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장 12~13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여러분 만일에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기를 원하실까요? 내가 한번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여러 가지 대답을 하더라고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제가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하고 대화를 하셨고, 모세와 대화를 하셨고, 그 다음에 오늘 우리가 읽은 기드온하고 대화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대화를 하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어떤 대화를 했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난 너무 늙었습니다. 내 아내도 늙었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아니야.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거야.”
“아닙니다. 하나님 이스마엘이나 살기를 원합니다.”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거야.”
여러분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모세와 하나님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내가 너를 애굽에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주여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리라.”
“내가 무엇이관대 바로에게 가며 내가 무엇이관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내겠습니까?”
“내가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거야.”
“하나님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하고 하신 대화나 모세하고 하신 대화나 또 오늘 저녁에 읽은 기드온과 하나님의 대화를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도다.”
기드온이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대화나 모세에게 하신 대화나 기드온에게 하신 대화처럼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시겠다는 마음이 제 마음에 든다는 거지요. 어떤 내용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 때 남자와 여자를 똑같게 만들지를 않았습니다. 똑같게 만들었으면 남자가 뭐 필요하고 여자가 뭐 필요하겠습니까?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합니다. 왜? 서로 다르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실 때 그렇게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 우리를 만드실 때 강하게, 힘있게 그렇게 만드시질 않았습니다.
왜? 우리의 연약함이 예수님의 강함을 만나서, 우리의 추함이 예수님의 거룩함을 만나서 우리의 부족함이 예수님의 완전함을 만나서 우리가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간에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못나고 추한 것이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해지고 의로워지고 강해지고 아름답게 되어간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일을 하다 보면 일 앞에 너무 연약한 걸 느낍니다. 우린 당연히 연약해야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야 하는데 우리가 예수님과 거리가 머니까 그 어떤 일 앞에 내가 부딪히니까 ‘난 너무 부담스러워. 난 이건 못할 것 같애. 난 안될 것 같애.’
여러분 그런 이야기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 속에도 있고,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나 기드온과 하나님의 대화 속에도 있었습니다.
“아니야 넌 부족하지만 네가 하는 게 아니고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면 넌 할 수가 있어. 넌 할 수가 있는 거야. 아니야.”
그런데 그들은
“아닙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가 있습니까? 안 됩니다.” 하나같이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안 된다고 말을 했고 하나같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네가 부족하지만 너로 말미암는 게 아니고 네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게 될 수 있어.”
그 이야기를 하나님은 모세에게나 아브라함에게나 기드온에게 똑같이 하셨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에게는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은 너무 연약하고 부족하고 형편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난 안될 거야. 난 못해. 난 부족해. 난 연약해.’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할거라는 거지요. 하나님은
“아니야. 네가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있는 거야. 나로 말미암아 너는 할 수가 있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내 연약함이 문제가 안되고 부족함이 문제가 안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으로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하고 멀어져 있으니까 자기가 힘이 있으면 일을 하고 자기가 없으면 못할 것 같은 그런 생각 속에 빠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아닌 그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 이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그 사실을 믿는 믿음 가운데 서게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신다는 거지요.
저도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내 자신을 바라보면 ‘내가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을까? 나는 부족해. 못해.’ 정말 내 자신을 보면 절망 속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린 사도 바울처럼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나는 못하지만 예수 안에서 나는 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우리 주님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으로 지금까지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저녁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단기 선교사 여러분, 이제 이상 더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족함에 매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연약함에 매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의 약함에 매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있는 것입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이 우리의 몸을 통해서 일을 하시는 거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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