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때 모두 말씀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 아닌 것들이 사단에 의해서 우리 마음에 굉장히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거지요. 내가 가진 관념이나 내가 가진 지식이나 내가 가진 방법들 이런 것들이 동원되어 내 삶을 이끌고 생각의 세계를 끌어가는데 거기 보면 정말 허무맹랑한 것들이 참 많은데도 우리는 말씀보다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그런 것들을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다른 생각 속에 젖어있을 때가 참 많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말하자면, 저는 어릴 때 굉장히 가난하고 어렵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 안에 사역을 하면서도 ‘난 늘 가난하다.’ 하는 그런 생각을 저는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읽을 때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 말을 여러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생각을 했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 이야기를 ‘그렇구나.’ 생각했지, ‘내가 모든 걸 가졌다. 내가 부요하다. 내가 모든 걸 가져서 정말 풍성하다.’ 그렇게 말씀을 따라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말씀에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하는데도 내 마음은 여전히 ‘성경은 그렇지만 나는 가난해. 어려워.’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내가 어느 날 주님 안에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는가? 내가 돈이 없어서 내가 어떤 집회를 못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돈 때문에 정말 하나님의 일을 못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때 깜짝 놀란 건 난 가난해서 뭘 마음대로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때 이미 나를 그 물질에서 자유케 했는데 나는 구원을 받을 때 예수님이 죄에서만 자유를 주신 줄 알았어요. 내 마음이 믿음으로 이젠 십자가의 피로 내 죄가 사해진 걸 믿고 죄에서는 자유를 얻었지만 난 율법에 매이고 내 연약한 문제에 매이고 내 이런저런 환경에 매이고 늘 내가 매인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이 말씀 얼마나 따뜻한 말씀입니까? 그냥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그러니까 여기서 “자유케 하려고” 하는 이 말 속에서 예수님의 의지가 보이는 거지요. 어떤 의지입니까? 우리가 정말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하려고 하시는 주님의 의지가 보인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생각한 것이 만일에 주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무슨 일을 했다면 우린 자유롭다. 주님은 자유케 했네. 죄에서나 율법에서나 내 행위에서나 돈에서나 내 연약한데서 자유케 하려고 했으니 그게 내 문제가 아니고 이미 자유케 되었는데 내가 이 말씀을 모르고 내 문제 속에 빠져있을 때가 참 많은 거예요.
제가 오늘 저녁에 저희들 교회 황효정 장로님이 운화 한의원에 새로 옮겨서 크게 확장해서 예배를 드리고 거기서 삼계탕을 먹고 왔습니다. 배가 참 불렀습니다. 그러다 내가 문득 생각해 봤습니다. 구원을 받고 내가 몸이 너무 말라가지고 내가 거울을 봐도 너무 핼쑥해서 보기 싫을 때가 있거든요. 못 먹어서 굶어서 그런 것처럼. 내가 그때 기억에 “하나님 내가 전도하는 사람인데 나는 뚫어진 옷 입고 전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옷 안 바라는데 구멍 나지 않은 옷만 주세요. 나는 좋은 구두 안 신어도 좋은데 구멍 난 구두만 안 신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내가 빼빼 마르면 남이 굶어서 그렇다고 하니까 보기에 싫지 않도록만 해 주십시오.” 그때부터 내가 살이 붙기 시작한 거예요. 배가 나오는데 기도의 응답이기 때문에 배가 나와도 할말이 없는 거예요.
내가 거스려지고 내가 어려워지는 그 모든데서 주님 정말 나를 자유케 하셨구나. 성경에서 이건 내가 주님 앞에서 주님이 죄에서만 나를 자유케한 게 아니고 어떤 행위에서나 돈에서나 그런데서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모든데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를 누리면 되는 거다. 공식이 아주 간단한 거예요.
제가 아무데도 매이지 아니하고 예수께 매이며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 보면 별것에 다 매이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내가 매인 데가 없이 주님 앞에 ‘아 정말 주님이 나를 자유케 하셨구나.’ 어떤 문제가 나를 묶고 사로잡으려고 할 때 ‘아니야. 주님이 나를 자유케 하셨어.’ 내가 몸이 약하고 병이 들어서 거기 매여있을 때 ‘주님이 나를 자유케 하셨어.’
얼마 전에 제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지 43년이 되는데 거의 한주도 쉬지 않고 거의 대부분 일년 내내 집회를 하는데 그냥 내가 43년 동안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고 생각을 하다가 내가 한번이라도 몸이 아파서 집회를 못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한번이라도 병들어 집회를 거르쳐본 적이 있는가? 한번도 없는 거예요. 43년 동안 단 한번도 집회를 거르쳐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야 정말 이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나를 연약한데서도 자유케 했고 내 연약함, 내 부족함, 내 못난데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니 우리가 어디에도 매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오늘 김성훈 목사님이 하와이를 다녀왔습니다. 2006년 글로벌 캠프를 위해서 다녀왔는데 한국에서 하와이 가는 건 비행노선도 많지 않고 항공료도 비싸고 원래 하와이 미군 부대를 빌려서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고 호텔의 컨벤션 센터는 참 비싸고 그런데 김성훈 목사님이 하와이 할 뜻을 정하고 다 가져왔어요. 내 마음에 너무 기뻤어요. 김성훈 목사님이 하나님이 하와이에서 우리가 글로벌 캠프하는 것 원하신다. 그러면 지금 비행기 좌석을 확보하는 것이나 요금 문제나 호텔 문제나 음식 문제나 모든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하시겠다. 우리가 거기 얽매여서 염려하거나 고통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부분에도 자유를 주셨으니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주님은 그냥 자유를 가지고 놀라고 주신 게 아니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주의 은혜로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혹시 주님이 여러분을 자유케 하셨는데도 얽매인 사람이 있습니까? 묶여진 사람이 있습니까? ‘아 내가 속았네. 이미 나는 주님이 자유케 하셨는데 그럼 난 자유로운데 내가 왜 여기 묶여있지? 내가 속았구나. 난 자유롭다.’ 그런 믿음이 우리 속에 역사해서 우리가 참된 자유를 누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실 때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옷을 주실 때 입기를 원했고, 신발을 주실 때 신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주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면서 방종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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