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초봄 눈발이 날렸다. 퇴근 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갑자기 눈이 쌓인 것이다. 구정에는 딸이 눈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졸라서 눈을 뭉쳐보려고 해도 눈이 모래 알 같아서 뭉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당 구석에 쌓아 놓은 흙 섞인 눈을 삽으로 깎아서 대충 눈 사람을 만들었는데 눈 사람이라기 보다는 흙 눈사람이었다.
어제 내린 눈은 밟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냈다. 눈이 진 짭쌀 떡 처럼 잘도 뭉쳐진다. 딸이 한 밤중에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자고 했다. 밤이 늦어 눈 사람은 못 만들었지만 오늘 퇴근하면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아마 눈사람다운 눈 사람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뭇 가지에 두툼하게 쌓인 눈 꽃이 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 않고 늘 새롭고 늘 싱싱한 자연이다.
오늘 아침에는 회사에 출근하자 마자 눈을 치우는 일을 했다.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치웠다. 눈을 치우자 바닥에는 시커먼 아스팔트와 더러운 물과 먼지가 드러났다. 미끄럽지만 않다면 눈을 그냥 두고 싶다. 온 세상이 흰 눈에 쌓여 모든 근심, 걱정, 욕망이 사라지고 맑고 시원한 바람과 햇볕이 그 위에 내리 쬐일 뿐이다.
초 봄에 눈을 주신 하나님, `우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고 하신 말씀, `우리 모든 죄를 도말하셨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신다. 도말(塗抹)은 칠하여 지워 없애거나 위에 덧발라서 가린다는 뜻. 영어로는 블랏 아웃(blot out), `더러운 것을 지우다, 감춰 보이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어제 순식간에 거의 10센치 눈이 내려 온 세상를 덮어버린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온전케 가리셨고 씻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셨다.
눈, 도말, 블랏 아웃(blot out)...
글: GNN 이경석 기자 (kslee5@good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