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62-63절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리라고. 그런데 제자들은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막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받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이 성경을 읽을 때 잘 이해가 안가는 것이 아무리 제자들이 그 말을 안 받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걸 보면 ‘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뒤에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다고 그랬다. 그러니까 진짜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네. 그럼 사흘 뒤에 부활하실는지 모르겠다.’ 이 제자들 마음에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그런데 제자들은 전혀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오늘 저녁에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리라. 베드로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다 이루어졌는데도 그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거나 주님 말씀을 마음에 받아두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셔도 사람들이 허탄한 듯이 보여 믿지 아니하고 ‘아이구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해?’ 도마는 내가 직접 예수님의 못자국을 보고 창자국을 보기 전에는 안 믿겠다고. 하나같이 그들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다는 그 사실을 마음에 기억지도 않고 마음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아 마태복음을 읽다가 깜짝 놀란 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셔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받지 않았는데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더라는 거지요. 예수님이 죽으신 뒤에 그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실제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것을 이야기했을 때 그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들은 그 말씀을 기억지 않았지만 성경에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기억했더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의 살을 삶면서 꼭 그 요셉 시대에 애굽에 7년 풍년이 오고 난 뒤에 7년 흉년이 왔는데 7년 풍년이 왔을 때 양식을 많이 쌓아두면 7년 뒤에 흉년이 와도 흉년이 안되니까 풍년이 흉년을 이기는 거예요. 반대로 7년 풍년이 온 뒤에 흉년이 왔을 때 양식을 안 쌓아두면 흉년이 풍년을 이겨버리는 거예요. 풍년이 왔던 흔적조차도 없어지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의 세계 안에 하나님이 하신 그 귀한 일들이 가득 차 있으면 왠만히 어려워도 어렵지 않지요.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겨도 제가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한 달 동안 어려워도 하나도 안 어렵더라고요. 오히려 기쁘고… 그러니까 우리 마음 안에 사랑하는 주님께서 주신 그 모든 축복들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을 때 사단이 어려움을 주고 시험을 줘도 전혀 어려움이 안 되는 거예요. 반대로 사단이 주는 어려움은 큰데 내 마음에 주님의 축복들이 기억이 되지 않을 때 내 마음 안에서 어려움이 축복을 이겨버린다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 사단은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가지 형편을 들어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신 그 축복의 기억들을 잊어버리도록 하려고 하고 그러면 여러분 마음속에 축복이 다 지워져 버리는 거예요. 약속들이 지워져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거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거나 다윗에게 약속하신거나 요셉에게 약속하신 거나 다 약속을 했는데,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요셉이 치리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사단은 요셉을 종으로 팔리게 하고 그 다음에 감옥에 가게 하고 그래서 그런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요셉의 마음속에 있는, ‘내가 치리자가 되겠다.’는 그 마음을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도 똑같아요. 하나님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고 말씀으로 축복을 주셨고 그런데 사단은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축복주신 걸 다 지워버리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은 다 지워버리고 반대로 우리 마음에다 뭘 세웠느냐 하면 안될 것 같고 두려움이나 근심, 염려, 시험거리를 자꾸 떠오르게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저는 구원을 받고 난 뒤에 하나님이 내게 하신 간증들을 많이 했어요. 뭐 내가 군대에서 찹쌀떡을 먹은 간증이나 이런 간증은 형제자매들이 날 보고 “목사님 이제 스무 번만 더 들으면 백번입니다.” “야 어떠냐?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에 보니까 구원 받은 간증을 여러 번 하더라.” 사도행전 안에서만. 백번 천번 해도 그때 내가 할 때 마다 그때 역사했던 주님이 다시 내 마음에 떠오르고 새롭게 되고 감사가 되고… 그래서 여러분 점잔 빼려고 간증 한번만 하고 잊어버리고 지워져 버리면 안 되는 거지요.
시험 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딱 쪼개보면 시험 든 사람 마음에는 하나님이 축복하셨던 그 기억들은 다 사라져 버렸고 사단이 준 문제거리만 마음에 있으면 시험 들어요. 사단이 우리에게 준 어려움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놓고 둘이 싸움 붙이면 하나님의 축복이 사단이 준 어려움을 두말 할 것 없이 이겨버려요. 왜? 하나님이 크시니까. 그런데 여러분 마음속에 사단이 준 어려움만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잊어버리면 그 사단의 시험에 져서 어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너무너무 재미있는 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다는 그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자들은 하나도 안 믿었어요. 왜? 사단이 제자들 마음에 주님의 약속들을 다 지워버린 거예요. 그런데 오히려 대제사장은 그걸 믿었더라고요.. 그걸 기억했더라고요.. 바리새인들은 그 사실을 기억했더라고요.. 너무 놀라운 사실이지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사단은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수없이 많은 기억들을 계속 지워요. 저도 얼마 지나면 그 일이 다 지워지고 ‘아이구 왜 이렇게 희미해졌노?’ 그럴 때가 많아요. 우리가 대덕 수양관 지을 때 물이 안 나올 때 물이 나온 거라든지 그런 건 너무 감격스러운 거예요. IYF 호주캠프를 한 거라든지, 울릉공 시하고 교류협력 관계를 갖는 거라든지, 우리가 지금까지 되어진 일들을 보면 감사하려고 하면 진짜 사도행전 보다 훨씬 두꺼운 책이 나오겠더라고요. 대덕 수양관 짓는 것만 해도 책 한 권 가지고 부족할 것 같애요.
하나님께서 우리들 속에 이런 귀한 일들을 하셨는데 사단은 우리 마음에서 그걸 자꾸 지워버려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리석게 지워지고 근심거리만 생각할 때 문제가 되지,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나하고 함께 계시는 주님이 있으면 무슨 문제가 됩니까?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했고 요셉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런데서 감사할 수가 있었거든요.
제사장들은 기억하는데 제자들은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들을 자주 이야기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새롭게 해서 나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복 가운데 설 때 왠만한 어려움이 와도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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