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5장 9절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제가 근래 서울에 와 있으면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오늘 오후에도 김포에 있는 어떤 분이 김포 전도사님하고 오셔가지고 점심 먹고 계속 복음 교제를 하는데 저도 교제를 하면서 마음에 기뻤고 그분도 굉장히 기쁨으로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또 영원한 속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기쁨으로 돌아가는 걸 볼 때 내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대구 파동에 있었을 때 파동에 그냥 2층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참 많은 분들이 그냥 찾아와서 구원을 받고 갔어요. 배창덕 목사라고 하는 분, 그분은 구원받은 연유가 이분이 전도사 때 파동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예배당을 구하러 왔다가 저희들 교회를 올라와 봤어요. 이분이 저희들 교회에 올라와 보고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저하고 상담을 했는데 이제 죄의 문제, 자긴 죄가 있다, 죄인이라고. 죄인이 어떻게 천국을 가느냐? 죄인이 믿음으로 가지, 믿음이 있으면 죄가 사해져야지... 저하고 막 그날 언쟁이 굉장히 심했거든요. 그래 헤어졌어요. 한 2, 3년 지났는데 그분을 다시 버스 안에서 만나가지고 자기 어려운 일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 저희집에 와서 구원을 받았거든요.
제가 파동에 있을 때, 또 김천에 있을 때, 군부대에 있을 때, 근래에 이제 서울에 와서 계속해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내가 너무너무 주님 앞에 감사한 것이 지난 금요일날 와서 복음을 들은 신문사 부장되는 그분은 누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냥 그분이 혼자 오셨는데 내가 딱 한시간 남는 그 시간에 정확하게 와서 구원을 받고 기쁨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오늘도 제가 점심식사 약속이 있어서 식사하고 막 오니까 김포에서 와서 주차장에서 만나가지고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받고.
그래 제가 하는 일하고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하고 너무 다른 거예요. 그런데 이제 우리 속에 하나님 일하시기 위해서 우리 마음 안에 우리 마음 모두가 하나님 앞에 드려져봐야 하는데 내 어떤 의견이나 성품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결국 하나님의 뜻을 막아버린다는 거지요.
사울은 하나님에 의해서 왕이 되었고 또 그가 전쟁할 때 암몬 사람 나하스와 싸울 때도 하나님이 도우셨고 하나님은 늘 사울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사울 속에 인간적인 생각이 다 버려진 게 아니고 어떤 결정적인 시기에 잘 나가다가 인간적인 생각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싫어하고 미워하고 거스리는 일을 인간적으로 끌고 가더라는 거지요.
오늘 저녁에 읽은 것은 하나님이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그럼 그냥 그렇게 다 쳐 진멸하면 되는 거예요. 진멸하는데 사울의 자기 생각이 남아가지고 `소와 양의 좋은 것, 기름진 건 남기자.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남기자.` 자기 생각이 딱 나오면서 그 생각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도록 끌어가는데 자기는 소와 양의 기름진 것을 남기는 그것이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저주받는 길로 가는 줄 전혀 모르고 `이런 건 괜찮겠지. 이래도 되겠지.` 그런 인간적인 생각에서 사울이 행하더라는 거지요.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여기서 내 생각하고 하나님 생각의 차이가 크거든요. 아간은 `시날산 외투 한 벌쯤 숨긴 거야 뭐가 대단해?` 아나니아는 `땅값 다 하나님께 바치고 조금 감춘 그게 뭐 어때서?` 그 아나니아나 아간이 볼 때 대수롭지 않은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것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과 더불어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만한 인간적인 생각 좀 남겨뒀다고 이런 정도의 생각이 없는 사람 누구야?` 그런게 남아있으면 인간적인 생각이 잘 나가다가 하나님을 거스리는 방향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거예요.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그 말씀처럼 인간적인 생각이 나와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반대되는 쪽으로 흘러가도록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진멸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거지요.
이것은 여러분,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는 게 오늘 우리 육신의 생각인데 우리도 우리 육신의 성품 가운데서 악하고 추하고 더럽고 가치 없는 그런건 죽이고 우리 생각에서 볼 때 `끝내버리자. 치자.` 그래 내 성품 가운데서 내가 참 진실해 보이고 착해 보이고 좋아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육인 것인데 이런 건 내가 놔두고 싶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 남겨뒀을 때 결국 그 생각이 사울 속에도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왠만한 생각은 다 고쳤지만 이런 건 괜찮은 생각이니까 내 인간의 생각을 남겨둬서 그 인간의 생각이 내 속에 나타나서 하나님을 거스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도록 이끌고 있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그 생각 속에서 속아서 `나는 이런데 뭐 이 정도 가지고 뭐가?` 저도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읽어볼 때 아나니아가 땅값 좀 숨겼다고 그렇다고 죽이기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내 생각은 그랬습니다. "아나니아야 너 왜 땅값을 감추었냐? 다음엔 그러지 마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 그 일로 아나니아를 죽이기까지 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게 내 생각과 하나님 생각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그 아나니아 삽비라가 죽었거든요. 제가 대전에 있을 때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한밭교회 목사는 박옥수 목사가 꼭 맞다." 왜? 베드로가 와 있었으면 여러분 중에 살아남을 사람 몇 없다고. 아나니아가 그랬다고 죽였는데 어떡하겠느냐고.
여러분 그게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의 다른 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의 차이가 그게 다른 거예요. 우리 볼 때는 대수롭지 않는데.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남아있으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울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양의 좋은 것, 모든 좋은 걸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하지 않았다. 양이나 소의 모든 걸 진멸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남겨놓았기 때문에 사울 자신이 진멸함을 당해야 하는데 사울은 그걸 깨닫질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남아있으면 우린 항상 하나님의 그릇된 길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 그것만이 예수님 마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말씀을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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