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영상교제 말씀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위치까지


창세기 4장 13절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창세기 4장을 보면 똑같은 가인인데 이 가인이 처음에 하나님 앞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린 뒤에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이 분하여 하며 얼굴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그 뒤에 그냥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하며 얼굴의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 그냥 그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가인의 마음을 바꾸어 가는데 어디까지 바꾸어 가느냐 하면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는 곳까지 바꾸어 가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가인처럼 자기를 믿고 교만하고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불만하고 불평하고 하는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 쪽으로 인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구원을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는 거지요.

제가 제 자신을 봐도 제가 가인 같은 사람인데 정말 저는 처음에 가인이 막 안색이 변하고 분하여 하는 그때처럼 교만하고 내가 잘난 줄 알고 똑똑한 줄 알고 그런 생각 속에 젖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내가 정말 형편없고 내가 더러운 죄인이고 악한 인간인 걸 깨닫게 되었는데 실제로 그걸 깨닫게 하신 건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가인을 이렇게 인도하는 그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인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너무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탕자도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날 “정말 내 죄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했을 때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를 믿는 그 마음이 무너져내리면서 아버지의 은혜를 입고 베드로도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베드로가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내가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큰소리 쳤는데 어느날 정말 자기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자기가 무너지면서 그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베드로 속에 솟아나는 사실들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거지요.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뉘우치고 회개하고 그렇게 해서 믿음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세계 속으로 계속 이끌고 있는 그 부분들이 너무 감사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열심히 전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읽어서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해서 내가 믿음이 잘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기대와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인을 어느 위치로 이끌어가느냐 하면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내 죄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는 그 위치로 하나님은 가인을 끌어가고 계신 거예요.

그 전까지 가인은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그랬었는데 이제 하나님이 그를 끌어가니까 그가 자기 아우 아벨을 죽였지요. 하나님이 가인에게 물었습니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때도 큰소리 쳤어요.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이제 가인이 자기가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자기의 연약함 자체를 깨달으면서 자기를 신뢰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사실이라는 것을 가인이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왔습니다. “내 죄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 위치로 들어간 겁니다.

저는 여러분 사람들에게 “마음을 꺾어야 합니다. 마음을 낮추세요. 자기를 부인하세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들이 막 부인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꺾으려고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나중에 깨달은 것은 부인하는 것도 꺾는 것도 나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내가 복음을 전해서 이 복음을 들으면 구원을 받을 것 같고 내가 이러면 역사할 것 같고 막 그런 마음을 가졌는데 이제 내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게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끌어주지 아니하시면, 주님이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주님이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 마음에 깨닫게 되더라는 거지요.

그래요. 하나님이 자기 만을 신뢰하고 있는 베드로로 하여금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한 뒤에 자기를 신뢰하는 그 마음이 다 무너져버리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끈 그게 너무 신기했고 탕자가 자기가 자기만을 믿고 큰소리를 쳤는데 그가 실패를 해서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자기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자기를 신뢰한 그 신뢰가 무너지면서 아버지를 믿는 믿음 쪽으로 탕자가 끌려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구원을 받고 예수 안에서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나는 내가 열심히 기도했고 성경 읽고 그런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끌어와 주셨구나. 내가 옛날에 구원 받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 봤어요. 내가 잘난 줄 알고 내가 똑똑한 줄 알고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인줄 알고 나를 믿고 살아왔는데 하나님께서 내 속에 일을 하시니까 내가 얼마나 못난 인간인지, 내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내가 얼마나 추한 인간인지 깨달으면서 나를 불신하게 하나님이 만드시더라는 거지요. 그 전에 내가 나를 믿고 있을 때 나를 믿기 때문에 내 마음하고 틀린 모든 걸 내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나를 불신한 것이 내 마음에 딱 들어오면서 그때부터는 내 마음하고 전혀 다른 주의 말씀이 내 마음에 받아들여지면서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도 하고 하지만 ‘내가 전도했기 때문에,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내가 뭘 했기 때문에 잘 되리라.’ 정말 어리석은 소리지요.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복음을 전하지만 가인이 자기만을 믿는 그 가인의 위치에서 “내 죄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는 그 쪽으로 하나님이 계속 이끄는 그 하나님을 힘입어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가 있는 거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고 그렇게 해서 되어지는 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가인을 바꾸셨듯이, 나를 바꾸셨듯이, 탕자나 베드로를 바꾸셨듯이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은 바꾸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전도하고 수고하고 애쓰는 거기에 기대와 소망을 두지 말고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역사하시고 일하시고 바꿀 그 하나님에게 기대와 소망을 두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영광을 받을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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