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영상교제 말씀
자기 생각을 믿은 사람들


창세기 50장 15절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창세기는 제가 방송설교도 했고 또 선교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고 그래서 거의 제가 창세기 50장을 다 외우다시피 하는데 지금도 LA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송이 나가는데 오늘 50장 녹화를 하면서 이야기했던 생각이 나서 잠깐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창세기 50장은 마지막 장인데 50장 앞부분이 야곱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15절부터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요셉이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해서 요셉에게 나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할 때 요셉이 듣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창세기 50장이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지는데 앞에 야곱의 죽음, 야곱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은 그 당시에 자기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극치의 영광과 부귀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는 애굽에 묻히길 원치 않고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죽기 전에 요셉을 불러가지고 “맹세해라. 나를 이 애굽에 묻지 않고 가나안 땅에 가서 장례를 하겠다고 맹세해라.” 그래서 요셉이 맹세를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야곱은 현재있는 애굽, 애굽에는 요셉이 정말 애굽에서 많은 권한을 쥐고 있고 부귀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 봐서는 이 야곱은 애굽에 묻히면 훨씬 더 영광스럽지요. 그런데 야곱은 뭘 봤느냐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400년이 지난 뒤에 이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야곱은 400년 이후에 생길 일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걸 보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기는 반드시 이 애굽에 묻히게 말고 가나안 땅에 묻히게 해 달라고 유언을 했고 그 유언대로 요셉이 아비 야곱의 시체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가서 막벨라 굴에 장사한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50장 1절에서 14절까지 이야기는 야곱이 자기의 어떤 판단이나 자기 경험을 따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5절부터 요셉의 형들이 자기 아버지가 죽은 것을 보고 ‘요셉이 혹시 우리가 그에게 행한 악을 다 갚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애굽에서 형들이 왔을 때 분명하게 이야길 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왜? “하나님이 우리 자손들을 이 땅에 남겨두시려고 나를 먼저 이곳에 보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요셉은 분명하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다시 그들을 보복하지 않겠다고 하는 분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 형들은 요셉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요셉의 말보다 자기 생각을 더 중요히 여긴 거예요. 요셉은 분명히 자기들을 보복하지 않고 용서하고 이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형들은 그 말을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자기 생각을 가지고 생각해 보니까 ‘요셉이 혹시 우리가 행한 악을 갚을는지 몰라.’ 그 생각이 들어온 거예요. 그 생각이 들어오니까 그 생각을 따라서 ‘그럼 어떡하지? 이제 우리가 요셉에게 이야기하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용서해주라고 했다고 그렇게 말을 전하자.’

요셉은 아버지를 잘 알고 있는데 아버지가 죽기 전에 요셉을 찾아왔잖아요. 아버진 그 아들을 용서하란 이야기를 안했어요. 왜 안했느냐 하면 아버지는 요셉을 알고 있었어요. 요셉이 보복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고 아버지는 요셉의 마음을 보면서 요셉의 마음 어디에도 보복할만한 의사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해야할 필요가 없었고 요셉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요. 형들이 말을 만든 것도 알아요. 다만 요셉이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울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간곡하게 한 요셉의 말을 거절하고 자기 생각을 믿는 그 형들이 너무 야속했다는 거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간곡하게 하시는 그 말씀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내 생각을 따라서, 내 주관을 따라서, 내가 볼 때, 내 생각을 따라서... 분명히 요셉은 형들에게 그냥 내가 형님들의 어떤 죄를 용서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차근차근히 이야길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 자손들을 이땅에 두기 위해서는 이 흉년을 지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애굽의 총리로 삼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애굽으로 보내기 위해서 형들의 마음을 이용한 거지, 다른 게 아니고 이건 하나님이 한 것이기 때문에 요셉은 형들에게 보복할 의사가 없음을, 그리고 애굽의 부귀영화를 같이 누리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간절히 전했는데도 형들은 자기 생각을 믿었지, 요셉의 말을 믿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 가운데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사람들은 자기 판단, 자기 생각을 믿어요.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정말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판단,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뭐라고 하느냐? 거기에 따라 일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거죠.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이 물로 심판한다고 할 때 분명히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자기 생각에, 마귀가 넣어준 생각에 ‘뭘 비가 와? 좀 오다 말겠지. 홍수는 없을 거야.’ 그건 막연한 생각입니다. 아무 근거가 없는, 아무 이유가 없는 그냥 생각대로, 비가 안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냥 생각 하나가 들어오니까 그 생각에 이끌려버리더라는 거지요.

창세기 50장에서 14절까지는 야곱의 장례인데 야곱은 앞길을 못봤지만 자기 보는 눈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서 자기가 가나안 땅으로 갈 걸 아니까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는, 믿는 믿음이 시작된 이야기고 15절부터는 요셉의 말을 듣고도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흘러가는 형들의 마음을 그린 그림입니다. 우리 동역자들 가운데도 이 두 사람의 마음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따라 자기 마음을 따라 자기 헛된 상상을 믿고 그쪽으로 흘러가는 사람과 반대로 내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의 차이가 있는 거지요.

제가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의사가 피를 뽑아서 현미경에 대봤습니다. 내 눈으로 볼때는 말라리아 균이 안보였는데 현미경으로 보니까 말라리아 균이 보였습니다. 내 눈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 눈이 옳다고 주장해야 하는 게 아니라 현미경이 옳기 때문에 말라리아 약을 먹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내 눈이 약하기 때문에 보는 것처럼 우리는 죄를 볼만한 눈이 없고 다음 세계를 볼만한 눈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믿지 말고 주의 눈을 믿어야 하고 주님 보는 걸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우리 눈에 죄가 사해졌는지 아닌지 그걸 확실하게 확인해서 믿는게 아니고 우리 눈에 안보이니까 망원경으로 보고 현미경으로 보듯이 주님의 눈으로 본 그것이 옳은 걸로 주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때 주님이 기쁨이 되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동역자 여러분 우린 정말 우리의 생각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창세기를 마무리하는 50장에서 둘로 나누어서 믿는 믿음의 삶과 자기 생각을 따라 흘러간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요셉의 형들처럼 어리석게 생각을 믿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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