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37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의 경험에 의해서 살기 때문에 내 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들어도 읽어도 잘 믿지 않고 내 생활 속에 그런 역사나 그걸 보고 난 뒤에야 그걸 믿으려고 합니다. 제가 배가 아팠을 때 주님께 기도를 했는데 “주님이 낫게 하시면 믿겠습니다.” 하고 주님께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은 “믿으면 낫게 하겠다.” 그랬는데.
여기서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게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광야에 있는 오천 명의 무리 앞에서,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지요.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그럴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간단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지만 이 대화 속에 주님이 우리 마음의 그림을 너무 정확하게 그린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진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한두 명이 아니라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디서 먹을 걸 구해서 먹을 걸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걸 엄밀하게 따지면 이건 제자들에게 먹을 걸 주란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데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일을 이룰 수가 있다는 거거든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겁니다.
자 이 제자들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제자들은 그들을 먹일 수 없지만 예수님은 그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도 문제가 되는 게 아닌데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런 이야기들은 성경에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하리라.” 그랬을 때 모세는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무엇인데 바로에게 가며…” 하나님이 모세를 보낼 때 모세가 능력없는 것을 알고 부족한 것을 알면서 보내실 때는 “네가 가긴 가지만 실제 내가 그 일을 이루시겠다.” 그 말씀이거든요. 그런데 모세는 그 말씀을 모르고 자기가 하려고 하니까 자기 능력이 안 되니까 두렵고 부담스럽다고 하는 거지요.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우릴 보고 먹이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신단 말이예요. 그러면 그 말은 “내가 너와 같이 있으니까 내가 먹이겠다.”는 거지요. 내가 하겠다는 건데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사실을 믿지 못할 때 ‘내가’가 ‘예수님’이 아닌 ‘내가’ 되니까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지금도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가서 너희가 먹을 걸 주어라.” 그 말은 “너희들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느냐?” 그 예수님이 일을 하시겠다는 거예요.
저는 구원을 받고 난 뒤에 다른 형제 자매들 간증을 들으면서 너무너무 시험이 된게 다른 형제 속에는 하나님이 나타나서 일하시는 것 같은데 내게는 전혀 일하시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이 많이 들더라고요. 난 구원받았는데 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지? 난 구원받았는데 왜 기도응답이 안 되지? 난 구원받았는데 왜 저런 은혜가 없지? 난 구원받았는데 왜 전도해도 구원을 안 받지? 난 늘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1년 2년이 지나면서 ‘아 그때 정말 주님이 일을 하셨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구나. 이건 내 일이 아니라 주의 일인데 주님이 이루시겠구나.’ 그런 마음들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면서 점점 주를 믿는 마음이 커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는 거지요.
지금도 여러분 우리 속에는 주님이 계시는데 우리는 그 주님이 일하는 걸 보고 계신다고 믿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 속에 힘있게 일을 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이 계시는 걸 보고 믿는 게 아니라 주님이 계신다는 걸 믿을 때 주님이 일을 하시는데 우리는 주님이 일하시는 걸 보고 믿으려고 하니까 그게 문제가 된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천 명이 되는 무리를 보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너희가 가서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잘 알지요. 아무 것도 없고 돈도 없는 제자들이 어디 가서 이 오천 명이 먹을 음식을 구하겠습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갖다 주라.” 한 그 말은 “너희 속에 내가 있지 않느냐? 내가 그 일을 하겠다.” 그 말이거든요.
그 이후에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대로 주님이 내게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 마음을 내가 받을 때 ‘아 이건 나를 보고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마음을 주신 분이 주님이라면 이 마음이 주님에게서 나왔으면 주님이 이 일을 이루시겠다.’ 그 마음이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믿음으로 달려나갈 때 주님이 이루는 것을 여러 번 보고 내 마음에 경험할 수가 있었거든요.
제자들이 어떻게 오천 명을 먹이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계시면 결과적으로 오천 명 먹였습니까, 못 먹였습니까? 먹였습니다. 제자들이 할 수 없지만 주님이 하셔서 그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지 않았느냐는 거지요.
그럼 우리는 못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합니까? 그러나 우리 가운데 주님이 계시면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할 수가 있다는 거지요. 여러분 여러분 안에 주님이 계신걸 경험해서 믿으려고 하지 말고 내 마음에 예수님의 피로 내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는 순간 그때부터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하기 시작하시면서 그때부터 내게 닥치는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 그가 그 모든 일을 이루고 역사해 주신다는 사실이지요.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 말은 제자들보고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이야기지요. 내가 가서 먹을 것을 주겠다는 이야깁니다. “내가 너희 속에 있다.” 동역자 여러분, 우리 속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 속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고 부담이 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부담을 피해 도망을 가고 하는데 그때 날 보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가 그 일을 이루겠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뒤부터 주님이 내게 그런 마음을 주셨을 때 이게 내 마음이 아니라 주의 음성이고 주의 마음인 것이 확실했을 때 이건 주님이 이루시겠다는 믿음으로 저는 달려갔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이 일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많이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오리사에 가기 전에 힌두교도들의 굉장히 많은 핍박이 있었고 대항하는 게 있었고 우리가 집회하려고 하는 장소의 강대상을 다 부수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저도 가면서 굉장히 마음에 어떤 걸 각오하고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하나님이 그들 마음을 바꾸어 주셔서 은혜롭게 집회를 마칠 수 있게 한 게 너무 감사했거든요. 만일에 내 마음에 그게 두려워 가지 않았다면 계속 내 마음에 두려움이 남았을 텐데 다녀오면서 내 마음에 힘도 얻고 형제자매들이 기도하는 그런 은혜를 입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건 여러분이 당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대신하실 일입니다 .주님이 하신다는 믿음이 없이 여러분이 하려고 하니까 어려운 것인데 그런 믿음을 갖고 하신다면 오늘도 여러분 삶 속에 정말 제자들이 자기들이 주님 안에서 오천 명을 먹이고 얼마나 만족했겠습니까? 우리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천 명을 먹이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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