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를 향하여
9월 10일, 금요일
목사님의 남아공 방문 소식은 이충학 선교사님이나 방문자 중 누군가가 올려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자는 남아공을 방문한 몇몇 형제들에게 소식을 물어서 들은 이야기를 조금 올려 본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유럽으로 도로나 모든 시설이 유럽 스타일이다. 그곳이 겨울이어서 쌀쌀한 날씨인데 더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고. 집회에 새로운 영혼들이 50여 명이 참석하여 진지하게 말씀을 들었는데, 박영국 전도사가 영어로 통역한 목사님의 요한복음5, 6, 8장의 말씀을 그들이 그렇게 마음으로 받으면서 대부분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합창단 형제들도 새로 온 심령들을 서너 명씩 붙들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목사님은, 믿음을 전하신 후에 그 믿음에 복음의 말씀을 대입하여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씀을 증거하셨다. ‘물인데 예수님이 포도주라 하신다면 그건 물이냐 포도주냐, 38년 동안 일어나지 못한 병자인데 예수님이 일어나 걸으라 하셨다면 ‘그러지 말고 돈이나 주세요’ 하고 자기 생각을 믿을 것이냐 아니면 그 생각을 버리고 일어날 것이냐?’ 말씀 앞에서 믿음과 인간의 생각이 분명하게 나뉘어졌다. 특히, 둘째 날 새벽 시간에 요한복음6장 말씀을 전하시면서 ‘빌립은 방법이 많은 사람이어서 마음에 예수님과 말씀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인데, 남아공 선교는 더딜지라도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라고 남아공 선교의 방향을 짚어주시기도 했다. 하나님이 남아공에 수많은 영혼들을 준비해 두셨음을 볼 수 있었으며, 요하네스버그 뿐만 아니라 케이프타운 등등 남아공 여러 곳에 교회가 세워져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것을 모두들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일행은 7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 탄자니아로 향했다고.
다르에스살람 집회를 마치고 버스로 16시간을 달려와 다시 나이로비 교회에 도착하였다. 탄자니아 교회가 온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한 만큼 떠날 때 그렇게 아쉬운 마음이었다. 김종덕 선교사님이 믿음으로 집회를 준비하셨는데, 원래는 목사님이 탄자니아에 들를 계획이 없었지만 기도할 때마다 ‘목사님이 오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동부 아프리카 전도자들과 의논할 때 목사님이 여기저기 조금씩 가시는 것보다도 나이로비와 요하네스버그로 몰아서 집회를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는 것. 그런데 결국 일정이 남아공 이틀, 탄자니아 이틀씩 집회를 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고 한다. 교회 예배당에서 집회를 해도 되지만 그건 믿음이 아니겠다 싶어서 밖에 좋은 장소를 구했는데, 마침 7,8일 양일간 옛날 국회의사당 본당이 비워져 있어서 얻을 수 있었다. 다르에스살람은 무더운 편이어서 합창단과 형제자매들이 고생할 것을 생각해서 에어콘이 있는 장소(얻을 수 있는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에어콘이 있는 장소라 함)를 구한 것이다.
또, 김 선교사님은 새벽같이 어시장으로 가서 장을 봐 오셨는데, 놀랍게도 광어, 꽃게 등을 사오셨다. 우리는 저녁에 광어회와 꽃게 매운탕을 맛볼 수 있었다. 고추장에 식초뿐만 아니라 레몬을 넣어서 초고추장을 만들었는데, 아프리카에 와서 이런 것을 맛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으리라. 점심은 현지인이 먹는 식으로 우갈리를 한번, 이름을 모르는 콩요리를 한번 먹었다. 집회를 하면서도 온 마음으로 한국 전도팀을 섬기는 선교사님 내외분과 단기선교사들, 그곳 형제자매들이 너무 귀해 보였다.
형제들은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고, 자매들은 사택의 방과 거실을 썼다. 사택 거실은 컴퓨터가 있어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장소인데 자매들 숙소여서 금남(禁男)구역이다. 인터넷을 하려면 동정을 좀 살피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임을 확인하고 들어가 하는데, 불행히도 낮 시간은 인터넷이 거의 안 된다. 다른 접속자들이 많아서. 그래서 게시판에 글 하나를 올리려고 애썼는데 하루 종일 로그인조차 되지 않아 올릴 수 없었다. 밤 12시 이후와 새벽 시간은 인터넷이 잘 된다는데, 그 시간에는 들어갈 수 없는 시간이다. 8일 밤늦게까지 선교사님과 교제를 나눈 후 단기선교사 오미향 자매에게 글로 작성한 글을 게시판에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되는데, 머리가 안 돌아가는구나!’ 올렸는지 아직 확인은 못 해 봤지만, 올렸으리라!(‘글을 읽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비로소 올라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탄자니아에서 돌아올 때, 김경희 사모님이 동행하셨다. 버스에서 먹을 도시락과 음료수 등을 함께 실었다. 국경을 통과할 때 우려되는 문제가 있기도 하고, 목사님 떠나시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하고, 겸사겸사로 동행하신 것 같았다. 특히, 나이로비에서 남아공으로 가는 전도팀 중에서 가방을 5개나 잃어버린 사건 때문에 짐 비상(?)이 걸렸다. 미고리 교회 차에 짐을 실었는데, 지퍼로 개폐하는 천막식으로 짐칸을 만들었는데, 그 천막을 칼로 찢고 짐을 빼간 것이었다. 이곳에 도둑이나 강도가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짐 실을 때, 짐 내릴 때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현지인들을 절도용의자로 보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여행 중에 물건을 잃어버릴 때의 낭패를 생각하면 할 수 없었다.
