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재영
재영아, 너한테 이렇게 진지하게 편지 쓰는 거 처음같다.
중학교 와서는 너하고 잘 놀지도 못 했잖아.
그래도 우리 초등학교 때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서로 욕하고 싸웠어도 금방 사과하고 풀었잖아.
내가 진짜 화가 많이 나서 삐지면 미안해서 과자 사다주고 아이스크림 사줬잖아.
그럼 난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그때만큼은 네가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설마 너 지금 나 잊은 건 아니지?
네가 떠난지도 벌써 내일이면 딱 한 달이 되네..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린 네가 처음에는 얼마나 밉던지..
그런데 곧 그 미움이 너에 대한 그리움이 되고 너무나 큰 미안함이 되더라. 네가 나한테 세이에서 쪽지 보냈을 때 죽고싶다고 사는게 너무 힘들다고 했을 때 난 네가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어.
다른 얘들한테도 자살방법을 묻는 것을 보면서도 장난이라고 생각했었고 얘들모두가 다 죽는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죽는 방법까지 알려준 거였어
나 역시 너의 그 질문에 진지하지 못했고 7월7일이 행운의 날이라며 그 날 죽겠다는 너에게 죽지 말란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었어.
네가 힘들다고 아빠가 너무 밉다고 이런 가정이 싫다고 했을 때 속으로 오히려 너를 욕했어
행복에 겨운 소리라고..
선생님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고 했어도 그 말에 한번도 너를 위로해준 적 없었잖아
오히려 너에게 짜증만 냈고 너 마음 한번도 헤아려주지 못했어
7월8일 기찻길에 쪼그려 앉아 너의 온 몸이 터져 산산조각이 나서 죽어 너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무엇인줄 알 거 같았어
사실 나 그때 교회를 떠나있었거든
너도 알겠지만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어
세상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세상이 너무 좋아 보였어. 그런데 내 생각과 교회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너무 달라서 그렇게 하나님을 떠났던 거야
마음이 떠나니깐 네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고 복음을 갖고 있어도 복음의 힘보단 사단이 주는 세상의 유혹이 너무 커서 나의 희미한 복음을 너에게 전할 수가 없었어..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두려웠어
하나님이 내 한 영혼을 교회로 돌이키기 위해 너의 영혼을 버리셨단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이 내 길을 막으신다는 것을 내가 원하고 가고 있는 이 길이 결코 옳은 길이 아니란 걸 알게 해주셨어.
나 네가 죽고 나서야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됐어
깡패두목인 아버지에 매일 되는 선생님의 이유 없는 구타와 욕설, 그런 힘든 마음을 말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는거 ..
재영아 그런데 난 너보다 훨씬 힘든게 많았었던 것을 아니?
하나뿐인 언니와 나는 열 살 차이나 나서 늘 외롭게 컸고 어린 나이에 엄마아빠의 이혼으로 갑자기 기울어진 가정형편에 난 내 마음에서 버려야할게 너무 많았어
그래서 나도 너처럼 죽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어.
아파트옥상에서 뛰어내릴 결심도 해봤고 죽으려고 약을 모아 본적도 있어.
그런데 내 마음에 하나님께서 그러시더라
“지경아 내가 너한테 그런 일을 한 것은 너를 너무 사랑해서야. 너 내가 그렇게 안 만들었으면 교회 안나왔을 거잖아. 너 마음에 하나님을 안 찾고 너 마음대로 살았을 거잖아. 난 너를 큰 별로 만들기 위해서 더없이 너 주위를 너의 형편을 어둡게 만든 것 뿐이야.”
죽으려는 나를 하나님이 붙드시더라.
너무나 죽고싶은데 도저히 내 마음에 예수님을 밀쳐버리고 죽을 수가 없었어.
복음을 위해 날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죽고싶다는 마음보다 더 크게 만드셨어
그런데 너에게는 나의 손을 붙드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는게 너무 가슴이 아파.
너도 나처럼 죽으면 고통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잖아. 죽는게 이 세상사는 것 보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떠나 버린 거잖아.
그런데 네가 지금 가있는 세상은 행복하니? 살아있을 때 보다 낫니?
정 반대잖아. 영원한 고통의 세계에 갇혀서 후회하고 있잖아.
지금 너의 그 결정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며 날 원망할 생각을 하니 너한테 미안해서 할말이 아무것도 없어.
너에게 다가간 사람들 모두 사단의 힘이 컸던 사람들 이였잖아
나 역시 너에게 하나님의 손을 내밀지 못했단 생각에 죄책감이 너무 컸어.
한동안 네 얼굴이 생각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재영아, 너의 죽음으로 나 학생수련회에 오게 되었어, 정말 오기 싫어 했던거 너도 기억나지?
너한테 교회 다시 안나간다고 했잖아. 그런데 재영아 나 학생수련회에 와서 이제 나 내 마음에 무거운 너의 자리를 하나님께 넘기려고 이제 너 잊으려고 내가 너에게 미안하고 널 잊지 못하는 것은 단지 사단이 주는 마법이고 하나님한테는 악한마음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거든.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으니깐 나 너한테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지?
수련회 와서 나 마음에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어. 비록 너는 내가 하나님이 있어도 손을 내밀지 못했지만 그래서 너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줘야만 했지만 너를 보면서 하나님이 너처럼 악의손길을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죽은 뒤의 고통을 모르고 순간의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를 보내신다는 마음을 주셨어.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신다 는걸 보여주시면서 내가 앞으로도 세상의 유혹을 받아도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어.
재영아, 나는 널 그렇게 영원한 후회와 고통의 길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알려주지 못했지만 이 세상에 있는 너와 같이 불쌍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내 길을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2003. 8. 6
지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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