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수를 제대로 믿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주변에서 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남들에게 열심히 예수 믿는다고 평가받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뭔가 인성(사람)면에서 특이하고 사람으로서 해야할 기본적인 것들에 부족함이 관찰되었습니다. 반대로 특별나게 예수 믿는 다는 말을 안 들으려는 분들은 신앙생활에 타협이 많고 세상사람들과 별로 구분이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
아! 참된 주의 종의 모습은 무엇일까...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과 사람의 양면에 균형 잡힌 사도 바울의 본을 발견하고 저는 맞다. 바로 이 사람이다 라며 무릎을 쳤습니다. 바울 자신도 영적 거인 즉 오르지 못할 나무가 아니라 생명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닮을 수 있는 하나의 본(a pattern)임을 고백했습니다(딤전1:16).
`작은 자`라는 뜻인 바울(Paul)의 원래 이름은 `큰 자`를 의미하는 사울(Saul)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성경지식으로만 알다가 직접 만나 뵌 후 이름도 바뀌고 인생도 180도 바뀐 것입니다.
지금의 터키 영토에 속한 다소(Tarsus)가 고향인 사울은 요즘말로 모태 신앙인 이고, 그 당시 최고의 신학대학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구약 성경에 능했고 맹렬 신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가 당시의 정통교회에 속했다는 확신이 가득했고 자기 생각과 다르게 말하거나 행동하는 꼴을 못 봐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다는 명분아래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다니는 참 예수쟁이들(하나님의 교회들)을 잡아 가두고 죽여버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같은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하늘에 근엄하게 남아 계신데 예수쟁이들은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왔다고 말하고,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분이 죽고 부활 한 후에는 자기들 안에 사신다
고 헛소리를 하고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빌3:1-6,행7:58, 8:3, 9장, 22:3-5).
그런데 사울이 하루는 참으로 놀랍고 기이한 일을 당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여서 돌무덤에 묻어버린 것으로 알았던 `예수`(Jesus)가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한 마디 하신 것입니다(행9:4-5). 그것도 `내 제자들` 이라거나 `나의 성도들` 이라거나 `내 교회사람들`이라고 하지 않고 `나`를 핍박한다는 말(persecutes Me)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니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단 말인가?, 옥에 가두고 때린 이 예수쟁이들이 그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와 하나(요14:10, 20, 요일4:15)란 말인가? 바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묵상가운데 승천하신 예수를 머리로, 예수를 영접한 모든 사람들을 그 몸으로 하는 `거대한 한 사람`에 대한 비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 만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롬12장, 고전1장, 엡4장, 골1장).
바울은 신약 성경의 반이 넘는 14권(혹은 13권)을 썼지만 참으로 인간미가 넘치는 예수쟁이였습니다. 그가 성령의 감동으로 쓴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겸손과 온유와 사랑과 관용과 사랑과 참음과 용서와 희생과 솔선수범과 균형 잡힘, 순수함, 불탐, 깨끗함, ....을 겸비한 최고의 인간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 후서는 예수의 복사판인 한 사람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네 종류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하늘 저 멀리에만 계신다고 믿는 유태인들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죽고 부활, 승천하신 후 다시 하늘로 가셨다고 믿는 분들입니다. 유태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들 밖에만 계십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성령으로 사람 가까이 오셨거나 성령체험한 사람 안에 들어오셨다고 믿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초자연적인 어떤 것을 체험하기도 하지만 성령(The Spirit)과 예수와의 관계가 모호하여 많이 헷갈립니다. 성령을 받은 건지 안 받은 건지, 예수를 영접한 건지 성령을 영접한 건지, 그러면 아버지는 믿는 이 안에 안 계신 건지... 한국교회 성도 분들 중 대부분이 둘째 아니면 셋째의 범주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는 상호내주 즉 서로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마지막 아담인 예수 안에서 성육신, 죽음, 부활, 승천을 거친 후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셔서 믿는 사람 안에서 지금 살고 계신다고 사도 바울처럼 믿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참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고전15:45, 빌1;21, 3:8, 10, 갈2:20).