탄자니아 일행은 케냐로 돌아가는 것이 별 문제가 안 된다. 단수 비자라도 같은 동부 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허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아공은 동부 아프리카를 벗어난 지역이어서 그 팀은 원칙적으로 다시 케냐 비자를 받아야 한다. 짐 검사까지 한다면 복잡하기도 하지만, 일인당 50달러를 비자 비용으로 더 내야 한다. 은혜(?)를 입어 국경을 잘 통과했다. 올 때는 2시간 걸렸는데, 돌아갈 때는 1시간만 걸렸다. 그 동안 마사이족 아주머니나 할매들이 기념품을 사라고 얼마나 졸라대던지.... 산 사람들도 있었다. 아침 5시 30분에 출발하여 저녁 9시 30분에 도착했다. 장장 16시간 걸린 것이지만 자다가, 성경 읽다가, ‘마피아 게임’을 하다가, 옆 사람과 교제하다가, 먹다가 보니 도착했는데, 즐거운 여행이었다.
어제 저녁의 요한복음 6장 말씀을 잠시 기억해 본다. 빌립은 예수님이 하신 역사들을, 말씀의 역사들을 수없이 보았지만 그 마음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아 결국 5천 명을 먹여야 하는 문제 앞에서 자기 방법밖에 안 나왔다. 안드레는 보리떡 5개라도 예수님의 손에 잡힌다면 5천명을 능히 먹이시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향했다. 똑같은 씨앗이더라도 그냥 있는 씨앗과 땅에 뿌려진 씨앗은 다르다. 땅에 뿌려진 씨앗은 흙이 덮이고 물이 뿌려지면 싹을 트고 자라게 하는 힘을 갖는다. 마음에 떨어진 말씀은 그냥 말씀이 아니라 문제와 싸워 이겨내는 힘을 갖는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임한 문제와 예수님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내가 방법을 쓰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주신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 문제를 예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항아리 속에 굶주린 고양이 두 마리를 넣어두면 나중에 한 마리만 남듯이, 문제와 예수님을 연결하면 둘이 싸워 더 강한 자 하나만 남는다. 물론 예수님만 남는다!
죄를 해결하는 것도 그렇다. 내가 죄를 해결하려 한다면 10년, 100년 걸려도 안 되지만, 내 죄 문제를 십자가의 피에 집어넣는다면 내 죄가 다 사해졌다는 믿음이 온다는 것이다. 기자도 지금 전도여행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운 문제들이 있다. 전도여행 기간 중에 새로운 예배당을 얻어야 하는 문제가 있고 IYF회지 가을호를 출간해야 하는 문제 등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친히 어떻게 하려는 줄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많은 무리를 먹게 하겠느냐?” 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이미 주님은 친히 어떻게 하려는 줄 아시고 이 문제를 주신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말씀이 마음에 들렸다. 계산과 방법 속에 빠져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다면 나는 빌립인 것이다. 내 인생 전체가 보리떡 다섯 개에 불과하지 않는가! 결국 주님께 나를 던지면 주님이 해결하신다. 목사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목사님은 도기권 장로님과 항공기 편으로 나이로비에 먼저 도착하셔서 일행이 무사히 온 것을 보고, 또 국경에서 일인당 50불씩 열 명 해서 500불의 비자 비용을 절약한 것을 보고 즐거워(?)하셨다. 밤에 가나로의 이동을 앞두고 모임을 가졌다. 말라리아 걸린 사람들을 체크해 보니 도합 5명이었다. 박옥수 목사님, 김선자, 이혜림, 차나래, 이세미 자매 등이었다. 목사님은 거뜬한 모습이었고, 자매들의 얼굴이 좀 창백해 보인다. 예방약을 먹은 덕분에 증세는 약했지만, 병원에서 말라리아 판정을 받은 이상 치료를 잘 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장거리 여행 중이기 때문에 피로해지면 말라리아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라리아 걸리면 처음에는 감기 증세와 비슷한 증세가 있고, 먹기가 싫어지고 고열이 나면서 몸이 추웠다 더웠다 하며, 증세가 더 심해지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 가나는 동아프리카보다 더 덥기 때문에 말라리아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종수 선교사님이 말라리아 담당관으로 서부아프리카 전도 여행에 동행키로 했다.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짐을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3시 30분부터 눈을 떴다. 동아프리카를 뒤로 하고 아크라를 향한 비행기에 몸과 짐을 실었다. 강행군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모두들 개인적으로 챙겨야 하는 짐들이 있었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걸린 중에서도 전혀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는 자매들의 모습을 보면 용사 같았다. 그라시아스 합창단, 그들은 정말 진군나팔 소리를 듣고 앞으로 나아가는 복음의 군사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