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14절 - 15절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사실 우리가 지식하고 마음하고는 굉장히 차이가 있지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지식이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선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하와는 ‘아 죽겠구나.’ 그런데 뱀이 말하기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지식이란 것은 죽겠다는 말도 죽지 않는다는 말도 같이 받아들여서 ‘아 그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지식은 그게 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는 그게 절대로 그렇지를 않습니다. 내가 마음에서 선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생각을 한다면 따먹으면 죽지 아니한다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고 반대로 내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내가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받아들이면 죽는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지식으로 신앙의 세계를 알기는 너무너무 쉬워요. 그것이 맞지 않는 것도 함께 복잡해도 받아들여 놓으면 되니까. 머리는 맞지 않는 다른 두 가지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우리 마음은 절대로 같지 아니한 두 가지 이론을 마음에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 안에 어떤 주관이 서 있는 사람들은 내 주관하고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내 머리로는 받는 것이 가능하지만 내 주관을 비우지 아니하면 마음으로 내 주관하고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나 섭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지식으로 아는데는 내 마음하고 달라도 받아들일 수가 있으니까 ‘아! A라는 학자는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랬구나!’ ‘B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론을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게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삶에 있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귀한 은혜와 그 능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내 마음을 비우지 아니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려면 그건 머리에 들어가지, 절대 마음에는 임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가룟 유다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걸 보고 ‘참 놀랍다!’ 놀랍게 그는 느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정말 38년 된 병자를 일으켰다! 문둥병자를 고치셨다! 간음한 여자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 진짜 살리시네! 놀랍네!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이것 진짜 대단한 분이야! 참 놀라운 분이야! 이제 예수님에게로부터 오는 정말 놀랍고 정말 두려울 만큼 큰 역사들을 유다는 봤습니다. 나중에는 베다니에 갔을 때 무덤에 썩어 냄새 나는 나사로를 보고 부르면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까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세상에 이런 놀라운 예수님의 일을 보면서 여러분 가룟 유다 마음에 왜 예수님을 팔려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중요한 건 가룟 유다는 머리로 ‘아 참 놀랍다! 참 훌륭하다! 위대하다!’ 그랬지, 자기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을 그 마음에 받아들이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생각이 자기 마음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사단이 또 다른 어떤 논리를 집어넣으면 ‘예수 팔면 좋겠다.’ 하는 그 생각이, 만일에 그 마음 안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그건 용납이 되어지지 않지만 가룟 유다 자신의 생각에는 예수 파는 게 유익하게 보일 때 용납이 되어진다는 거지요.
헤롯이 세례요한에게 책망을 받을 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게 옳지 않다고 하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헤롯은 그 요한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정말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게 옳지 않다고 책망하는 그 마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헤로디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서 헤로디아를 사랑하는 마음을 내 쫓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마음 안에는 헤로다아를 내쫓는 게 하나도 문제가 안됩니다. 세례요한의 마음 같으면. 여러분 가룟 유다가 예수님 팔려는 생각을 사단이 넣었을 때 그게 유혹이 되지만 예수님의 마음도 그 유혹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는 거지요.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것 같으면 가룟 유다는 예수 팔라는 유혹이 유혹이 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자주자주 하나님의 크신 능력도 보고 그 역사도 경험하고 참 놀랍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은 그대로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바꾸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지를 않으니까 그냥 놀라운 걸 보는 그 마음을 밀어내고 사단이 다른 마음을 넣었을 때에 정말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그런 능력을 직접 봤지만 그 예수님을 팔 수 있는 마음이 되어진다는 거지요.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유다만 아니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참된 신앙이란 건 내가 예수님이 내게 행한 어떤걸 많이 경험하느냐, 많이 느끼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가 병 고침을 입었다, 방언을 했다, 예언을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참된 신앙이란 것은 내가 가진 이 마음이 너무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내가 이 마음 가지고는 선해질 수가 없어. 이 마음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어. 내가 이 마음 가지고 절대 안 돼. 내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걸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예수님은 세상이 유혹이 안 되는 것이 예수님이 유혹이 안 되는 건 우리도 유혹이 안 된다는 거지요. 마귀가 예수님을 꼬여보려고 온 천하 만국을 다 보이면서 내게 엎드려 절하면 그 모든 걸 주리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마귀가 예수님을 꼬일 때는 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 주려고 하지만 우리야 뭐 천하만국 영광 놔두고 박사 하나만 만들어 준다고 하면 따라가고 좋은 신랑감 하나 준다고 하면 정신없이 따라가고 돈 벌게 해준다고 하면 정신없이 따라가고 그렇게 우리는 쉽게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목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제 주위에 동료들이 일하는 사역이나 형제 자매들의 신앙생활을 봅니다. 보면 딱 둘로 나눠지는데 자기가 목회하는 사람이 있고 주님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주님이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거지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이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했습니다. 자기가 정말 주님을 따랐습니다. 자기 마음을 가졌으니까 기분 좋을 때 따르고 능력을 맛볼 때는 따르다가도 유혹을 받고 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 한때 주님을 향해 생명을 바친다고 각오를 했을지라도 여러분의 각오는 변합니다. 여러분이 충만해서 내가 온 집을 팔아 주님 앞에 드리는 그런 열심이 있다가도 하루 아침에 그 열심이 변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가 자기를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거지요. 유다는 결국 사단에게 속아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예수님을 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유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기 마음을 자기가 지킬 줄 알고 믿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들어와도 자기가 이겨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주를 의지하기 때문에 사단이 왔을 때 이길 수가 있습니다. 나하고 주님하고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 아는 지식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고 내 마음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지식이나 여러분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절대 여러분 가룟 유다처럼 안 될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잡힐 줄 믿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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