감해 줬으니까 주인이 이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주인의 음성을 듣고 자기 직분을 빼앗길 것을 아니까 이런 지혜가 생기고 방법이 생깁니다.
만일에 여러분 우리가 길이 없고 주를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정확히 안다면 주님을 구하게 되고 주님이 여러분에게 길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을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건 왜 없냐하면 믿음이 없는 게 아니고 방법이 있어서, 이러면 될 것 같기 때문에 주를 신뢰하지 않지 내가 하고 있는 게 진짜 안 된다는 걸 정확히 알면 주를 믿을 수밖에 없고 믿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없다고 말만 하지 말고 정확하게 나를 봐서 내가 길이 없는 걸 깨달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줄 믿음으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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