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1장15절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5절 16절 두 개의 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특히 전주에서 학생수련회 중에 있는 우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이곳에 참석을 했습니다. 기념촬영도 하고 했는데 상당히 반갑고, 특히 토요일 저녁 영상교제는 주로 해외에 있는 선교사를 중심으로 하는 교제이기 때문에 학생들 가운데서 장래 선교사가 될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더 기대가 되고 좋습니다.
며칠 전 제가 수양회 중에 있으면서 어느 날 아침에 성경을 읽다가 출애굽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굉장히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가서 있는 동안에 애굽의 바로 왕이 보니까 이 백성이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해서 굉장히 염려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이 학대를 했는데,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는, 안 되니까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는 자와 브아라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히브리 여인이 아이를 낳거든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살리게 두라 그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이 애굽 왕이 명령을 내렸는데, 이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히브리 아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다는 거지요. 이게 너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만일에 히브리 산파가 그 아이를 살려두었다가 애굽 왕에게 잡히면 자기들이 죽을게 너무 분명한 사실인데도 그 산파가 하나님의 말씀을 왕의 말씀보다 더 두려워하고,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던 그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애굽나라고, 애굽의 바로 왕이 죽이라고 하면 다 죽어야 하는데, 애굽 왕이 죽이라고 하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사내아이들이 있다는 거지요. 출애굽기 1장, 2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애굽 왕은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하는데,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히브리 산파로 말미암아 히브리 소년들이 죽지 않고 살아나고, 또 좀더 읽어 내려가보면 2장에 들어가서 바로의 공주로 말미암아 죽어야할 모세가 살아나는 이야기가 또 나타나지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래서 안되니까 애굽 왕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출애굽기 1장 1잔22절에,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아들을 낳으면 하숫가에, 강에다 던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백성들이 볼 때, 우리는 다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나는 이 성경을 읽다가 진짜 신기한 것이, 이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20세 이상의 남자만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애굽 왕이 남자거든 다 죽이라고 했는데,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 그때 모세는 80세였고 20세 이상 모세 이후의 사람이니까, 애굽 왕이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그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이,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이게 잘 믿어집니까 여러분?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애굽 왕이 아들을 낳거든 죽이라고 히브리 산파에게 얘기했을 때 우리는 다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죽지 않는 아들이 많았습니다. 모세도 그렇게 살았지요 그 다음에 애굽 왕이 하수에 나일강에 던져 버리라고 했는데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이건 도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옳다는 겁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이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 나라 왕이 죽이라면 그냥 다 죽여야하고 살아남아서는 안 되는데, 그 나라 왕은 분명히 죽이라고 했지만. 이 성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눈에 보이는 왕의 말만 기록했지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되지 않아서 그렇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자주 이러다 내가 망하겠구나, 이러다가 내가 안되겠구나, 난 큰 일을 만나겠구나, 사역이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자주자주 했어요. 한 번은 부산일보에서 제 칼럼을 봤어요. 메뚜기라는 글을 읽고 부산일보에서 너무 좋다고 하면서 나를 부산일보 칼럼위원으로 선정을 했어요. 제가 부산일보 칼럼 위원이 되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그분들이 나한테 원고료를 주도록 통장 번호를 알려주면 원고료를 통장으로 넣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원고료 받는 통장도 하나 따로 만들고 도장도 만들고 그래가지고 다 했는데, 그 부산일보에 어느 장로교 목사가 있어 가지고 안 된다고 반대해서 제가 부산일보 칼럼위원이 못되었어요. 거의 다 되었는데.
그때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부산일보 되어 가는 모양을 보면서 이제 앞으로는 내 기사가 신문에 나는 게 불가능하겠다, 내 기사가 잡지나 언론에 나는 게 불가능하겠다. 왜? 거기마다 다 목사들 장로들 자리잡고 있는데 누가 내 기사를 그냥 내 주겠나.
그 뒤에 하나님이 월간 중앙, 월간 조선,그 다음에 헤드라인 뉴스, 그리고 행복이 가득한 집 , 수없이 여러 잡지에 내 기사가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시더라고요. 내가 볼 때 인간적으로 아 이러면 안되겠구나 하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데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표면적인 면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었구나 싶은데 바로 왕의 말만 들을 때는 한 명도 남지 않고 다 죽을 것 같은데 하나님의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 살아있더라고요.
지금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복음의 일이 표면적으로 보면 다 망할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어려워 보이지만,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아들이 나면 전부다 하수에 던지라고 명령을 내리고 난 뒤에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켜졌듯이, 우리가 복음의 일을 하는 동안에 꼭 우리가 죽을 것 같고 망할 것같은 그런 일이 닥쳐도 그 일보다 우리를 지키는 하나님이 컸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는 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나라에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아마 그들은 다 멸망을 당하고 한 사람도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도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다 망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 사실만 보는 사람들은 다 실망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애굽 왕이 있다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만이 있다면 여호와께서 계십니다. 늘 우리를 지키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사역하는 그곳에 선교하는 데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에게 어려움을 당케하는 그 사람의 힘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니까 능히 우리를 지키고 이루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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