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2절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사단이 우리 속에 일을 할 때 어떤 일을 하느냐 하면 우리 속에 생각을 어둠속에 몰아넣어서 생각을 못하게 하고 일단 그 생각에 딱 막혀버리면 그 다음에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 속에 우리 마음이 빠져들도록 그런 일들을 사단이 계속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간에 지난 일들이나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을 보면 하나님 우리 속에 능력으로 일하기 때문에 거기에 기대와 소망을 가질 일들이 참 많은데 그 생각을 생각할 수 없도록 막아놓고 그 다음에 사단이 어떤 생각을 넣어줄 때 우리는 정말 사단의 말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거기다 기대를 두는 경우가 참 많다는 거지요.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천하 만민이 너의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이런 약속을 하셨는데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했다”고 하는 그 이야기가 사라 입에서 나오려고 하면 먼저 사단은 사라의 마음 안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사라 마음에서 지워야 했고 두 번째로 사라 마음에 그 약속을 지울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느껴지도록 그렇게 생각을 집어넣어야만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닥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형편을 통해서 사라 마음속에서 이제 하나님의 그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한다는 거지요.
저는 신앙생활하면서 내 마음에 강하게 느끼는 게 뭐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우리가 그걸 믿음으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가 믿기 전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놓으셨거든요. 그러니까 사해 놓았기 때문에 그걸 믿는 거지 사해놓지 않은 걸 믿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믿음의 대상이 주님인데 주를 믿을 때 어떻게 믿느냐 하면 주께서 십자가에 흘린 피로 내 죄를 사해놓은 그 사실을 믿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미 우리가 믿기 이전에 주님이 우리 죄를 사해놓았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사해놓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죄인인줄 아는 것과 꼭 마찬가지지요.
성경에는 우리 죄가 사해졌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읽고 있으면서도 나는 죄인이라고 이야기를 하다는 거예요. 그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성경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고 명백히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말씀을 그냥 들은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들을 때 사단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들을 전부 흐리게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제가 1972년도에 경북 영천에서 평양신학교 3회 졸업생이신 목사님 한분께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저한테 평양신학교에 다닐 때 쓰던 교재 한 상자를 나한테 선물로 줬는데 그 교재를 읽어보니까 그 당시에 등사를 해서 만든 교재인데, 만든 년도를 보니까 1943년,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교재였습니다. 내가 심심해서 한번 그 교재를 읽으면서, 에베소 강해 로마서 강해가 그 책에 나오는데, 거기서 복음적인 이야기를 찾아봤습니다. 근데 너무너무 신기한 건 평양신학교 교재인데 에베소 강해를 죽 이어나가다가 복음적인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로마서 강해를 죽 이어나가다가 복음을 전하는 그 부분은 다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평양신학교에서 로마서를 강해하고 에베소서를 강해한 그 강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졌느냐? 그게 아니라는 거지요.
제가 자주자주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봐요. 혹시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한 그 이야기를 아느냐? 물어보면 열이면 열 거의 다 안다고 그래요. 더욱이 목사님일 경우에 잘 안다고 그래요. 그럼 내가 다시 질문을 하지요. 그러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한 그 죄를 씻음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씻음 받는지 그 이야기 아느냐?
근데 진짜 안타까운 건 그 이야기를 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다윗이 죄를 지은 이야기는 아는데 죄를 사함 받은 이야기는 모르는 거예요. 똑같이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는 사무엘 하에서 다윗이 죄를 짓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을 해요. 다윗이 저녁때 침상에서 일어나 왕실 지붕 위를 거니는데 거기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그러면서 밧세바라는 여자와 간음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간음한 그것을 숨기려고 우리야를 오라고 해서 아내와 동침하게 하려고 하다가 우리야가 그렇게 안하니까 전쟁터에서 죽이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고 그런 과정들이 잘 나와 있으면서 마지막에 이제 나단 선지자 앞에서 다윗이 죄 사함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참 우리가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죄를 지어본 경험은 있지만 죄를 사함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짓는 이야기는 이해가 가는데 죄를 사함 받는 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성경에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한 그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는 어떻게 죄를 사함 받는가를 설명해주기 위하여 죄를 짓는 과정부터 죄를 사함 받는 과정까지 자세히 성경은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사단이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이야기는 아는데 어떻게 죄를 사함 받는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알지를 못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 하면 사단이 우리를 속여서 그 말씀을 읽을 때 죄 사함 받은 그 부분을 흐리고 어둡게 만들어 버린다는 거예요. 성경에는 분명히 우리 죄가 사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도 그걸 흐려서 그걸 못 받아들여버리니까 어둡게 되어지는 거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리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려면 자식을 낳아야 되지 자식을 낳지 않고 어떻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한다는 말은 자식은 주신다는 이야기인데 사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건 흘려버리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오늘 여러분 사라에게만 말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약속한 그 약속들이 우리에게 안보이고 절망적인 것을 보여줘서 우리로 하여금 실망 속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고 믿음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만드는 게 사단이라는 거지요.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생산을 허락지 아니했습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때 볼 때 전혀 아닌 것처럼 보여지듯이 우리가 복음을 위해 달려가다보면 하나님 분명히 우리 속에 살아 역사를 하시는데 그걸 안보이고 안 될 것 같은 절망적인 것이 보여서 우리가 실망을 하고 내가 뭘 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그 소망을 빼앗아버리고 약속을 빼앗아버리고 그리고 우리를 실망 가운데 빠뜨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자세히 보면 절망적인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결국 이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그런 상태에서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은 그런 상태에서, 사라가 경수가 끊어진 그 상태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줘서 약속대로 일을 이루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앞에 복음을 위해 일하면서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든지 간에 현재 닥치는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 마음을 흐리게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멀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약속에 기대를 두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약속을 바라보고 믿을 때 우리 믿음이 힘있게 자라가고 그 약속이 우리 속에서 흐려지면 인간방법으로 자식을 낳으려고 하는 것처럼 내 인간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어둠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절망이 있든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일을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믿는 소망 가운데서 오늘도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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