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우리 앞에 복음의 문을 힘있게 여시고, 세계 곳곳에서 복음의 말씀을 흥왕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구원의 복음과 은혜의 간증을 전하는 기쁜소식`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그 동안 주님께서 종들을 통해 능력있고 신령한 말씀을 `기쁜소식`지에 싣게 하셨고, 전도자 및 형제 자매들의 은혜스러운 간증을 풍성하게 싣게 하셨습니다.
`기쁜소식`지에 실리는 간증은 주로 구원의 역사를 동반하거나, 영혼을 인도하는 일이나 봉사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거나, 아니면 사고나 죽음 등 극적인 내용이 담겨진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 시간에 간증을 들을 때, 소위 말하는 `콩나물 다듬다가 경험한 주님` 등 아주 작은 간증을 은혜스럽게 표현하고 은혜스럽게 듣기도 합니다. 그런 일상 생활 속에서 주님을 경험하는 작은 간증이 모아진다면, 푸근하게 읽을 수 있는, 나름대로 은혜스러운 코너가 될 줄로 압니다.
원래 `영혼(soul)`이란 `호흡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호흡을 합니다. 마치 산소를 들이마시고 탄산까스를 내보내는 것처럼.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들이마시고 `우리 자신`을 내보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능력과 신선한 것들을 들이마셔야 합니다. 한번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셔야 합니다. 또한, 들이마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쉬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나오는 악을, 해로운 독을 뱉어내야 합니다. 이와같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일을 호흡이라 하며, 우리 영혼이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도 영적 호흡은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신 작은 마음을 품게 된 일, 기도의 응답을 받은 일, 말씀을 주셔서 묵상한 일, 주님으로 인해 마음이 어려웠던 일이나 기뻤던 일, 자식을 대하면서 주의 마음을 발견한 일, 영혼들을 인도하면서 내 모습을 발견한 일, 주님 앞에 숨겨진 나의 악을 발견한 일, 주님 앞에 부끄러웠던 일, 또는 주님 앞에 감사했던 일, 주님 앞에 품은 마음의 소원이나 기도 제목, 주님이 내가 원치 않는 방법으로 나를 간섭하신 일, 주님이 내 생각을 깨뜨리시고 마음을 바꾸어 주신 일, 주님께 드리는 감사나 영광이나 사랑의 고백 등의 내용으로, 각 교회에서 형제 자매들이 모임 시간에 한 간증, 또는 개인이 일기나 수기(신변잡기) 형식으로 적은 짤막한 글 중에서 은혜스러운 내용을 보내주신다면, 기쁜소식지의 편집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래 예문을 참고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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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1)돼지죽 같은 저 음식과
오전 말씀을 듣고 나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 같이 갔던 자매와 마주앉아 밥을 먹는데, 귀에 거슬리는 좋지 않은 소리가 났다. 옆에서 식사하시던 나이든 분이 내는 소리였다. 그분은 밥과 반찬을 담은 식판을 수저로 박박 긁더니, 국에다가 밥과 반찬 세 가지를 모두 모았다. 밥을 국에 만 것도 아니었고, 비빈 것도 아니었다. 돼지죽처럼 해 놓고 소리를 내며 마구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분을 쳐다볼 줄 알았는데, 나만 그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서도 나의 참 모습을 보게 하시고, 나를 꺾어 주셨다.
`그래, 밥과 국과 세 가지 반찬이 제 자리에 따로따로 놓여, 그것을 하나하나 우아하고 교양있게 집어 먹어도, 뱃속에 들어가면 다 섞일 거야. 그러면 돼지죽 같은 바로 저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데, 더하면 더했지 저보다 낫지는 않을 텐데....`
그런 마음이 들면서 내 모습에 대해 생각되었다.
`내 모습도 섞여져 있는 저 돼지죽 같은 음식과 다를 바 없구나!`
나는 삼십 년 동안,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쉬운 것 없이 살아왔다. 결혼식도 호화스럽게 치르고, 유럽으로 신혼 여행을 다녀오는 등 부족함이 없는 생활에 젖어 지냈다. 그런 나로서는, 구원을 받았어도 교회 안에서 마음을 꺾기가 무척 힘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 동안 교회 안에서 지내온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
말씀의 빛이 비춰지기 전까지는 목적 없이 방황하며 혼돈 속에서 삶을 살 수밖에 없듯이, 나는 육신이라는 껍질 속에 갇혀서 곤고함 가운데 헤맸다. 하나님은 수양회를 통해서 그런 나에게 말씀의 빛을 비춰 주셨다.(김은정/ 강남교회)
(예문2)깜박이등을 깨고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오면서, 그레이스 승합차 옆구리를 긁었다. 주차장 입구 한쪽에 할머니들 두 분이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비켜달라고 크락션을 몇 번 눌렀어도 할머니들은 비켜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들어가기로 했다. 할머니들은 피해 좁은 공간으로 슬슬 들어가다가 `스톱!` 하는 소리를 들었다. 벌써 옆구리가 닿아 있었다. 차를 빼서 보니, 많이 긁혀 있었다. 순간, 나 자신을 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고, 그 할머니들이! 좀 비켜달라면 비켜 주시지, 거기 그냥 버티는 통에 사고났구나!` 하고 속으로 할머니들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옆에 탄 형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살살 들어갔으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엊그제는 차를 빼주다가 방향지시등을 깼다. 갈아끼우는데 만오천 원 들었다. 그런데, 더 큰 사고가 날뻔했다. 차를 빼려 후진하다가 후미가 전봇대를 들이받을 뻔했다. 그게 우그러지면 큰 돈이 들겠지만, 다행히 은혜를 입어 그 사고는 나지 않았다. 아무튼, 깨어진 방향지시등을 보면서, 나 자신을 책하는 것이 아니라 이 건물, 이 주차장, 아래층의 환경을 탓하였다. 안쪽에 있는 차를 빼려면 바깥의 차 서너 대를 빼내야 하고, 밖은 중고가구점, 간판집에서 너무 어수선하게 물건을 내 놓아서 공간이 좁았다. `아이고, 이 건물은 너무 복잡해! 차도 많고, 물건이 인도를 점령해 좁고, 게다가 전봇대와 가로수까지 막고 있어서...`
나를 변명하고 변호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다. 나 자신의 부족함과 악을 인정하는 마음이 왜 이리 없는지! 매사에 다 변명해 놓고, 맨 마지막에 `내가 부족하고 악하지요!` 하는 식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과 얼마나 먼 마음인가? 하나님과 얼마나 먼 마음인가? 그러면서도 괴로워하지 않고,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6월 14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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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사 편집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