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장 1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항상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사단이 먼저 시작을 하지요.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치고 난 뒤에 감옥에 갇히는 그런 어려움이 와서 그 핍박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전에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고 하나님의 힘을 얻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 삽비라가 사단에 속아서 땅값을 감추는 그런 일로 말미암아 교회가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면서 감격해하고 변화되는 그런 모양을 볼 수가 있고 또 이제 사단은 사도행전 6장에서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하는 미묘한 교회 안의 그런 일을 통해서 이렇게 서로 분리를 일으키려고 하는 그런 모양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게 뭐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복음 안에 살아오면서 내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란 그 사실이 너무 내 마음에 강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 굉장히 크고 작은 많은 문제가 일어났지만 그 문제가 어느 한번도 그냥 문제로 넘어가지 아니하고 은혜로 축복으로 넘어간다는 거죠.
이건 비단 사도행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봤을 때 `이건 참 어두움이다, 어려움이다, 고난이다` 그렇게 생각되지만 주님은 꼭 그것을 바꾸어서 은혜로 복으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사도행전에 이런 일을 행하셨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살으셔서 우리 속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은혜로, 복으로 바꾸기 위한 조건으로 그런 일들을 행하신다는 거지요. 주님이 무저갱에다 사단을 집어넣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사단이 역사해서 우리를 어렵게 해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또 주님이 나타나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들을 하더라는 거지요.
우리가 오늘 읽은 이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 교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있었고 히브리파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헬라파 사람들하고 히브리파 사람들이 서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들을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는 이런 일들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분열이 조장되고 그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참 생각을 해보면 그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놀랍게 일을 해서 전에 없던, 주를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일으키셨다는 거지요. 제가 지금까지 복음 일들을 해오면서 저에게도 집 문제나 또 물질 문제나 그런 어려움들이 참 많았었는데 그런 일들을 하나님이 단 한번도 그냥 어려움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그 어려움을 하나님이 다 해결해서 은혜로 축복으로 전부 바꾸시는 사실을 우리가 역력하게 발견할 수가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이 일은 우리 일이 아니라 주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은 그걸 은혜로 축복으로 바꾸시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이건 어려움이다, 고통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요. 저는 처음에 어려움을 당할 때 `아이구 참 큰일났다.` 어째 이걸 피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고, 거기서 정말 헤어나고 싶고, 안 되면 짜증스럽고 그런 마음밖에 안 들었는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 역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이 이건 어떤 축복으로 바꾸시려고 이렇게 하는가?` 오히려 막 그게 내 마음에 기다려지고 그렇게 되어진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내가 믿음이 없는 사람인데도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런 믿음을 주셔서 담대하게 일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사도행전에서 일어났던 이런 일들은 분명히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과의 그 분쟁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굉장히 어려움 가운데로 몰아넣는 것 같지만 난 늘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사단이 이렇게 일하는데, 저희들 교회 형제 자매들이나 또 우리 사역자 세계 속에 사단이 강하게 일을 하고 있고 또 그 사단의 이끌림을 받아서 형제 자매들이 시험에 들고 원망하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게 분명히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참 감사한 것은 사단이 일을 하는데 왜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겠나? 사단이 일하는데 하나님이 놀고 계신다면 우리가 그런 하나님 불안해서 어떻게 그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느냐는 거지요. 그걸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사단의 역사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역사도 클 거고 사단이 주는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걸 해결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훨씬 더 크시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사단이 역사해서 어려움이 닥칠 때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겠구나 그렇게 믿는 거에요.
그 다음에 또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그 다음에 또 사단도 역사를 해요. `사단도 또 일할는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그 하나님이 사단보다 조금 더 힘이 세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단보다 더 지혜로우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단보다 더 능력이 많으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사단이 일하는 걸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단이 하나님의 역사를 부르고 있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사단은 계속해서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핍박을 일으키고, 아나니아 삽비라 그런 일을 일으키고, 분쟁을 일으키고, 또 어려움을 일으키고, 그런데 그런 일들이 어느 하나도 그냥 끝나지 않고 다 축복으로 변하더라는 거지요. 그래서 이 예루살렘 교회에 분쟁으로 말미암아 일곱 집사가 세워지고 그 집사 가운데 스데반이 정말 능력을 행해서 굉장히 많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이 분쟁하고 원망하고 이런 것들이 사도행전 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런 큰 축복들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면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서로 분쟁을 일으키도록 사단이 역사한 그 역사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역사 되니까 이렇게 더 복된 걸로 변해져 가더라는 거지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선교를 하다보면 사단이 참 지혜로 갖가지 일을 우리에게 일으키지만 그러나 사단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우리편에 서서 이걸 다 해결하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고 그런 사단의 역사로 어려울 때 우리가 원망하거나 불평하고 절망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할 걸 기대하면, 찬송하고 감사를 해야할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우리 입에서 찬송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지지 아니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나는 늘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없는 사단의 역사만 없고, 또 사단의 역사 없는 하나님의 역사만 없다. 하나님이 역사하면 반드시 사단이 따라 역사하고 사단이 역사하면 하나님도 따라 하시기 때문에, 그러나 한 가지, 우리 하나님이 사단보다 더 능하시고 지혜로우시고 더 능력이 많으시며 크신 하나님이고 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 늘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여러분 복음 전도와 선교에 힘을 더하시고 능력에 잡혀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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