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영상교제 말씀
예수님을 나의 참 구주로 안다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저희들이 케냐에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제가 케냐에 도착하는 새벽까지 형제 자매들은 막바지 예배당 공사를 했습니다. 아직 미숙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예배당을 짓고 또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주님을 섬기는 걸 볼 때 너무 감사했습니다.

누가 복음 23장 8절입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들의 영육을 살려줄 요셉을 볼 때 영적인 눈이 없었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육신의 정욕의 대상으로 요셉을 알았지, 그 이상의 무엇으로 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간수장은 그냥 요셉을 보고 죄수 하나로 생각을 했지, 그 요셉이 정말 자기 가족들을 다 살려줄 줄로 전혀 생각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자매님 한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교도소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이분이 교도소에 가기 전에 전주에 살면서 이웃에 사는 젊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애기도 낳았고 그래서 아주 가까운 젊은 자기 또래의 부부였는데 그분들은 구원을 받은 부부였습니다. 이 부인은 어느 날 그 젊은 부부를 통해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을 듣고 이제 참 이 말씀 쪽으로 기울여야 하는데 주변에서 막 이단이라고 그러고 남이 싫어하니까 이 복음이 옳은 줄 알았지만 그만 자기 마음이 교회하고 점점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이 부인이 두 번째 애기를 낳았는데 두 번째 애기를 낳고 난 뒤에 계속 마음 속에 자기가 꼭 죽을 것 같은 그런 불안한 마음이 이 부인한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혼자 집에 누워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감이 막 들어와서 견디질 못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전주에서 대전까지 자기 친정에 일주일난 애를 데리고 택시로 친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친정 가족들이 그 여동생의 불안함을 잘 이해를 못해가지고 오빠가 꾸짖으면서 `너 갓난아기를 데리고 이게 무슨 일이냐? 당장 돌아가라.`고 다시 전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부인이 전주에 가서 살면서 점점 불안함이 자기 마음 속에 엄습해 와서 어느 날 무슨 마음이 드느냐 하면 자기가 꼭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죽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자기가 죽을 거라고 확신을 했다는 거죠.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생각한 게 뭐냐하면 자기 딸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에 부담이 생긴 거예요.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이 새 아내를 얻겠지. 새 아내를 얻으면 그 새 아내가 내 딸을 옷을 벗겨서 추운 겨울날 밖에 내 쫓겠지. 그럼 쫓겨나가서 정말 고생을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까 남편이 밉고 견딜 수가 없어서 `안되겠다. 이러다간 차라리 나도 죽고 말 건데 딸도 죽이고 남편도 죽여야겠다.` 이 부인이 그래가지고 어느 날 칼을 가지고 자기 남편을 직장에서 퇴근하는데 갑자기 죽이고 자기 딸도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고 칼로 자기 얼굴을 여러 번 찔렀고 자기 팔을 찔러서 왼쪽 팔을 하나 잃었고 이 사람이 죽지는 않았는데 교도소에 가 있다가 구원을 받은 거예요.

내가 그 부인이 구원을 받고 난 뒤에 그 부인의 간증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사랑하는 주님께서 이 부인의 앞에 그런 어려운 일이 올 줄 알고 미리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 이 부인은 그냥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거부해 버렸기 때문에 그 부인이 그 은혜를 입지 못했다는 거지요. 중요한 건 그 부인의 마음속에 그 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으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였더라면 자기 마음 속에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고 두려움이 일어나고 그럴 때 자기는 그 불안이나 두려움을 내쫓을 수 없지만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그 불안이나 두려움을 능히 내쫓고 제거해줬을 거라는 거지요. 마치 사울이 다윗을 무시하고 내쫓다가 다윗이 쫓겨나고 난 뒤에 블레셋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에 패망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부인이 그렇다는 거지요.

헤롯이 예수님을 봤을 때 정말 이 예수님이 자기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줄 구세주이신데 헤롯은 그냥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지 못하고 자기 구세주로 안게 아니라 그에 대해서 소문을 듣고 자기 어떤 호기심 하나 채워보려고 표적이나 보려고 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는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지금도 헤롯이 뜨거운 지옥불 속에서 얼마나 뉘우치고 돌이키고 후회하지만 그는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거지요.

사랑하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장차 우리에게 닥칠 일들을 아시고 우리가 장차 어떤 사단의 유혹이나 재앙이나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닥칠 걸 주님은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모실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섬길만한 그런 기회를 가까이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지만 그냥 자신의 어떤 육신의 욕망이나 정욕, 호기심 정도를 채우는 걸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하다가 어떤 사고를 만나든지 재앙을 만나든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이제 이상더 그 예수님이 자기를 도울 수 있는 분이 안되니까 재앙에 넘어지고 파멸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간음한 여자가 재앙을 만나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우린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다시 살아난 그 이야기를 압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 아주 가까이 살아서 능력으로 일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 예수님을 소홀히 여기기 때문에 그 예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나를 질병에서나 고통에서나 어려움에서 죽음에서 건져줄 그 사실을 믿질 못하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마음을 다 쏟지 못하고 그냥 좋은 분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때가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심히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기뻐한 것은 `아 내 영혼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데, 내가 죄가 많은데, 내가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데, 주님이 오셨구나! 이 주님이 나를 죄에서 건져주시겠구나! 주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시겠구나!` 그래서 기뻐한 것이 아니라 자기 호기심, 자기의 어떤 만족, 그것을 채우는 걸로 예수님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죄에서 건져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 기적 한 번 행해 보지! 나한테 그것 한번 보여줘 봐."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는 예수님을 알지만 그 예수님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거나 마음을 다해서 구세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아니하고 그냥 좋은 분으로 있다가 말기 때문에 재앙을 만날 때 예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정말 주님을 능력의 주님으로 알고 나의 참 구주로 안다면 우리의 모든 일에 주님이 함께 계시고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재앙을 만날 때, 정말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그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조용히 한번씩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인가?`
`내 삶 속에서 뭘 하시는 분인가?`

생각해 보시고 그 예수님이 참 마음의 구주가 되어서 내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 모든 일을 주님이 해결하시는 그런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