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16절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대부분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신앙이 빗나가고 잘못되는 이유가 있는데, 그건 어떤 일들이냐 하면, 자기가 정확히 봤기 때문에 자기가 느꼈기 때문에 자기 의견이 옳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기 생각이 옳다는 생각이 마음에 딱 잡혀 버리면 그것하고 다른 생각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실제로 저희들 선교회 안에도 형제 자매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10년, 20년이 지나도 전혀 우리 교회 안에 흐르는 하나님의 마음이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혀 변화가 없이 사는 형제나 자매들이 있는데, 그런 형제 자매들하고 깊이깊이 교제를 하면서 마음을 더듬어나가면 꼭 그들 마음 중심에 뭐가 하나 있느냐 하면, 자기가 보았던 정확한 생각이라고 하는 그게 하나 자리를 잡고 있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성령으로부터 오는 귀한 은혜를 입지 못하고 있다는 거지요.
물론 이러한 일은 사단이 우리에게 그렇게 역사를 합니다만,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장 16절에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셨는데, 큰 광명이란 것은 낮을 주관하고 즉, 태양을 가리켜 말합니다. 작은 광명은 밤을 주관하고 이건 달을 가리켜 말하는데, 성경에 해, 태양을 가리키는 단어를 전부 뽑아내서 종합을 해보면 해는 신랑을, 남편을 가리키고 달이라는 단어를 전부 뽑아 종합해 보면 달은 신부, 그의 아내를 가리킨다는 걸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요, 달은 우리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달을 보면 뭐라고 말합니까? `아 저건 보름달이다, 만월이다, 저건 반달이다, 저건 초생달이다, 저건 그믐달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달이 크고 둥글 때 우린 그걸 보름달이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 달이 점점 작아지면 우린 반달이라고 말을 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반달을 보고 반달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틀림없는 소리 같지만 은밀하게 따지면 그건 틀린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달은 반달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그렇지요? 달은 그대로 큰 달인데, 둥근 달인데 빛이 반쪽만 비춰져서 반달처럼 보일 따름이지, 그건 절대 반달이 아닙니다. 그건 여전히 둥근 달입니다. 맞습니까? 반달만 그런 게 아니라 초생달도 역시 그래요. 손톱 같은 초생달도 우리 눈에 보기에 초생달이지 실제 가보면 그건 초생달이 아니라 둥근 달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가 정확하게 봤다는 게 얼마나 엉터리인 줄을 알 수가 있어요. 정확하게 보고 내 눈으로 확인했지만 내 눈으로 보고 정말 확실하게 `저건 초생달이야, 저건 반달이야, 저게 어떻게 큰 달이야? 저건 반달이야.` 그렇게 말을 해요.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틀린 대답입니다. 그렇지요? 달에 가보면 그건 반달이 아니고 온달인데 그렇지요? 햇빛이 비춰서 이처럼 부분만 반달로 보일 따름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반달을 보여주고 반달이라고 말하게 해요. 여러분이 그걸 보고 반달이라고 말하면 그건 틀린 거예요. 실제는 온달이예요. 반만 보여 그렇지, 빛이 다 안 비춰 그렇지. 여러분 우리가 이런 판단을 가지고 `이건 반달이 맞아. 이건 초생달이 맞아. 이건 말이 안돼. 이건 틀림없어.` 그렇게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거지요.
우리가 볼 때 확실히 반달이지만 아무리 정확히 봐도 반달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반달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 우리가 보는 그 면은, 우리가 보는 부분은, 우리가 느끼고 우리가 경험하는 건 지극히 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본 것하고 주님이 보신 것하고 둘 다 종합해서 그 가운데서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본 정확한 그걸 무시하고 주님이 보이신, 그 정확한 주님의 판단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도 역시 그렇지요. 내 자신이 바라볼 때 내가 죄인인 것이 틀림없고 내가 죄를 많이 저질렀는데, 여러분 우리가 그런 사람인데 정말 주님의 말씀을 보면 의롭다고 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가 죄인이 아니고 의인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씻으셔서 의인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볼 때는 죄인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럼 누구 판단이 옳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의 판단이 옳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고 마음이 굳은 사람들은 자기를 믿기 때문에, 자기가 본 게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건 반달이야.` 하고 우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알고 보면 그 우겼던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 수가 있지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동역자 여러분, 저는 구원을 받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내가 본 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여러 번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내 판단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내 주장이 옳지 않다는 걸 참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아무리 옳고 정확하게 봤어도 나는 나를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했습니다.
내가 38년 된 병자라면 난 정말 걸을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생각될지라도 주님이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면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 내가 다 망한 것 같고 안될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새로운 피조물로 변했다면 변한 것입니다. 내 어떤 느낌이나 그런 경험이 전혀 없을지라도.
자, 하나님은 달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달을 변케 하지 않으시고 둥근 달 그대로를 하나님은 두셨습니다. 그런데 햇빛을 받는 부분이 적어서 어떨 때 다 받을 때는 보름달로 보이고, 반만 받았을 때는 반달로 보이고, 조금 받았을 때는 조각달, 초생달, 그믐달,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 달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해서, 우리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그런 것들을 의지해서 정확한 판단을 갖고 있질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이 보신 그 세계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가 볼 때는 죄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38년 된 병자는 걸을 수 없다손 치더라도 예수님이 걸어가라면 걸어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땐 포도주가 아닌 물을 돌 항아리에 부었는데 예수님이 이제는 떠서 갖다주라면 이제 그 말을 따라 떠서 갖다주는 그런 삶이 우리 속에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동역자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은 어리석게 여러분의 생각을 믿고 여러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러지 않습니까? `내가 봤어. 저건 반달이야. 틀림없어.` 그렇게 말하고 있진 않습니까? 정확히 알면 그건 너무너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판단이나 여러분의 주관, 여러분의 지식이나 방법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믿을 때 바로 여러분은 작은 예수가 되어서 여러분의 몸 자체는 하나님이 쓰는 귀한 몸이 되어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열매를 거둘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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