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장 3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형제 자매들을 대합니다. 형제 자매들이 기뻐할 때도 있고 시험이 들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고 차이가 많은데 제가 형제 자매들을 대하면서 시험이 들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은 왜 시험에 드느냐? 기쁜 일이나 즐거운 일이 없어서 시험에 드는 게 아니라 어떤 어려운 문제를 바라보게 됨으로 말미암아 시험에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 사단이 역사할 때 꼭 하나님도 같이 역사하시고 반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사단도 같이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는 항상 어려운 문제도 있고 기쁘고 복된 일도 늘 같이 있는 거지요.
우리가 오늘 읽은 이 나아만 장군의 아내에게 수종 드는 계집종, 이 계집종이 불평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불평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가 왜 전쟁에 져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내가 왜 포로로 잡혀 와야 합니까? 하나님, 나는 언제까지 포로 생활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내가 살아야 합니까?” 정말 이 계집종이 불평하려면 불평거리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아버지가 보고 싶고 가족들이 보고 싶은데 언제 내가 가족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계집종이 그런 불평과 원망 속에 산다면 한평생 고달플 텐데 그 어려움 속에 포로로 잡혀 종살이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까 너무 놀라운 사실들이 일어나는 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자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걸 볼 때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걸 참 많이 겪거든요. 내가 어떤 사람하고 마주 앉아있는데 그 사람은 정말 죄에 빠졌고 내가 구원의 길을 알고. 너무 자랑스럽고 정말 그 사람이 어려움 속에 빠져있는데 저건 믿음이 들어가면 될 걸 생각하니까 너무 자랑스러운 거예요.
제가 지난 월요일 날 전도사님 한분이 자기 교회 성도가 논산 백제 병원에 암으로 이틀밖에 못 산다고 그분이 박 목사님 와서 기도한번 해주면 좋겠다고 그런 부탁을 저한테 했습니다. 월요일은 수양회 시작되는 날이라 바빠서 못 간다고 한 마디로 거절을 했는데 내가 그 암에 걸려서 죽어가는 분이 이틀밖에 못산다고 하는데 그 생각을 하다가 ‘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아침에 일찍 출발해서 논산으로 갔어요. 백제 병원에 최근에 구원을 받은 형제인데 암에 걸려서 이틀밖에 못산다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그분 앞에 딱 섰는데 내 마음에 ‘그래, 나는 내가 여기 선 게 아니야. 난 예수님을 담고 있는 그릇이야. 예수님이 여기 서셨는데 예수님이 이 구원받은 형제가 암으로 죽는 걸 보고 그냥 지나가시겠나? 아니야.’ 살리시겠다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 형제에게 제가 성경을 펴놓고 죽 교제를 했어요. 그리고 내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형제의 머리에 안수 기도를 했습니다. 형제가 너무 기뻐하더라고요. 아내도 울고.
그래서 떠나왔는데 잠시 뒤에 전도사님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전혀 물도 먹지 못하고 아무 것도 못 먹는 분이었는데 기도하고 믿음이 일어나가지고 물도 먹고 기뻐하면서 일어나 움직이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형제님 마음속에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믿는 마음이 제 마음에 일어났습니다.
제가 종종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인데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좀 못생기면 어떻습니까? 그릇이 좀 추하면 어떻습니까? 그릇이 좀 값나가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안에 담긴 그 보화가 귀중한 거지요.
외형적으로 이 계집종은 종이었지요. 원수의 나라의 종인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담고 있다는 거지요. 자기 자신의 형편이나 자기 자신의 껍데기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정말 이 계집종은 실망하고 절망할 일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를 바라본 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실망할 건 내가 아니라 너무 자랑스럽지, 그 나아만 장군에 비해 자기는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있고 진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는 종종 유명한 분들, 훌륭한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뭘 느끼느냐 하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험난한 길을 겪었는데 그 어려움을 겪을 때 세상 사람들은 자기뿐인데 나는 지금까지 그 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한번도 예외 없이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면서 그 모든 걸 다 해결해준 간증이 있거든요. 교회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건 내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야. 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그 소망이 일어나니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전해주고 싶은 거예요.
이 계집종이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얼마나 소망이 넘치는지 담대하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참 그 입에서 절망아 나와야 하고, 그 입에서 불평이 나와야 하고, 그 입에서 원망이 나와야 하고 그래야 할 사람인데 믿음을 이야기하고 소망을 이야기하더라는 거지요.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나아만, 장군 집에 수종 드는 계집종처럼 여러분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실망하고 절망할 일들이 얼마나 많을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 많고 정말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면 왜 내게 이런 일을 행하십니까? 그런 불평이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 주님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담고 있는 그릇이란 것이죠. 여러분 죄사함 받고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님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면 질그릇 이 자체는 가치 없고 천하고 쓸모없는 거지만 그 안에 있는 보화가 일을 할 때 무슨 일인들 문제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이 계집종을 생각하다가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서 나아서 돌아올 때를 생각해 봤어요. 그 계집종이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야 너 때문에 내가 문둥병이 나았다. 너 때문에 내가 살게 되었다. 너 이제부터 내 딸이다.” 혼자 상상하기를 나아만 장군이 양딸로 삼아가지고 멋진 남자 얻어가지고 사위삼고 결혼시켜서 둘이 살다가 사마리아 친정 집에 친정아버지 보러 가는 그런 것까지 상상해보면, 물론 성경에는 없지만, 절망스럽던 그 자리가 정말 얼마나 행복 된 걸로 바뀌었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달려갈 수 있는 그런 길을 능히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여러분의 현재 형편이 이 계집종보다 더 나쁩니까? 아닐 겁니다. 여러분 속에 주님이 계시는데 이보다 더 나쁘면 어떻습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저는 울릉공 시장을 마나 복음을 전하면서 한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줄 게 아무 것도 없지만 난 그분에게 믿음도 전해주고 소망도 전해주고 구원의 복음도 전하고 내게 있는 주님이 너무 놀랍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그 주님으로 기뻐하고 그 주님을 증거하고 그 주님을 말하는 그걸로 내가 기쁨을 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형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는지 모르지만 그 주님으로 기뻐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이 주님을 담았으니 여러분 안에 담긴 그 예수님은 무슨 일이든지 해결할 주님이시니까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으로 기쁨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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