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나이>
게재일 : 2005년 04월 08일 중앙일보[30면]
기고자 : 제원호 서울대교수·물리학
우주의 나이는 과연 얼마일까. 이 질문은 그동안 많은 연구와 논란이 거듭되어 온 중요한 문제다. 대략 150억 년 정도의 오랜 세월일까 아니면 단지 6일의 짧은 나날일까.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별개로 보이는 것일까.
시간의 개념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을 다시 생각해보자. 이 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관찰자의 시계는 정지해 있는 관찰자의 시계보다 상대적으로 천천히 간다. 따라서 어떤 두 사건 사이에 지나간 시간은 움직이는 시계보다 정지해 있는 시계로 쟀을 때에 더 길게 측정된다. 예컨대 정지해 있는 기차 속의 어떤 사람이 뒤에 있는 집을 향해 매시간 빛을 쏘아 보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집에서는 정확히 한 시간에 한 번씩 이 신호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제 이 기차가 매우 빠르게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고 또 기차 속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매 시간 집을 향해 계속 빛을 보낸다고 하자. 이 경우 집에서 빛을 받아보는 시간 간격은 한 시간보다 길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한 시간 전에 빛을 보내고 지금 다시 보내는 사이에 기차는 그만큼 집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게 되어, 빛이 집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정지해 있는 집에서 느끼는 시간은 달리는 기차 속에서 느끼는 시간보다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주 대폭발 직후의 우주 온도는 현재보다 약 1조 배 정도 높았는데, 이는 그 당시 우주의 팽창 속도가 거의 빛의 속력만큼 빨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주 생성 초기 당시의 시간과 상대적으로 팽창이 거의 정지된 오늘날의 시간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남아 있다. 우주공간에는 어디에나 `우주 배경 복사파`라는 미세한 빛 신호가 발견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 생성 때의 과거와 오늘날의 현재를 연결해 주는 `우주 시계`인 것이다.
그런데 초기 우주의 온도가 지금보다 1조 배 정도 높았다는 것은 우주시계의 주파수가 지금보다 1조 배 정도 높았음을 의미한다. 즉 태초에 우주시계가 한번 똑딱거리는 주기는 현재보다 1조 배 정도 짧았던 것이다. 따라서 우주 생성 직후의 1초는 오늘날 지구상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1조 초 즉, 약 3만 년 정도가 된다. 이 결과를 사용하면 태초의 첫날 하루 24시간은 오늘날 시간으로 약 80억 년이 된다. 그런데 우주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그 온도는 급격히 낮아지게 되어 우주의 팽창 속도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런 냉각효과를 고려하면 둘째 날의 하루 24시간은 약 40억 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날의 하루는 약 20억 년이 걸린 셈이고, 넷째 날 하루는 10억 년, 다섯째 날은 5억 년, 여섯째 날은 대략 2.5억 년에 해당한다. 이것을 현재의 관점에서 역산해 보면 다섯째 날은 지금부터 7억5000만 년 전 시작해 2억5000만 년 전에 끝난 것이 된다. 이 5억 년 동안의 기간은 지질생물학의 `캄브리아기`를 포함하는데 이때 수많은 다세포 동물이 지구상에 출현하였다. 그리고 여섯째 날은 2억5000만 년 전부터 대략 6000년 전까지로 볼 수 있다. 이 기간에 육상 동물과 포유류 동물이 많이 나타나고 물론 인간도 이때 출현하게 된다.
요컨대 우주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150억 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갖게 된다. 그러나 창조주의 관점에서 보면 단지 6일간의 일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간단히 생각해 본 내용들로 또 다른 의문들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無)에서 우주가 시작되었고 그 안에 나타난 그림자와 흔적을 통해 창조주의 큰 지혜를 부분적이나마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그럴수록 인간은 각자의 제한된 범위를 벗어나게 되고 서로 다른 그림자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큰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