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16절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제가 주님 앞에 참 감사한 것이 예수님이 없었을 때 내 마음을 끌고 다니는 것은 내 육신의 욕망이나 정욕 그리고 사탄이 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싶고, 마시고 싶고, 평안히 쉬고 싶고, 즐기고 싶고, 그런 육체의 욕구와 욕망, 그것 외에 다른 아무 것이 없었는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고 죄 사함을 받고 난 뒤에 내 속에 전에 없던 마음이 일어나서 나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이끌어 가는 걸 볼 때 정말 놀라웠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 대덕 수양관에 물이 안 나왔을 때 절망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이 수양회를 계속 할 수 있지?` 그런데 제가 계속 기도를 하다보면 전에 전혀 없던 마음이 내 속에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산도 주시고 수양관을 짓게 하셨는데 왜 물을 안 주시겠나? 다 주셔도 물이 없으면 수양회를 못하는데` 물을 주시겠다는 그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 마음은 나에게서 만들어진 마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마음인 거예요.
내가 자주 이야기합니다만 우리 송재의 형제가 중국에 도망갔을 때 옆에 있는 김성훈 목사와 저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근심 속에 빠져야 하는데 계속 기도하는 동안 내 마음에서 내 마음하고 다른 마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사람 보내주겠다.` 마음에 믿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저는 제가 평소 때 내가 그냥 지나다가 주님 앞에 기도하다가 보면 `내가 그 형제를 섭섭하게 했구나. 그 형제가 참 섭섭했겠다. 그 형제가 나를 원망했겠다.` 이런 내게서 나온 생각이 아닌 그런 생각이 내 속에서 쏟아오를 때가 참 많아요.
그러니까 그전에는 내 속에 일어나는 그 주의 마음이 없을 때 육신의 어떤 욕망이나 정욕 그게 나를 그냥 끌고 다녀도 같이 당겨줄 어떤 힘이 없었는데 이제 내가 구원받고 난 뒤에 달라진 것은 그때처럼 여전히 내 육체는 맛있는 것 먹고 싶고 평안히 쉬고 즐기고 싶고 육신의 쾌락 쪽으로 막 달려가는데 죄악 쪽으로 내 욕망을 쫓아가는데 또 다른 어떤 힘이 나를 하나님의 뜻으로 이끌어 가는데 그 힘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감히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으며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나 전혀 불가능한 거에요.
오늘 제가 청량에 가서 요한복음 9장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눈을 떴습니다. 만일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소경 되었던 사람이 가졌던 그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었다면 "야 너 진짜 눈떴다. 너무 잘됐다. 그분이 누구야? 너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그분은 메시야 맞아. 넌 한평생 그분만 섬겨도 좋겠다. 야 너 진짜 복을 받았다. 야 우리 기뻐하자." 이래야 정상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뭐? 예수가 눈을 뜨게 했다고? 어떻게? 진흙을 눈에 발랐다고? 안식일인데 그런 일을 했어? 진흙을 눈에 바르다니, 그런 중노동을 했어?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야." 그들은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으로 끌려가더라는 거지요. 하나님의 영의 인도가 없을 때.
그 부모들이 말이지요, 바리새인들이 "이 사람 네 아들 맞느냐? 어떻게 눈을 떴느냐?" 물으니까 "예, 내 아들인 것도 맞고 소경으로 난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눈을 떴는지 나는 모릅니다. 장성했으니 저에게 물어보세요." 부모들은 번연히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 유익을 위해서. 만일 그 부모들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흘러들어왔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당연히 우리 주 예수님이 하셨지요. 그분은 메시야입니다. 그분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분입니다. 왕의 신하의 병을 고쳤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분은 메시야입니다. 난 그분을 섬기며 살렵니다." 그렇게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했을 때 자기 어떤 기준에 도덕과 선행을 가지고 사는 거예요. 내가 뭐 도둑질 안하고 살인 안하고 간음 안하고 그러면 난 신앙생활 잘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여러분이 도둑질은 안해도 살인은 안하고 간음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는 생각하고 우리의 생각은 너무 다른 거예요.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쳤을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행했더라면 주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생각으로 하니까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 사람은 죄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대적하더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가 행하는 것이 얼마나 악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양심의 법 가지고 내 자신의 어떤 도덕의 기준을 가지고 온전하다고 절대 온전한 게 아닙니다. 저는 때때로 우리 목회자들이 사역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인도가 없이 자기 생각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 1년이나 2년 사역을 하는 동안에 완전히 교회에 어려움을 끼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전혀 그것이 잘못인줄 깨닫지를 못하는 겁니다. 왜? 자기 양심의 기준, 선악과의 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양심에는 `뭐 내가 뭐, 이 정도 잘못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실수할 수 있지 뭐.` 그런데 가장 문제는 여러분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의 영의 이끌림을 받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생각 가지고 하는 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이라는 거지요.
저는 제가 이 복음 일을 하면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는 여전히 지금도 내 육체는 내 편한대로 내 즐기는 욕망으로 흘러가는데 내 속에 전에 없던 예수님의 마음이 내가 육체의 욕망대로 끌려가도록 나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은혜로 이끄는 그 부분이 참 감사하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여러분은 그냥 내가 설교를 하니까, 내가 사람들한테 복음 전하니까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이끌어 가지 아니하면 여러분 누구 생각이 여러분을 이끕니까? 여러분 육이나 인간의 생각, 사탄이 주는 생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간음을 안한다 할지라도 살인을 안하고 도둑질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마음 아닌 어떤 마음으로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해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지 않을 때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고쳤을 때 그들도 같이 기뻐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했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가지고 기준을 가지고 보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종을 죄인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얼마나 교만하고 악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더라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미련한 종입니다. 귀가 심히 둔합니다. 하나님 한번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고 제 마음에 하나님이 말씀해주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의 소욕을 따라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여러분이 일을 했을 때 그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여러분의 삶을 통해 주님이 나타나시게 될 줄 믿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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